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파치노, 킴 베이싱어, 테아 레오니,  라이언 오닐….

  수작을 기대해도 좋을 만한 배역진이다. 왕년의 명배우이자 제작자로도  성공한 로버트 레드퍼드가 총제작을 맡은 것도 믿음직하고, 인기 TV 시리즈  `섹스&시티'의 대니얼 앨그란트가 메가폰을 잡은 것도 기대를 부풀린다.

    오는 31일 간판을 내걸 2002년작 `목격자(원제 People I Know)'는 1960∼70년대 뉴욕을 무대로 정계와 연예계를 주름잡은 전설적인 PR 로비스트 바비 자렘의 실화를 모델로 한 미스터리 스릴러. 바비와 25년간 교분을 다진 알 파치노가 주연으로 나섰다.

    일라이 워먼(알 파치노)은 뉴욕 최고의 PR 로비스트로 꼽혔지만 나이가 든 지금은 예전같지 않다. 그가 준비하는 자선행사에 거물들을 초대하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니는데, 정계 진출 선언을 앞둔 유명 배우 캐리 로너(라이언 오닐)가  행사  참석을 미끼로 은밀한 부탁을 해온다. 수감중인 자신의 정부이자 톱 모델  질리  하퍼(테아 레오니)를 보석으로 석방시킨 뒤 LA로 보내달라는 것.

    유치장에서 나온 질리는 두고온 물건이 있다며 일라이와 함께 쇼룸으로  가장된 마약파티장에 들른다. 뒤엉킨 남녀 사이에서 겨우 찾아낸 것은 PDA(휴대용 개인정보 단말기). 질리는 자신을 무시하고 박대하는 사람들을 향해 PDA를 손에 쥔 채 외친다. "너희는 다 죽었어."
    질리의 호텔방에 하룻밤 머물게 된 일라이는 주치의가  처방해준  신경안정제에 취해 쓰러져 잠든다. 이튿날 아침 집으로 돌아온 뒤 일라이는 질리가 간밤에 숨졌다는 소식을 듣는데 당시 상황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일라이는 거물들의  부적절한 사생활이 담긴 PDA 때문에 질리가 희생됐으며 이제는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사실을 뒤늦게 눈치챈다. 그러나 오늘 밤 자선행사 때문에 도망갈 수 없는 처지. 동생의 미망인 빅토리아 그레이(킴 베이싱어)가 구원의 손길을  뻗어오지만  일라이는 선뜻 손을 내밀 수가 없다.

    출연진의 명성이나 제작진의 무게에 비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껏 당긴 활시위처럼 팽팽했던 초반부의 긴장감은 시간이 갈수록 풀어지고, 음모의 주범은 좀처럼 정체를 드러내지 않지만 강한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한다. 영화의  얼개가  미스터리 스릴러에서 흔히 보아오던 것이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그래도 알 파치노 팬이라면 기꺼이 추천할 만하다. 그의 관록 연기는 여전히 녹슬지 않았다. `쥬라기 공원', `딥 임팩트', `나쁜 녀석들' 등 주로 흥행대작에 얼굴을 내밀었던 테아 레오니의 연기 변신도 볼 만하고 1970년 `러브 스토리'로  전세계 청춘의 표상으로 떠올랐던 라이언 오닐의 얼굴을 모처럼 대하는 것도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