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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구2]청계산악회 경남회장 1년...윤 영 (전) 거제시부시장독립운동가 후손의 처절한 꿈 '위대한 거제 창조'
박춘광  |  geojetime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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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09.24  01:4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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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민의 알권리 추구와 관내 정치.경제.사회.문화 .역사.인물들의 활동상 등을 보도하고 있는 거제타임즈가 국회의원 후보예상자들을 중심으로 시장, 도의원, 시의원 후보군 및 지역내 인사들에 대한 특별인터뷰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김한겸거제시장, 진성진변호사, 윤영 전 거제시부시장에 이어 김기춘의원 등 본사가 선정하고 응답한 분들의 순에 따라 연속 연재를 합니다. 선거법의 규정에 따라 국회의원 후보 예상자들에 대해서는 10월 중순까지 연속 연재를 마칠 예정이며, 기타 인물들의 연재는 선거법에 관계없이 진행됩니다. 인물들에 대해 시민들이 보다 정확하고 자세히 알도록 가능한 범위에서 살아온 과정 그리고 정치관, 인생관과 애향심 등 인물탐구 취재에 노력하겠습니다<편집자>
   
 
  윤 영 전 거제시 부시장  
 
그의 외조부는 거제의 3.1독립운동을 선도한 독립운동가 '권오진'
윤영 전 거제부시장, 그는 작고 왜소한 체구지만 그의 정치적 신념은 태산만 해 당차다. 저 작은 체구 어디에서 저런 큰 의지가 샘 솟을까 궁금할 정도로 원대한 꿈과 날가로운 통찰력, 치밀한 기획력이 돋보이는 인물이다. 행정고시라는 어려운 관문을 거쳐 아주 젊은 나이에 경상남도 경제통상국장, 거제시부시장이라는 직함을 거친 탓인지는 몰라도 그는 명석한 행정력과 함께 예리한 판단력을 가진 사람으로 주변에선 통한다.

거제시장에 도전해 두번의 아픔을 겪은 그는 와신상담 그의 웅지를 키우기 위해 지금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 공직생활에서 느끼지 못했던 대중적 이미지 확보, 보통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지역사회 발전과 개혁을 위한 공통분모를 찾기 위해 그는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정치인 중 한명이다. 그래서 그는 선거 도전 패배 이후에 한번도 거제를 떠나지 않고 시내 곳곳을 누비며 자신의 이미지 심기에 노력하는 열성파이기도 하다. 그는 이번 추석에도 돈이나 선물이 아닌 정성이 담긴 전화 인사로 자신의 마음을 일일이 전했다.

 독립운동가 후손의 처절한 꿈 '위대한 거제 창조'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대한제국을 1910년 한일합방으로 강탈한 일본이 1919년 1월 21일 고종황제

   
 
     
 
를 독살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분격한 2천만의 대한민족은 국장일을 앞두고 민족자결주의를 외치며 기미년 '3.1독립운동'을 일으켰다. 이 때 거제의 애국지사들도 3.1운동과 국장일 전국행사에 참여하고 귀향해, 수천장의 태극기를 만들어 아주장날에 맞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으며, 농민과 장사꾼들도 민족의 아픔을 통감, 4월 6일까지 아주.옥포 등지를 중심으로 연 2천 5백여명이 시위에 참가했다.

거제인으로 기미독립운동을 주도한 윤택근(윤영씨의 모
   
 
     
 
친 권혁순씨 외삼촌), 이주근, 이인수,이주목,주종찬, 권오진(윤영씨의 친 외할아버지/2년 옥고를 치뤄 독립운동가로 서훈/ 국립묘지 안장) 등은 일제에 굴하지 않고 체포되어 징역살이를 했으며, 자주독립을 지키기 위해 충절을 다한 그 애국심과 자주독립정신은 영원히 거제시와 함께 빛날 일로서 그 정신은 지금 아주동 3.1운동기념탑으로 승화돼 세워져 있기도 한다.

따라서 그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점에 깊은 긍지를 가지며 선조들의 나라 위한 정신을 그대로 이어 받아 '위대한 거제 창조'를  가슴에 그리고 있다. 결코 선조들의 정신을 잃지않고 거제를 위해 또 다시 자신이 희생 봉사하겠다는 일념에 불타 있는 것이다.

독립운동과 교육 선각자 정신 속에서 자란 유년기

   
 
     
 
윤 영씨는 연초초등교를 거쳐 황포초등교 및 장목중학교를 졸업했다. 그의 부친(尹介金)은 부농의 장남으로 태어나 거제초등학교, 보성고교(서울 보성고)를 거쳐 당시에 시골사람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본 입명관(立命館) 대학에서 유학했고, 그의 다른 두 남동생도 일본 대학에 유학을 했던 당시에 깨어있는 집안이었다. 부친은 귀국후 부산동아대학교 교수,  부산사하초등학교 교장 등에 재임하시다가  몸이 불편해 통영수산학교 교수, 연초, 이목, 황포초등교 교장으로 재임해 그의 유년기는 아버지를 따라 연초, 황포초등교,장목중학교에 다니면서 거제의 끝없이 푸른 바다와 평화로운 전원을 바라보며 원대한 꿈을 싹틔웠다.

부산고등학교와 부산대학교 그리고 행정고시

   
 
     
 
부친의 건강악화는 가족들에게는 크나 큰 슬픔이었고 그가 부친의 병수발을 해야만 할 처지에 까지 놓이게 됐다. 그래서 그는 고등학교 진학에서 첫 좌절을 맛보아야 할 정도로 가정 형편은 어려웠다.모친이 42세가 되어서야 늦둥이로 가진 윤씨를 지우려고 작심, 간장을 잡수시기도 하고 산에서 구르기도 했다는 사연을 들을 때 마다 그는 다부지게 꿈을 더 키웠으며, 음악에 별로 소질이 없었던 헛점을 만회하기 위해 부산고 진학 때는 중학교 3학년 음악책을 몽땅 외어버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13명이 공동으로 만점을 받은 수석합격의 영광을 안고 부산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에게 합격의 기쁨이 채워지기도 전인 그 해에 부친께서 세상을 떠나는 또 다른 슬픔을 맞아야 했다. 시골학생의 부산에서의 하숙생활은  안톤쉬락의 글처럼 '도대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 들 뿐'인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 때가 가장 의미있고 할말이 많았던 시절이라고 말한다. 당시 동기생이었던  능포동의 변내과 변흥수원장은 "덩치도 자그마한 촌 학생이 그 때부터 큰 정치적인 뜻을 가졌고, 야망을 불태웠던 당찬 청년"이었다고 전한다. 부산고등학교를 거쳐 부산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에 합격, 조달청  강원지청 관리과장으로 그는 첫 공직자로서 출발을 했다.

 춘천에서 첫 공직생활과 결혼, 경남도청 이동 그리고 유학 

   
 
     
 
누님의 소개로 마산여고, 숙명여대를 나온 부인 김성희씨를 마산에서 선을 본 후 한달만인 어느 더운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며 결혼식을 올리고 15평 전세아파트에서 신접살림을 차렸다. 눈덮힌 한계령을 넘나들며 강릉바닷가에서 사랑을 속삭이기도 하고, 춘천댐, 소양강변 등을 거니는 것은 그들 부부의 신혼 꿈을 아름답게 수놓았고, 2년여의 춘천 생활은 그에게서 아름다운 추억 그대로란다. 이후 그는 공직생활 20여년을 오로지 일 속에 파뭍혀 원도 끝도 없이 열심히 일만하면서 살았다고 회고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몸이 약해 병역면제를 받아야 했던 처지였음에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야간석사과정을 다녀야 했기에 춘천 전세방과 과천을 오가며 투지를 불태워 배우는 것과 일하는 것에 대해서는 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했다.  1997년 경남도청으로 발령을 받아 3년간의 계장생활과 공직생활 10여년에 이르자 변화없는 일상과 매너리즘에 빠져드는 자신을 채찍질하고 새로운 세계를 접하기 위해 외국유학길에 오른다. 전국 시.도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내무부국비유학시험에 합격, 영국 버밍험대학교 국제정치대학원에서 2년간의 유학생활은 그를 크고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정치인으로 단련시키는 기간이었다. 귀국 후 지방자치제 도입으로 시장, 군수가 되려던 그의 꿈은 좌절되고 말았으나 그는 통상진흥과장, 경제통상국장 등 경제통상 일을 도맡아 시장개척, 투자유치 등 경제분야의 행정통으로 정평을 받았다.

유학시절에서의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
외국생활의 불편함을 호소하는 아내를 설득해 4살된 딸 아이와 조그만 집을 빌려 시작한 유학생활, 2년이 걸리는 학위과정을 1년에 마치려는 그의 계획 때문에 몸무게는 45kg, 허리는 26inch에 시력은 떨어져 안경 도수가 높아졌지만 그는 1년만에 국제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유럽 전역을 두루 돌면서 식견을 넓혔고 선진 문물을 우리나라에도 접목해야겠다는 강한 사명감에 불탔다. 가족과 함께 고물차 Ford Escort를 몰고 30일간 유럽일주를 할 때의 일이다. 국제적 소매치기의 소굴이라는 프랑스 남부의 휴양도시 '니스'에서 공영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도둑이 차문을 열고 기념품, 옷가지 등을 몽땅 훔쳐가 버려 바닷가에 벗어 놓은 츄리닝 한벌 뿐인 신세가 됐다. 돈한푼 없는 국제적인 거지신세가 됐지만 영국으로 되돌아가야 하는데 낭패였다. 대사관의 도움을 받기도 번거로워 과감한 시도를 했다. 경찰에서 도난분실증명을 받은 후 니스에서 최북단 갈리까지 톨게이트 7~8개를 통과할 때마다 분실증명서를 보이며 서툰 영어로 그들을 설득 영국까지 돌아왔던 경험은 평생을 두고 잊을 수 없는 기억이란다.  당시 이 사건은 유학생들간에도 크게 회자된 무용담이 됐다고 한토막의 유학생활을 소개했다.
   
 
     
 
거제시부시장, 선거 출마, 정치인으로 변신- "큰 정치인으로서 거제 위해 봉사하고 싶다!"
2002년 초 합천부군수, 진해시부시장, 경남공무원교육원장 등 외직을 거쳐 경남도 경제통상국장을 맡고 있을 당시 거제시에는 민선초대시장의 구속사건이 터지고 공직사회와 시민사회가 동요하고 있을 때 그는 고향 거제시를 위해 위해 일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을 느꼈다.  자신의 지식과 공직경험을 살려 거제시공직사회를 개혁해 보겠다는 의욕으로 거제시를 지망했지만 당시 김혁규지사는 자신과 김현철씨, YS의 연결고리 속에서 김현철씨를 당선시키기 위해 윤영 국장을 거제부시장으로 보내려 한다는 왜곡된 여론이 거제시에 일고 있다고 하면서 '시장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공언을 하고, 거제시부시장으로 부임하라는 지시에 따라 '시장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공언을 하고서야 부시장에 부임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결국 이 발언으로 인해 공인이 말을 번복했다는 치명적 타격을 받으며 중앙지, 지방지, 지역신문의 집중포화를 받았고 낙선의 좌절과 함께 큰 배움과 깨우침을 터득했다. "공인의 말은 정말로 신중해야 한다"는 진리를 깨달았으며 이 점은 어찌됐건 부끄러운 일이라 시민들에게 사과하는 마음이라고 괴로워했다.

윤영이 그리는 지도자의 모습 - '새로운 거제 건설이 필요한 시점'
"한 국가나 지방의 지도자는 그 흥망성쇠를 좌우하고, 한 조직의 리더는 조직의 생과 사를 가름합니다. 따라서 지도자는 뚜렷한 철학과 세계관 그리고 천지만물에 대한 높은 식견과 안목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광개토대왕이나, 알렉산더 대왕, 율리우스카이사르 같은 인물들을 교훈 삼아 번성을 꾀하고 시민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중요한 덕목으로는 청렴해야 하며,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국제적인 안목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세계적인 조선도시인 거제의 특성상 국제적인 식견과 마인드가 접목되야 한다는 것은 필수라고 강조한다. 그는 그동안 거제의 지도자들이 열심히 지역사회와 나라를 위해 많은 역활들을 잘 해 오셨지만, 이제는 젊은 후배들이 나서서 그의 뜻을 이어 받아 보다 활기넘치는 기상으로 새로운 거제건설을 앞 당겨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이명박 후보를 지지해 새로운 한나라당 대선후보만들기에 동참했고, 이명박 후보가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 듯 자신은 새로운 거제건설에 자신을 던지겠다고 각오를 다진다.
   
 
     
 
<단답 인터뷰>
*청계산악회란?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와 정치적인 의지를 같이하는 사람들의 산악동호회이다. 전국적인 조직망을 가졌으며 경남회장을 맡아서 1년동안 활동해 오고 있다.

*내년 총선을 겨냥하고 있는 정치인으로서 거제에 관해 가지고 있는  vision 이 있다면 ?
-한마디로 '위대한 거제 창조'이다. 위대한 거제란 거제시민이 거제에 살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고, 다른 지역 사람들이 거제에 살고 싶어하는 쾌적하고 품격을 갖춘 도시를 말한다. 거제시가 위대한 거제가 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여러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지금처럼 세계제일의 조선도시의 면모를 지속적으로 유지시켜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도시이어야 한다. 그러나 조선산업의 구조조정에 대비해 휴양관광산업을 동시에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농업. 어업 등 전통산업의 육성을 통해 경제적 균형발전은 반드시 이룩되어야 한다.

둘째, 거제시가 가지고 있는 경제적 부에 걸 맞는 문화. 예술적 가치를 높여 품격있는 선진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문화. 예술적 콘텐츠가 없는 부자도시는 위대한도시가 될 수 없다.

셋째, 대한민국이나 거제시의 장기적 건강적 발전을 위해서 인재를 양성하는 과감한 교육투자가 있어야 한다.

넷째, 시민이 쾌적하게 살 수 있는 도로, 교통, 여가공간이 균형적으로 펼쳐진 인간을 위한 도시계획이 시행되어야 한다.

다섯째, 거가대교 건설, 한일해저 터널의 가능성, 중국과의 직접교류 등 국제화를 지향하는 국제도시가 되어야 한다.

여섯째, 시민을 위해 언제나 'Yes I can'할 수 있는 헌신적이고 적극적인 공무원을 양성하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시장으로 출마하다가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려는 이유는 ?
-정치인으로서 봉사하는데 큰 차이가 있겠는가. 그동안 지역 정치들께서 높은 식견과 능력으로 거제를 위해 크고 많은 일을 해 오셨다. 그러나 이제 10년 정권이 무너지고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기 위해 대한민국의 변화와 새로움을 추구하는 역동적인 정권이 들어설 것으로 확신한다. 지금의 시대정신은 ' 경제와 변화'다. 이제 거제도 바뀌어져 젊고 경험있는 유능한 사람이 역동적이고 새로움을 창조해야 한다는 것이 거제시민의 소망이고 거제 역사의 명령이다. 또한, 2003년 거제시장에 출마한 이래 5년여 세월을 거제 속속들이 돌아다니다 보니 일종의 매너리즘에 빠지고 있지 않나 하는 두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날 잊을 수 없는 추억담
-프랑스 니스에서 최북단 깔리까지 무료로 7개의 toll gate 통과한 경험

*평소 좌우명.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남을 도우는 자에게는 필시 경사스러운 일이 생긴다. 퍼 주고 망하는 장사 없다.

*평소 존경하는 인물
-고구려 19대 광개토대왕. 중국요동은 물론 중원, 중앙아시아, 러시아 땅까지 진출하여 당시 세계를 놀라게 했던 광대한 영토의 확장과 백성을 사랑하던 애민정신과 웅혼한 호연지기

*종교는
 -크리스트교, 고현교회 집사. 교회 등록은 15년 정도 (마산 구암교회) 되었으나 본격적인 신앙생활은 4년.

*좋아하는 노래 ?
-김성수의 '동행', 나훈아의 '영영',

*좋아하는 가수는 ?
-조용필, 조수미

*기억에 남는 책, 영화, 그림은 ?
-시오노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중 “율리우스 카이사르” 상.하권, 렁청진 편저 智 典 1,2,3,4권
-영화 : '애수', '사관과 신사'
-그림 : 미켈란첼로의 ‘천지창조“

*좋아하는 연예인
-잉그리드 버그만, 김혜수

*현역 공무원시절의 감회와 퇴임 이후 거제시민에게서 느끼는 느낌.
-현역 공무원 시절은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 베푸는 시절이었다면 지금은 타인의 사랑과 도움을 받는 코페르니쿠스적 대반전 상황속에서 도와주는 많은 분들에게 언제나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살고 있다..

*앞으로 정치적인 포부는
-마정방종 (摩頂放踵 : 이마를 갈아 발꿈치에 이른다) 의 겸손과 사랑의 마음으로 정치를 하여 '위대한 거제창조'라는 꿈을 그는 실행했다는 定名의 정치인으로 남고 싶다.

*만약 국회의원으로 당선이 되는 꿈을 이룬다면 거제시 발전을 위해 제일먼저 하고 싶은 일은 ?
-감사하고 감사하며 시민에게 미래와 꿈을 드리고 싶다

*술, 담배는
-소주는 한 병정도, 담배는 일시 중지

*본인의 장기나 단점
 o 장기 : 낙천성과 적극성
 o 단점 : 성질 급함과 부끄러움 탐

*가족관계
 o 처 : 김성희 (45)
 o 자(1녀): 윤영주(22)

 <프로필>

  <본관>: 칠원윤씨 (충효공파 38대손)
  <출생지>: 거제시 연초면 죽토리 2구 812번지
  <주소>: 거제시 신현읍 양정리 1080번지 덕산베스트타운@102동 504호
               연구실: 거제시 신현읍 고현리 중곡동 신협앞 '우암경제연구소'
 <종교>: 가독교-교현교회 출석 (집사)
 <취미>: 등산(기타 대부분의 스포츠)- 백두대간 종주가 큰 소망임
 <외국어>:영어(회의, 토론가능), 일어 -초보
<학력>: 1968.02. 장목면 황포초등학교 졸업
             1971. 02. 장목중학교 졸업
             1976. 02. 부산고등학교 졸업
             1981. 02. 부산대학교 법정대학 정치외교학과 졸업
             1988. 02.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수료
             1992.08. 영국 버밍험대학교 국제정치대학원 졸업
 <경력> 1982. 제 26회 행정고등고시 합격
             1983~1986 조달청 근무
             1987~1994. 경남도청 기획계장       
             1995~1998. 경남도청 법무담당관, 통상진흥과장, 행정과장
             1998.07.10~1999.07.21 경남합천 부군수
             1999.07.22~2000.12.01.경남도 진해시 부시장
             2000.12.02~2002.02.17  경남도 지방공무원교육원장
             2002.02.18~2003.01.23  경남도 경제통상국장
             2003.01.24~2003.03.02 거제시 부시장
             2003.04  거제시장 보궐선거 출마 낙선
             2003.08.01~2005.8.31 거제대학 출강(경제실무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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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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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사모 2008-03-14 11:14:45

    초심을 잃지 마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신고 | 삭제

    • 노사모 2008-03-14 11:08:59

      2년 전인가요.지방선거용 현수막에 윤영이는 잘 할끼다라는 글귀가 생각납니다.축하합니다 정말 거제 시민의 한사람으로 축하드립니다. 개혁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고여 썩어 있는 물을 거더내는 것도 개혁입니다.무슨장관 무슨총장 출신이라고 마치 거대한 힘이 있는 것 처럼 거제시민을 속여 십 몇년을 자신의 영달을 위할 줄만 알았지. 정말 거제를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윤영 후보자님께 거제 시민의 한사람으로 부탁니다신고 | 삭제

      • 김철수 2007-09-29 09:18:07

        멋진 거제시를 위하여 희생하고자하는 당신의 마음이 고귀하고 헛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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