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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구인사의 겨울길 위에서 저자/ 이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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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05  09:5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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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위에서' 저자 이정순
단양에 있는 구인사다. 혼자 오는 길이라 지루함을 견디며 주차장에 도착하니 서녘하늘은 어둠이 내리고 있다. 산 아래서 보면 사찰은 긴 계곡을 따라 엎드린 형상이다. 수 천년동안 바람에 깎이고 햇볕에 버틴 바위를 하얀 눈이 덮고 있다. 그 곳에는 풀 한포기 살 수 없을 것 같은 강추위 속애서 푸른빛을 유지한 이름 모를 풀포기에서 소백산의 힘을 느낀다.

사찰에 들어서는 순간 어렵게 온 만큼 잔잔한 감동이 몰려온다. 전 날에 미리 와서 날 기다려 준 지인을 만나면서부터 사찰에서의 숙박은 시작되었다. 막 저녁 예불을 끝내고 공양실로 향했다. 멀건 된장국에 배추김치 몇 조각과 깍두기에 무생채가 반찬의 전부다. 이 공양을 받기 위해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언제 한 번이라도 소박한 이런 밥상에 대하여 진정 감사히 먹어본 적 있었던가. 너무 먹어서 몸에 탈을 일으킨 생활을 돌아보며 사치에 길들여진 부끄러움을 함께 삼킨다.

식사 후 손만 뻗으면 정수기 물을 뽑아먹던 일상은 다른 세상 이야기다. 흐르던 물이 얼음 바위를 이루고 있는 샘터로 가서 바가지 물로 양치를 한다. 화장실을 이용하는 문제라든가 모든 건 칼바람 속에서 줄을 서서 기다린다. 이런 불편에 대하여 어느 누구도 불평을 토로하기는커녕 잘 길들여진 수행자처럼 묵묵히 견뎌내는 불자들이 존경스럽다.

법당으로 간다. 천수경 한 소절 외우지 못하는 부끄러움을 안고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 단 한 번이라도 기도 정진에 최선을 다 한 적이 있었느냐에 스스로를 돌아본다. 이런 불량한 내 마음에 심어진 불심인들 있으랴. 풍부한 물자에 내 배가 고프지 않다고 해서 그 얼마나 교만과 거드름을 피웠던가. 눈물 나는 불편을 체험하며 그 동안 잊고 산 가난과의 만남이 부끄러움으로 다가온다.

동쪽으로 가겠다는 마음이 방향을 몰라 서쪽으로만 갔던 어리석음이 부지기수다. 지혜롭지 못해 목적지를 늘 등에 지고 살았다. 가 버린 만큼 되돌아오느라 얼마나 많은 낭비를 했던가. 과거는 기억 속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 고통을 수반한다.

같은 밭에서 같은 햇살을 받고 자라는 식물에도 잡초가 있고 약초가 있다. 잡초냐 약초냐는 주어진 운명일지언정 내리는 빗물을 받아먹는 건 준비된 그릇에 따라 차별화된다. 개인의 마음자리에 따라 같은 시간 같은 환경에서도 희로애락은 다르다. 하루의 절반이 밤과 낮인데 잠을 이루지 못한 밤과 게으름을 피운 낮에 대한 시간은 놓쳐버린 열차다. 식물 하나를 놓고 돈이 되는 것인지 안 되는 것인지의 관점만 조금 줄이면 삶이 가벼울 수 있는데 그게 쉽지 않다. 흐르는 시간보다 더 많은 걸 품은 세월을 살면서 나 자신 못났다고 자학하는 것도 불필요한 소모다.

깊은 밤 기도 정진에 들지 못하고 의자에 기댄다. 손전화기를 열고 감성 하나하나를 꺼내 메모하는 시간도 기도만큼 귀하다. 물 흐르듯 살자고 다짐한 마음이 흔들리고 땀방울조차도 눈물 되어 가슴 속에 흐르던 순간을 잘 견뎠다. 구인사의 겨울은 잠시 느끼는 마음의 이완이나 평화보다 훨씬 깊고 포근하다. 오랫동안 메말라 있던 내 작은 가슴에 감사해 하고 있는 이 여유가 그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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