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금숙

장맛비가 흐뿌리는 유월의 마지막 주말, 청마기념관이 준비한 지역 특성화 프로그램의 일환인 해남 땅끝 문학관 순례 행사가 사업회 임원들과 지역 문인 2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당일 행사로 진행됐다.

2년이 넘는 코로나 사태로 모두가 움츠린 일상의 시간들이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오는 즈음에 실시한 이번 행사는 그래서 더욱 의미가 깊었다.

비와 함께 떠난 해님행은 버스안에서의 특강과 더불어 청마 사행시 쓰기, 찾아가는 순례문학관과 인근 둘러볼 관광지에 대한 설명들로 짜임새 있는 프로그램으로 이어졌다.

어찌보면 거제도도 섬이기는 하나 땅끝이나 진배없고 해남은 고산 윤선도, 미암 유희춘, 옥봉,백광훈, 금남 최부를 비롯해 80년대 대표 저항시인 김남주와 서정시인으로 잘 알려진 박성룡, 이동주, 고정희 시인 등 근대 유명 문인들이 태어난 문향이자 예향이다.

땅끝 순례문학관은 규모면에서나 도서자료, 출신 작가들과 시인들의 작품 전시가 돋보이는 공간으로 향후 거제에 거제문학관을 건립한다면 꼭 벤치마킹을 해 보시라 권하고 싶은 곳 중의 하나다. 입구에서부터 잘 정돈된 야외 전시공간은 물론, 지역 특색을 잘 맞춰 건립된 규모는 땅끝 순례문학관이라 할 만큼 크고 앳지있다. 1층은 지역출신 유명시인들의 대표시와 작품들, 현재 해남에서 활중인 지역문인들의 작품 및 도서 전시공간까지 마련, 근.현대를 아우르는 종합 문학전시관으로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또 2층 공간은 전시 및 세미나, 야외 행사등을 할 수 있도록 준비돼 있rh 이곳에서 김남주 고정희 문학제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고 한다.

청마가 한국 근현대시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고향인 둔덕에 청마기념관을 세운 것은 2008년이디. 규모는 작지만 생가와 묘소를 같은 권역안에 두어 문학관 투어코스로서는 견줄만 하지만 접근성, 장소 등에 제약을 많이 받고 있다.

특히 해남은 거제와 마찬가지로 유배지로서 조선시대 많은 유학자들이 제주로 귀양가는 도중에 들리는 곳이자 귀양살이를 하던 유형지이다. 해남 윤씨의 후손인 고산 윤선도와 어머니가 해남 윤씨로 알려진 다산 정약용 선생의 해남 강진살이는 귀양살이였다. 그래서인지 두 집안의 문맥이 지역의 문학과 정서를 대변해주는 초석이 된다.

문학관 뒤편의 백련제 문학의 집은 고산 윤선도 유적지 내에 있는 문학인들의 창작 공간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명당자리라고 알려진 덕음산 자락 아래 건립돼 있다.

땅끝 순례문학관은 해남군에서 2016년에 완공해 직접 운영하며 해남의 문맥을 이어가고 있다. 시비하나, 작은 풀잎 하나에도 시인들의 시향이 묻어난다.

거제의 문인들이 돌아본 순례문학관 내의 프로그램도 다채롭게 짜여져 있었다.

시인들의 얼굴이 새겨진 엽서에 편지를 쓰는 코너, 오늘의 시인뽑기 코너, 활동지에 대한 안내, 설명 등과 수묵으로 걸린 시화들이 눈길을 끌었다.

청마기념관에서는 요즘 찾아오는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암송대회와 사행시쓰기, 청마편지쓰기 등이 연중 행사로 진행되고 있다.

짧은 생이지만 유신혁명을 반대하며 많은 저항시편을 남긴 김남주 시인, 풀잎의 작가 박성룡 시인, 43세의 아까운 나이로 유명을 달리한 고정희 시인, 그리고 서정주 시인에 의해 시인으로 등단한 서정시인 이동주 시인의 면면을 살펴보며 순례문학관을 떠났다.

그들에게서 짧지만 긴 꼬리의 여운을 느낀다. 치열하게 살다간 80년대 대표 시인들이라서 그럴까? 아님 자유와 혁명과 사랑을 갈구했던 그들의 시어들이 촘촘하게 우리들의 삶에 희망으로 불씨로 살아있기 때문일까.

돌아오는 길에 사행시 작품 공모에서 원철승 시인이 대상을, 손삼석 시인이 우수상,손경원, 김철조시인이 장려상을 각각 수상했다.

바람이 분다. 장맛비를 거둬내는 햇살 너머 대흥사 오솔길이 법문길이다. 돌다리를 건너 피안의 세계로 가는 동안 나는 나의 지나온 삶을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본시 인생 육십을 넘기면 새 삶을 살든지 아니면 살아온 삶을 정리하며 사는 게 인지상정이다.

지난 2년 동안의 코로나 사태가 어쩌면 내 아픈 몸을 힐링시켜 준 치유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지역 문인들과 이번 기행을 함께 하면서 빨리 이 펜데믹을 이겨내고 청마의 애국혼이 어려있는 북만주 하얼빈으로 달려가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지금 칠월의 둔덕골에는 주저리 주저리 포도가 익고, 수국핀 들녘으로 그리움들이 줄달음 치며 청마의 동산으로 찾아올 것이다. 이번 여름은 그래서 청마기념관이 바빠질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가을에 열릴 청마문학제가 거제와 지역문학을 대표하는 문학제로 자리매김하는 그날까지 우리의 문학관 순례도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아마도 청마의 아이덴티티를 추구하고, 더 많은 자료와 조사를 통해 더 알찬 청마기념관을 만들어 가기 위한 책임감과 사명감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거제문인들에게 주어진 과제임을 다시한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