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금숙

그곳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단절된 시간 때문이었을까? 가깝고도 먼 시인의 고향은 그래서 더 애틋했다.

청마기념관의 지역 특성화 사업으로 지난 8일 진행된 2차 문학관 순례기행은 향수의 시인 정지용문학관과 생가 탐방이었다. 모더니즘을 추구한 정지용 시인의 문학적 의미와 월북작가로 분류돼 학문적 가치를 조명하지 못했던 지난 시간들을 통해 작가의 삶과 고뇌, 그가 남긴 '향수'의 흔적을 찾아보고자 함이었다.

향수가 그러하듯 그의 시에서 풍기는 시적 메모리는 그가 서정시인임을 대변해 준다. 한국의 토속적인 이미지를 작품속에 녹임으로써 그만의 시 세계는 전통지향적 자연시와 산수시가 주류를 이룬다.

작은 실개천 너머 저만치에 지용 문학관과 생가가 초여름의 햇살을 받으며 자리잡고 있었다.

큰도로가 없는 옥천 시내는 한적한 시골 풍경 그대로다. 우리는 먼저 백련과 홍련이 피어 흐드러진 육영수 여사의 생가에 들러 백성을 위하고 나라를 걱정했던 단아한 국모의 미소를 만났다.

수수한 차림새의 생전 여사를 볼 때면 화려한 치장의 외모 지상주의자 같은 요즘 여성들과는 뭔가 달라도 다르다는 느낌이다. 집안을 둘러보며 육씨가문의 아가씨로 살았던 여사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것 같고 전시된 사진물속의 여사는 언제나 한결같은 미소로 웃고 계셨다.

생가의 앞뜰은 연밭이다. 여사를 닮은 꽃이다. 백련의 고고한 자태에서 다시 한번 여사의 향기를 느낀다.

일행은 다시 연밭을 걸어 옥천전통문화 체험관을 둘러보고 버섯전골로 맛있는 점심을 먹은 뒤 국민시인 정지용 생가를 찾아 나섰다.

한 폭의 수채화 같은 그의 생가는 향수에 나오는 시어가 보여주듯 질곡한 그의 삶과 문학적 이미지가 그대로 전해지는 느낌이다.

6,25전쟁과 함께 월북해 별로 활동하지도 못하고 행방불명된 시인의 문학적 삶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월북작가로 분류돼 1988년 해금되기까지 그의 문학은 일반인들에게는 금서로, 이름조차 떠올릴 수 없는 문인으로 잊혀져 왔다. 그러나 북한에서의 그의 창작활동이 문제되지 않다는 것을 정부가 확인하고서야 해금된 시인의 행적은 몇 편의 시로, 작품으로 되살아 났고 향수가 대중가요로 불리워지면서 그의 문학을 아끼는 문인들에 의해 지용의 문학이 널리 알려지게 됐다.

지용은 청마와는 달리 일본 교토 동지사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지식인으로 고등학교 시절부터 동인지를 내고 소설을 발표했다. 유학시절부터 신문학에 심취 상징주의와 모더니즘에 바탕을 둔 시를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으며 동지사 대학을 졸업한 뒤 모교로 돌아와 후배들에게 영어와 일어 독일어 등을 가르쳤다.

이후 1930년 시문학 동인으로 참여했고 이 시기부터 정지용은 한국문단에서 중요한 작가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하고 1939년 ‘문장’지를 통해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등 한국 근대시의 대표 시인들로 일컬어지는 청록파 시인들이 지용의 추천에 의해 문단에 등단한다.

소담스런 초가삼간의 생가는 옥천군이 88년 지용제를 열면서 정지용 문학관과 함께 복원하여 오늘날이 이르고 있다.

지용 문학제는 우리나라에서는 몇안되는 큰 문학축제 중 하나다. 특히 정지용문학상은 연변에서도 시상되고 있는 바 이는 그가 월북작가라는 점에서 주목하고 있다.

윤동주 문학상, 심수련 문학상과 함께 연변 조선족 문인들에게는 꼭 받고 싶어하는 유명 시인의 문학상이기도 하다.

장마와 함께 떠난 이번 문학기행도 버스안에서의 특강과 청마시 암송대회, 삼행시 쓰기 행사로 진행됐다.

양재성 단장의 특강은 다양한 장르에서 이뤄졌고 청마를 사랑하는 기념사업회 임원들의 암송대회는 시 한 구절이 아니라 한 편을 다 외우는 대단한 능력들을 발휘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문학기행은 시인을 알아가는 과정보다도 귀중한 경험과 그 단체 회원들과 화합의 장을 먼저 배워가는 길이다.

과제를 받고 준비하는 과정 과정이 힘들겠지만 청마를 사랑하는 마음에 어디 비할까.

지용의 시비가 세워져 있는 문학공원은 다음 기회로 미뤘다. 돌아오는 길에 나눈 각자의 소회에서 청마기념관에 대한 애정이 듬뿍듬뿍 묻어난다.

산다는 것은 행복이다. ‘넓은 들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오고 .. ‘ 향수의 멜로디가 어디에선가 흘러 나온다.

우리가 보았던 옥천의 하늘은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울음 우는 파아란 가을하늘을 닮아 있었다.

시간이 주어진다면 아마도 다시 옥천으로 발걸음을 옮길지도 모르겠다. 채워지지 않은 갈증에 지용의 문학적 가치와 존재의 의미를 되새기며 우리가 사랑하는 청마의 기념사업 또한 향수처럼 깃발처럼, 우리곁에서 노스탈쟈의 손수건처럼 펄럭일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