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경춘

국제 공모를 통해 세계적인 랜드마크를 만든다는 계획이어서 조선산업이 지역경제 근간인 거제와 통영지역 주민들은 벌써부터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 때 스웨덴은 세계 조선산업을 주름잡았던 국가 중 하나였다. 말뫼시에 있었던 코쿰스 조선소의 초대형 크레인은 스웨덴 조선산업의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물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크레인(갠트리크레인)이 바로 스웨덴 말뫼시에 있었던 코쿰스조선소에 설치 돼 있었던 것이다. 높이 140m의 7천톤급 규모의 초대형 크레인은 1973년~74년에 건조된 것으로 지금은 대한민국 현대중공업에 세워져 있다.

2002년 여름에 해체돼 현대중공업에 단 1달러에 팔렸다. 당시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160원이었다.

조선소 폐업으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던 말뫼시에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일화가 남아있다. 크레인이 해체돼 아시아의 작은 국가 대한민국의 울산 현대중공업으로 향하던 날 수 많은 시민들이 현장에 나와 눈물을 흘리며 이 기막힌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스웨덴 국영방송은 TV를 통해 장송곡까지 틀어가며 "말뫼가 울었다"고 보도했다. 이로인해 '말뫼의 눈물' 이라는 말이 생겨나게 됐다고 한다.

코쿰스조선소가 있었던 말뫼시는 거제와 너무나 흡사한 부분이 많다. 이같은 이유로 이번 통영에서 시도되는 폐조선소의 '한국판 말뫼' 변신을 위한 국제 공모에 거제시민들의 관심이 높을 수 밖에 없다. 코쿰스조선소가 폐업하는 바람에 폐허나 다름없었던 말뫼시의 성공 사례를 눈여겨 볼 필요성이 있는 이유인 것이다.

인구 50만 명에 달했던 말뫼시는 조선소의 폐업으로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 조선소에는 정부가 10여 년 동안 수 조 원의 자금을 지원했다. 그러나 경쟁력을 상실하고 1986년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그런데 조선소가 있었던 자리에 지금은 크레인 대신 친환경 에너지 자립 건물인 '터닝 토르소'가 말뫼시의 랜드마크로 우뚝 솟아 있다.
 
한국의 조선업에 밀려 경쟁력을 상실한 채 끝내 문을 닫고 말았던 스웨덴 조선산업의 상징 말뫼시는 현재 청정에너지와 바이오, 정보기술(IT) 등 지식기반 산업도시로 완전히 탈바꿈 하는데 성공했다. 철저한 구조조정을 통해 재생가능에너지 지식산업의 '에코시티'로 거듭난 것이다.

말뫼는 코쿰스조선소가 문을 닫은 후 실업률이 22% 까지 치솟았다. 1990~95년 조선소에서 해고 당한 실업자는 모두 2만8천명 정도에 달했다. 거리는 실업자로 넘쳐났고 범죄도 잇따랐다.

당시 대형 크레인을 처리하지 말고 역사박물관으로 만들자는 여론도 많았다. 하지만 지도자 1명의 결단력은 대단했다. 1994~2013년 까지 말뫼 시장을 역임한 일마르 레팔루(74) 전 시장은 크레인 보존을 위해 들어갈 비용이 연간 약 7억원 정도나 될 뿐 아니라 말뫼시에 적합한 심벌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말뫼시는 1986년 조선소가 문을 닫은 후 '사브-스카니아'사의 상용자동차 조립공장을 유치했었다. 그러나 이 회사도 미국 GM사에 팔리면서 1990년 문을 닫았다. 이후 시민들은 기업인과 노조, 시장, 주지사, 대학교수 등이 참여한 위원회를 만들어 10~20년 뒤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도시의 장기적인 산업이 무엇일까를 놓고 끝장 토론을 벌였다. 그 결과 20세기형 노동집약적 제조업에서 손 떼고 신재생에너지와 IT, 바이오와 같은 첨단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 산업으로 키워 나가야 한다는데 중론이 모아졌던 것이다.

레팔루 전 시장은 신재생에너지와 IT, 바이오와 같은 첨단산업으로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는 중론이 모아지자 중앙정부에 건의해 2억5,000만 크로나(약 325억원)을 지원받아 2002년 조선소 터를 매입하게 된다. 이 곳에 100% 자체 생산한 청정에너지로 운영되는 친환경 뉴타운을 개발했다. 2005년에는 건물 몸통이 꽈배기 처럼 90도 비틀려 있는 그 유명한 54층(190m) 높이의 '터닝 토르소'가 말뫼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들어섰다.

2000년에는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과 바다 건너 연결된 길이 7.8km의 '외레순 대교'가 개통 됐다. 거가대교와 유사점이 많다. 이 다리 덕택에 말뫼는 코펜하겐과 광역 지하철 생활권이 됐다. 조선소가 문을 닫으면서 50만명 정도에 머물렀던 시민이 23만명 까지 줄었던 말뫼와 코펜하겐 중심으로 형성된 식품산업단지인 '외레순 클러스터'는 덴마크와 스웨덴 양국 국내총생산(GDP)의 11%를 차지하는 성공한 도시로 발전했다.

세계적 바이오.제약사업 클러스터인 '메디콘 밸리'도 바로 이곳에 자리 잡았다. 외레순 대교가 개통되면서 말뫼 안팎에는 국제적인 수준의 연구력을 갖춘 대학들이 문을 열었다. 조선소 자리에는 말뫼대학과 세계해사대학(WMU)이 들어서 있어 큰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와 스웨덴이 겪었던 조선산업 위기는 닮은 점이 많다. 여기에다 현재 거제시와 통영시의 상황이 말뫼시가 겪었던 상황과 너무나 유사하다. 코쿰스 조선소가 문을 닫기까지 스웨덴 정부는 10여 년에 걸쳐 340억 크로나(약 4조8천773억원)이라는 엄청난 자금을 지원했다. 그렇지만 조선업을 살리는데는 끝내 실패했다. 위기에 빠진 기업에 보조금을 지원한 것이 결국 생명을 잠깐 연장시키는 작용만 했을 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뚜렷한 변화없이 정부 보조금만으로 경쟁력을 잃은 산업을 살리려는 발상은 단기처방에 불과 할 뿐이라는 것을 증명해 준 것이다.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통영 폐조선소 도시재생 마스터플랜 국제공모'를 한다고 발표한 것은 비단 통영만의 일이 아니다. 2015년 폐업한 통영 신아sb조선소에 대한 재생사업에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접목해 실현 가능성이 있는 기본 구상안을 만련하기 위해 계획된 것이지만 거제가 눈여겨 볼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공모에 따른 최종 당선작은 오는 9월 초 발표될 예정이라고 하니 관심을 두고 지켜 볼 일이다.

특히 이번 공모는 건축.도시.조경분야 외에 부동산컨설팅, 문화 및 관광콘텍츠분야 전문업체 참여도 필수조건으로 제시돼 하드웨어적인 아니디어 뿐만 아니라 실현가능성과 사업성도 중요시 하고 있다고 한다. 또 이번 공모 외에도 전문가들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크레인, 도크 등 기존 시설물 활용방안과 상징물 건립 방안 등의 아이디어 공모도 추가로 진행한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공모를 통해 기본 구상이 만들어지면 도시재생 활성화 계획 수립과 개발계획 수립 등의 절차를 거쳐 2019년 말 이후 부지 조성 공사에 착수할 방침이어서 벌써부터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판 말뫼의 탄생이 현실로 다가올지 여부는 더 지켜봐야 겠지만 눈물 흘리던 조선도시 말뫼가 슬럼화로 변해가다 유엔환경계획이 2007년 북유럽에서 가장 살기좋은 도시로 선정 할 만큼 변신한 이유를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