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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구4]정치이등병 선언한 귀신잡던 전 해병대사령관 '전도봉 장군'거제! 21세기 해양시대를 이끌어갈 새로운 일꾼
박춘광  |  geojetime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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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10.20  15: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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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민의 알권리 추구와 관내 정치.경제.사회.문화 .역사.인물들의 활동상 등을 보도하고 있는 거제타임즈가 국회의원 후보예상자들을 중심으로 시장, 도의원, 시의원 후보군 및 지역내 인사들에 대한 특별인터뷰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김한겸거제시장, 진성진변호사, 윤영 전 거제시부시장에 이어 김기춘의원 등 본사가 선정하고 응답한 분들의 순에 따라 연속 연재를 합니다. 선거법의 규정에 따라 국회의원 후보 예상자들에 대해서는 가능한 빠른 기간내에 연속 연재를 마칠 예정이며, 기타 인물들의 연재는 선거법에 관계없이 진행됩니다. 인물들에 대해 시민들이 보다 정확하고 자세히 알도록 가능한 범위에서 살아온 과정 그리고 정치관, 인생관과 애향심 등 인물탐구 취재에 노력하겠습니다<편집자> <다음 인터뷰 예고: 김한표 한국정책연구소 이사장>
21세기 해양거제시대를 이끌어갈 새로운 일꾼되겠다.
영원한 해병이기를 꿈꾸는 부드러운 뚝심-'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
검게 그을린 얼굴에 번뜩이는 눈빛, 특이한 박수와 구호, 팔각형의 모자에 빨간 명찰…. 바로 대
   
 
  ▲ 해병대사령관 시절  
 
한민국 해병대원의 모습이다.군대에는 누구나 갈 수 있지만 "해병대의 빨간 명찰은 아무나 달 수 있는 건 아니다. 강철같은 체력과 정신력, 자부심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말하는 전도봉 장군은 아직도 그의 표정 속에 강인한 군인정신이 살아 움직인다.
‘귀신 잡는 해병대’, ‘신화를 남긴 해병대’로 불리는 대한민국 해병대는 육·해·공군보다 훨씬 소수이면서도 그 차지하는 위상은 실로 대단하다. 반세기가 넘는 역사 속에서 빛나는 무용(武勇)을 떨쳐 ‘투지와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정예집단’으로 알려진 해병대의 신화적인 인물, 제22대 해병대사령관 전도봉 장군. 그는 총알이 빗발치는 베트남전에서 최전선을 누볐고 사령관이 돼서는 ‘앞서가는 최강 해병대론’을 부르짖으며 해병대 독립을 위해 투쟁했다.‘평범함 속에 비범함을 간직하라’고 말하던 전도봉 전 해병대 사령관.‘진정한 군인정신, 나라사랑'을 강조하던 그가 정치 이등병이 되기를 선언했다. 이유는 21세기 해양시대 거제를 이끌어 갈 새로운 일꾼이 되고 싶다는 '거제사랑'이 가장 큰 이유라고 말한다.
평생을 '평범속 비범함'을 고집 깨끗하고, 올바르며 거제를 사랑하는 새  일꾼이 되겠다- "나는 정치 이등병"

   
 
     
 
전도봉장군은 1942년 일운면 구조라리에서 출생했다.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 형들과 누나들의 보살핌 가운데 성정이 튼튼하고 기질이 남다르게 더프한 듯 보이면서도 부드러움과 담대함의 양날검을 지닌 도전적인 소년으로 성장해 거제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고, 초등학교 5학년 부터 부산으로 유학을 시작했다. 경남고와 연세대정치외교학과 및 연세대행정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미 해병대상륙전학교와 미 해군상륙전학교를 수료했다.  해병대 사령부 참모장, 해병대 제1사단장, 해병대사령부 부사령관 등을 거쳐 1996년에 제22대 해병대사령관이 되었고 1998년에 해병대 중장으로 예편했다.  화랑무공훈장, 보국훈장, 미국의회의 승인을 얻어 외국군인에게 주는 최고의 훈장인  The Legion of Merit(미정부 공로훈장) 등 군인으로서 최고의 공로를 인정 받아 다수의 훈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는 예수교장로회 염암교회 시무장로로 교회를 섬기며,(사)그린피플회장,  한국사회경제연구소 상임고문 겸 경남지역본부장과 극동방송 아시아방송 운영위원, 아태정책연구원 이사로서도 활발하게 활동 중에 있다.군 생활 만큼이나 적극이고 활동적으로 살고 있는 모습에 주위에서는 역시 '신화같은  전장군 답다"고 평한다.
우여곡절 많았던 젊은 시절- 대학때 데모로 투옥 ROTC퇴출, 해병대사관후보생 지원, 공군비행학교 사건으로 해병대 옷 벗고 육군이등병,소청심사로 복권  '영원한 해병으로'  
   
 
  ▲ 연세대학교 졸업기념  
 
전장군이 ‘누구나 해병대의 일원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대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항상 좋은 길, 맑은 날씨 보다는 힘들고 어려운 길을 즐겨하는 군인들이다.’ 힘든 곳을 더 좋아하는 군인들로 표현되는 해병대를 지원하게된 동기는 참으로 단순했다.해군대장교가 되는 길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해병대로 넘어오는 경우와 일반대학을 졸업하고 해병대사관후보생으로 되는 경우다.연세대학 재학 중 육군 ROTC 4기로 교육을 받다가 6.3 한일회담 반대 데모를 방해하는 깡패 집단이 서울 신촌역 앞에 있어, 그 깡패들을 소탕하는 곳에 있었다가 서대문 형무소에 한 달 동안 갇히는 몸이되었고 그로인해 육군 ROTC에서 퇴출되고 말았다. 졸업 후 해병대사관후보생에 합격했다.그 때 군대는 필수적으로 갔다와야 했는데 병사로 가도 2년 6개월 근무해야 하고, 장교로 가면 해군은 4년인데, 해병대만 유독 3년이었다. 그래서 기간이 짧으니까 이왕이면 해병대 가서 군복무를 하겠다고 해병대를 선택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많이 반대했다는 것. 어머님이 “야, 이놈아, 거기는 군대도 아니라카더라. ‘개병대’라 카더라, 근데 네가 거길 왜 갈라카노?” 라고 할 만큼 해병대의 이미지는 지금과 사뭍 달랐다. .

.젊은 해병대 소위와 조폭 '황우'와의 氣싸움-그때는 이겼지만 지금 생각하면 진 싸움

   
 
  ▲ 비무장지대에서  
 

해병대 소위 임관하고 철 없고, 겁도 없을 때 부산의 조폭 최고우두머리인 '황우'에게 덤벼들었다.. “항복할래, 아니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래?” 했더니, “졌다. 그만두자.”해서 받아들였는데, 뒤에 알고 보니까 대단한 사람이었는데 결코 이긴 것이 아니었다. 그분이 대단한 사람인지를 정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면 철없는 젊은장교의 기상을 그 분이 이해한 것 같았다고 말한다. 다만 그때에도 ‘기(氣)싸움’에서는 이긴 것이었다고 회고한다.그리고 해병대 신임 소위시절 공군부대를 쳐들어간 사건은 자신이 해병대의 군복을 벗어야 했으니 전사령관에게도 여러가지 후유증을 남긴 사건이었다.해병대원들이 버스를 탔다가 공군부대원들과 사소한 말싸움으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자존심 대결의 상황까지 갔는데 결국 시비 끝에 공군들에게 죽도록 두들겨 맞았다.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했던 해병대가  또 다른 천하무적 공군의 빨간 마후라 전투기 조종사를 만나 결국에는 피투성이 싸움이 되었고 기초반 장교 전체가 공군비행학교에 있는 빨간 마후라 전투기 조종사 전체하고 붙는 사태로 비화돼 결국 자신이 희생하기로 마음먹고 군복을 벗었다. 공군과는 나중에 자매결연도 맺고 화해가 되었지만 기소되어 군법회의에서 “전체 동기생들과 모셨던 상관들 다 그대로 살려준다면 혼자 옷을 벗고 해병대를 떠나겠다.”며 해병대를 떠났다. ‘살려고 하면 죽고, 죽으려고 하면 산다’는 말과 같이 옷을 벗었고 결과는 육군에 가라는 영장을 받고 이등병으로 논산훈련소로 가게 된다. 당시 법무감이었던 이양우씨의 도움을 받아 국방부에 소청심사를 했고, 1년 뒤에 해병대 소위로 다시 임관하는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월남전에서 살아 돌아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

   
 
  월남전에서  
 

   
 
  ▲ 월남전에서 살아 돌아오다  
 

 

 

 

 

 

 

 

 

 

 

 

 

 
국방부에서 소위 계급장을 달아주면서 소청심사위원들이 “저 친구는 전쟁터에 가면 소대장을 잘 할 친구다.” 라고 해서 “맞습니다. 보내주시면 소대장을 아주 목숨 걸고 잘 하겠습니다.”고 해 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소대장이 됐다.  전투에 참가 많은 적도 만나고 심지어는 월맹 정규군 CP에 들어가기도 했으며, 월맹군 연대 CP 입구에서 적한테 포위되기도 했는데 정말 기적적으로 살아난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한다.부산 연안부두에서 청룡부대에 파월할 때 기드온 협회에서 성경책을 나누어 주었는데 그 성경책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하나님이 살려 줄 것만 같아서,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그래서 그 처참한 전투에서 살아 남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란다.

   
 
  ▲ 지휘관 회의 주재 모습  
 
해병대 독립운동 선두에
1973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해병대가 완전히 해체됐다. 해군에 통합되어 해병대는 25년간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해군 속에 있어도 해군과 해병대는 역사와 전통, 싸우는 방법, 관습도 다르고 문화도 달라 해군총장이 지휘하는 것보다는 해병대사령관이 해병대를 지휘는 것이 맞는거라며 독립을 요구했다. 해군 참모총장이 수군의 전문가라면, 해병대사랑련관은 해.육상 해병대 고유의 전투전문가로서, 전문가에게 해병대를 맡기는 것이 당연하다며 독립을 요구했다 그러나 군에는 지휘권이 가장 큰 문제이므로 지휘관이 함부로 상관에게 지휘권을 요구하는 것은 좀 고약한 요구로 비춰져 항명으로 비춰지는 어려움을 당하기도 했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제 자식, 제 아내보다 해병대를 더 사랑했습니다"

   
 
  ▲ 결혼식  
 

 ‘최강 해병대론’ 이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낼 때 많은 사람들이 해병대를 알고, 해병대를 거쳐간 대원들이 해병대를 아는 것처럼 내면속에 있는 해병의 정신세계, 해병대의 역사와 전통속에 숨겨진 얘기들을 다 담으려 했다. 그 핵심 가치는 깃발에 쓰여져 있었다. ‘정의와 자유를 위하여’ 라는 그 가치는 굉장히 귀중한 가치라고 말한다. 그걸 이해하는 해병의 헌신과 자부심을 맞추었다 사랑 받아야 강해지고, 강해져야 싸워도 이길 수 있다.. 사랑받는 해병대, 그것이 최강 해병대의 기본이라고 강조한다..그래서‘Once marine always marine.’ (‘한 번 해병대는 영원한 해병대)라는 말이 생기고 한 번 거쳐 갔다고 해서 영원히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속에 끊임없는 변화와 노력을 해야 소위 ‘영원한 해병(always marine)’이 되는 거란다.반면 전사령관은 가정에서는 부끄러운 가장이었다.현역에 있을 때는 "자식, 아내보다 해병대를 더 사랑했는데  ‘남편이 간첩으로 오래 살면, 마누라도 간첩으로 산다.’ 라는 말처럼 해병대로 오래 살다보니 아내도 해병대가 되어서 이해를 해주고 도와주었다"고 한다."솔직히 미치면 같이 미치고, 사랑하면 같이 사랑하고 한 사람이 되는 것"으로  지금도 부인은 “당신은 나보다 해병대를 사랑했다.”고 말한다는 것.그래서 인지 본인은  원하지 않았는데 아들들도 다 자기들이 지원해서 해병대를 마칠정도로 해병대의 분신이다.
살아온 길이 기적의 연속이었듯이 거제에 새로운 정치적 기적을 남기고 싶다.

 군생활 역시 소위로 임관한 뒤 파월 청룡부대 소대장으로 참전, 수없이 많은 날을 죽음의 그림

   
 
  ▲ 케네디안 록키에서 부인과  
 
자와 싸워보기도 하고, 온갖 것을 경험하며 험난한 길을 걸었지만 해병대 사령관까지 오르는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기적의 연속이었다. 해병대 생활도 처음부터 순탄치는 않았지만 ‘정의와 자유를 위하여’라는 해병대 이념을 실천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 결과 이같은 은혜를 입을 수 있었던 것 같다는 것. 정치관, 경제관, 그리고 현실정치를 바라보는 소신을 묻는 질문에 "내 학창시절이었던 60년대 초반은 혼돈의 시대였다. 나 역시 그 틈바구니속의 한 젊은이이자 피해자였기에 올바른 정치의 필요성을 몸으로 느끼면서 살아왔다. 우리 현실은 정치없이, 정치하는 사람없이는 국민의 삶이 제대로 영위될 수 없음에도 많은 사람들은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무관심과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 그 근간에는 많은 정치인들이 ‘바르게 다스리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정치인 본연의 책무를 외면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주어진 자유와 권한, 의무와 책임을 공유하면서 ‘바르게 다스리는 일을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고 싶고 실천하고 싶다. 경제적 관점은 서민들의 영원한 소원인 經世濟民(경세제민)을 실천하는 것이다. 세상을 잘 경영하여 백성을 잘 살게 한다는 것은 곧 현실 정치와 직결되는 것으로 정치를 잘하여 나라를 잘 이끌어가는 것이야 말로 경세제민의 출발점이라 생각한다." 며 거제에 새로운 정치적 기적을 남기고 싶다고 포부를 밝히고 있다. 

모든 국민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살기 원하는 도시 거제를 만들어 보는 것이 소원

거제발전을 위한 주장이나 정견에 대해서는 "거제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기본 이치처럼 거제시민이 바로 주인이자 책임자이며, 심판자라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즉 陶工이 진흙을 주물러 원하는 형상을 만들어 내듯이 시민 모두가 도공이 되어 시장,시의원, 도의원, 국회의원을 자신들의 손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형상으로 다듬고 만들려는 주인의식부터 회복해야 한다. 그래서 바르게 다스리는 일을 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시·도의회와 시장, 국회의원 3박자가 힘을 모아 거제시 발전을 위해 매진토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바탕으로 조선산업과 천혜의 관광자원을 잘 관리 보전하고, 경영하여 대한민국에서 제일 살고싶어하는 환상의 섬 거제도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며 모든 국민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살기를 원하는 도시로 거제시가 되도록 만들어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한다..

지난날 잊을 수 없는 추억담이나 소개하고 싶은 사연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거제사람들과 함께 살았다. 방학이 끝나고 다시 유학길에 나설 때마다 부둣가와 버스정류장에 환송나와 치마끝을 풀고 줌치(천으로 된 돈주머니·쌈지)를 꺼내 꼬깃꼬깃 보관하던 쌈짓돈을 꺼내 주머니에 넣어주며 “야 이사람아. 나중에 출세하면 우리 자식 잘 돌봐주게, 부탁하네” 라시던 동네 어르신들의 정겨웠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게 들려오고 있다. 이제 내가 그분들의 바램과 은혜를 갚아야 할 차례라고 생각한다.

-귀하의 인생관이나 연애관, 생활철학은

▶盡人事待天命(진인사 대천명)이 나의 인생관이요 생활철학이다. 연애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인데 '사랑이란 끝없는 용서와 이해와 기다림'이란 말이 있듯이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거제인으로 살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은?

 ▶1959년 태풍사라호때 모든 선박의 통행이 금지됐는데 부산 뱃머리에서 추석장거리를 싣고 거제도로 몰래가려는 짐배에 운좋게 승선했다. 그러나 운항도중 어떻게나 파도가 세고 높았는지 아무래도 배가 파도속에서 두동 강 날 것만 같아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바닷물로 뛰어들 준비를 갖추고 밖을 내다보니 바다가 온통 뒤집혀 육지고 하늘이고 아무것도 보이는 것 없이 험난한 파도와 흰물거품 뿐이었다. 그 때 느꼈던 절대 절명의 위기는 평생 내 기억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와 함께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는 왜 이명박후보를 지지하게 됐나?

 ▶목사님의 권유도 있었지만 이명박후보는 분명히 좌파와는 영합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다. 또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전문경영인이었던 그가 지난 10여년간 무너진 우리나라 시장경제와 실물경제를 살려낼 수 있는 인물이라고 믿고 있다. 여기에 강력한 추진력과 리더십으로 성공신화를 이어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에 자신은 있는가?

 ▶이 역시 盡人事待天命아니겠는가.

-거제시민에게 당부하고픈 말은?

 ▶앞에서 말했듯이 거제의 주인은 바로 거제시민들이다. 21세기는 해양의 시대이며, 우리 거제도는 천혜의 해양자원을 갖춘 도시인 만큼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 특히 새로운 시대를 새롭게 열어갈 강력한 추진력과 결단력을 갖춘 새 일꾼을 선택하는 것이야 말로 거제의 밝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첫걸음일 것이다.

<기타 질문>

-평소 좌우명이나 가훈은?

 ▶盡人事待天命, 가훈은 정직·성실·겸손·담대

-가장 존경하는 인물과 이유는?

 ▶이순신장군, 위국헌신과 순종을 실천한 분이시기 때문이며, 정신적·이념적 혼돈시기인 오늘날 우리 사회에 있어 가장 중요한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종교 및 믿은 기간, 종교적 지위는?

 ▶기독교, 25년, 장로

   
 
  ▲ 최수종,이덕화 등 연예인들과  
 
-좋아하는 노래와 가수는, 애창곡은?

 ▶나훈아, 신형원의 개똥벌레. 개똥벌레는 지난 1992년 계룡대에서 열린 국군의 날 기념 MBC 우정의 무대 사상 처음으로 현역장성이 무대에 올라 부른 노래로 유명하다. 그 당시 갑작스레 정한 노래여서 음정과 박자를 제대로 맞추지 못해 곤란을 겪었던 일도 있지만 이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중 하나가 됐다.

-기억에 남는 책, 영화, 그림은?

 ▶책=바라바, 영화=쎈, 그림=이삭줍는 여인

-좋아하는 연예인은?

 ▶평소 연예방송을 잘 보지 않기 때문에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

-평소 군생활과 퇴역후 거제시민에게서 느끼는 소감은?

 ▶향수란 단어는 고향을 떠나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시절 고향을 떠난 뒤 부산을 시작으로 월남의 하늘아래까지 수많은 곳을 떠다녔지만 내 가슴의 한켠에는 늘 고향의 땅과 바다와 바람이 함께 해 있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제 나는 그 고향으로 돌아와 나를 낳아준 땅에서 여생을 보내며 헌신하고 싶다. 내가 살았던 시절과는 너무나도 많이 변했지만 거제시민이라는 이름하나만으로도 반갑고 정겨울 뿐이다. 나 역시 그런 거제시민중 한사람이 되고 싶다.

-앞으로의 정치적인 포부는?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선택한 것은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변치않고 있다. 하지만 우선은 내가 태어난 고향, 나의 부모님이 묻혀있는 고향발전에 미력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

-만약 국회의원 당선이 되는 꿈을 이룬다면 거제시 발전을 위해 제일 먼저 하고픈 일은?

 ▶시장과 시의회와 협력해 거제발전을 위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한다.

-술, 담배는 어느 정도하는가?

 ▶예전에 술과 담배를 했지만 지금은 하지 않는다.

-본인의 장기나 단점을 든다면?

 ▶강력한 추진력과 리더십 및 결단력이 장점이라면 고집이 너무 세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군 근무시절 이 고집 때문에 오해를 싸기도 하고 곤란을 겪기도 했었다.

   
 
  ▲ 가족사진  
 
-가족관계는(성명 연령 직업)

 ▶처   유명자·63· 롯데백화점 부산점 ‘그린힐’경영

   장남 전진용·39· 미국 텍사스 A&M대학교 유학중

   차남 전진서·38· 미국 LA PRIMER JUN EDUCATIONAL INSTITUTE경영

   3남  전진윤·36· 롯대백화점 관악점 일식집 ‘SAPPORO'경영.

전도봉 장군 프로필
1. 생년 월일과 출생지, 학력 및 경력
- 1942년 10월 10일생. 거제시 일운면 구조라리 94 출생
- 경남 고등학교 졸업
-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및 동 행정대학원 석사과정 졸업
- 미 해병대 상륙전 학교
- 미 해군 상륙전 학교
- 해군대학 정규과정
- 청룡부대 소대장으로 월남전 참전
- 해병대 도서 경비부대 21중대장
- 해병대 제 2사단 51대대장
- 해군 서울지구 헌병대장
- 한미 연합군 사령부 작전참모부 계획부처장
- 해병대 제 1사단 3연대장
- 해군본부 인사참모부 동원예비군 처장
- 해병대 제 2사단 참모장
- 해병대 사령부 참모장
- 해병대 교육훈련단장
- 한국 합동참모본부 민사심리전 참모부 민사차장
- 해군 참모총장 해병대 보좌관
- 해병대 제 1사단장
- 해병대 부사령관
- 해병대 사령관
- 86 아시안게임 운영요원
- 88올림픽 운영요원 겸 KBS방송국 조정경기 해설위원
- 90 성우회 회장
- 사단법인 한국그린피플 연맹 총재
- 현 극동방송, 아시아방송 운영위원
- 현 사단법인 아태정책 연구원 이사
- 현 대한민국 성우회 정책위원
- 현 사단법인 해병대 전우회 중앙회 고문

2. 상 훈
화랑 무공훈장
보국포장
보국훈장 삼일장
보훈훈장 천수장
미정부 공로훈장 THE LEGION OF MERIT
거제 JC대상
미국 로스앤젤리스 시장 감사장

3. 저 서
논문 : 한국 해양 전략 당면과제
       해병대 전통의식 고찰
저서 : 앞서가는 최강 해병대
       지휘관 편지
       그대 이름은 해병대

   
 
  ▲ 미 태평양사령관과 함께  
 
   
 
  ▲ 경남고등학교 재학시절  
 
   
 
  ▲ 해병대창설기념식에서 부인과 함께  
 

 

 

 

 

 

 

 

 

 

 

 

 

 

 

   
 
  ▲ 틸러리한미연합사령관과 하우웰태평양함대사령관과 함께  
 

   
 
  ▲ 상륙훈련 참관  
 
   
 
  ▲ 양로원 방문  
 

 

 

 

 

 

 

 

   
 
  ▲ 뮤지컬 명성황후 주연들과 함께  
 

   
 
  ▲ 연세대학교 조정선수 시절  
 

   
 
  ▲ 연세대학교시절 조정선수로 활약할 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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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5
전체보기
  • 거제발전 2007-10-30 12:15:30

    평생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분이시네요. 거제의 발전을 위해 애쓰시는 모습이 너무 당당합니다. 꼭 큰 성과로 이어지리라 확신합니다. 거제가 앞으로 30만, 35만의 시대로 진입하는 역할의 선봉이 되어주시길 기대합니다.신고 | 삭제

    • 거제시민 2007-10-30 00:32:35

      21세기를 앞서가는 역동적인 변화와 개혁을 이루어 낼 수 있는 적임자 전도봉.... 해병대 사령관 출신의 해병대 정신으로 식상한 거제 정치구도를 확 바꾸어 주시기 바랍니다. 거제시의회의원, 의장, 도의회의원, 거제시장, 국회의원이 하나되어 거제시 발전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적임자..거제시를 듀바이처럼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들 인물로 추천 합니다.신고 | 삭제

      • 해양인 2007-10-29 14:16:13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선택한 것은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변치않고 있다. 하지만 우선은 내가 태어난 고향, 나의 부모님이 묻혀있는 고향발전에 미력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
        ▶시장과 시의회와 협력해 거제발전을 위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는 것
        상기와 같은 내용을 보면서 거제의 희망을 보는것 같아 좋습니다. 세계적인 해양관관휴양도시신고 | 삭제

        • 도끼..... 2007-10-29 12:40:41

          위내용 너무 위풍당당하더군요.........
          믿음직스럽고 충심을다해 전진하는 모습도 좋구요....^^
          월남전에서 고생한 그런마음으로 동료애,전우애.....그런마음으로
          우리 거제발전에 힘을실어주세요.......신고 | 삭제

          • 시민 2007-10-26 09:40:58

            신화를 남긴 해병대 정신으로 정말 거제 새 정치질서를 만들어 주면 좋겠다. 일시적으로 정치 할 때만 거제에 있을 것이 아니고 빨리 고향 거제로 이사오세요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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