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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구5]택시기사로 민생 체험-김한표 전 거제경찰서장와신상담 '모진 역경 걸어온 서민들의 대변자' 자임
박춘광  |  geojetime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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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11.07  23:4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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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책연구소 김한표 이사장은 지금 입술이 터져서 피가 흐르면서도 거제시내를 누비며 그가 만나야 할 사람, 그를 불러주는 사람이면 어느 곳이든 마다 않고 발품을 팔고 있다. '와신상담' 이란

   
 
  ▲ 뉴스메이커 표지 인물로 게재된 김한표 한국정책연구소 이사장  
 
말 그대로 그는 이번 만은 결코 물러설 수 없다는 배수진을 치고 거제시내 동서남북, 강의실, 상가집, 서울-거제를 오간다. 전직 경찰서장이라는 명예보다 택시운전기사로 불리울 망정 서민들이 살아가는 삶의 애환을 맛보고자 6개월간이나 택시운전자로 거리를 누비던 김한표 한국정책연구소 이사장. 그에게 있어서 거제는 그의 생명의 근원이자 바로 자신의 전부라고 말한다.
 
장목면 관포 마을서 바다와 함께 웅지를 키우던 어린시절- '바다처럼 넓은 마음을 키우고 싶었다'
6.25 전쟁의 포탄 소리가 멈춘 이듬해인 1954년 추석을 넘긴 청명한 가을 어느 날 오후 이집 저집 굴뚝에서 저녁 짓는 연기가 막 피어 올라갈 때 그는 장목면 관포에서 고고지성을 울리며 태어나 5남매의 맏이로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 대개 농어촌이 그러하듯이 반농반어의 집안이었다. 안동을 본관으로 김씨문중에 아버님은 6.25 참전용사이었고, 어머니는 진주 하씨, 할머니는 전주 이씨, 외할머니는 칠원 윤씨 집안에서 그는 어린 시절의 꿈을 영글며 바다와 함께 자랐다.

 그런데 생일이 다가오면 특별히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난단다. 어머니는 스물 한 살에 형제가 여섯이나

   
 
  ▲ 장목중학교 소풍(간곡 바닷가에서)  
 
되는 가난한 집 맏며느리로 시집와  갓 시집온 새댁이 만삭의 몸을 안고 추석 음식 장만하랴 가을겆이 거둘랴 몸과 마음이 참 힘드셨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늘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 뿐이라고 항상 애처러워 한다는 것. 추석 지나고 9일 만에 자기가 태어났으니  어머니의 젊은 시절의 고달픔을 가슴져미게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어릴 땐 그도 여느 동네 아이처럼 개살굿게 자랐다. 마음 안 맞으면 친구들과 한바탕 싸우기도 하고 잘 놀고 있는 계집애들 고무줄도 공연히 끊어버렸다. 책 보따리는 독립군처럼 어깨에 메고, 학교 갔다 오면 바로 마루에 휙 던져버리고 바다로 산으로 어디든 쏘다녔다.

 초등학교 때에는 옆으로 흰 줄이 난 까만 팬티바지에 흰색 러닝차림이 같은 또래들의 여름 정장이었다. 겨울이 되면 코르뎅 저고리 소매 끝에 코를 발라 빤질빤질 윤이 나는 옷을 입고 다니기도 했는데 봄.여름. 가을. 겨울용이 따로 없었다. 여름옷을 겨울에 입으면 겨울용이고 겨울옷을 봄에 입으면 봄옷 이었다. 옷에 큰 신경을 쓰지 않고 지내던 시절이었다.

어릴 적 관포라는 동네는 장목면 중에서도 가장 잘사는 동네였다. 겨울에 대구어장이 열리면 한집에 몇 동씩 대구를 잡아 올리곤 했다. 한 동은 100마리를 말하는데 대구 철이 되면 이 동네는 경기가 참 좋았다. 메기도 한창이었는데 요사이는 오히려 메기가 더 시원한 맛을 자랑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메긴 생선 축에도 못 끼었다. 가끔 대구도 한 마리씩 말리긴 하지만 집집마다 메기를 말려 처마 밑에 쭉 걸어 놓곤 했다.

철 지나 밖에서 손님이라도 오는 날이면 대청마루 독에다 넣어 놓은 바짝 마른 메기를 끄집어 내 빨래다다미 위에다 놓고 실컷 두들겨 팬다. 야들야들해지면 찜으로 해서 먹든지 미역국에 넣어먹던지 아니면 그냥 찢어서 어른들 술안주로 즐겨 사용하곤 했다. 메기포를 고추장에 찍어 먹던 맛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단다. 관포(冠浦)의 관자는 면류관 관자를 쓴다. 조상들은 이 동네 이름자를 보며 앞으로 언젠가는 면류관을 쓴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고들 했다는 것. 부산(동래)에서 온천이 나오고 부곡과 온양에서도 역시 온천이 나왔다며 옛 조상들이 이름을 지을 때 그냥 지었겠냐는 것이다. 그럴듯한 얘기를 흥미 있게 이어간다.

 여름철에는 거의 바닷가에서 살다시피 했다. 소금에 절인 이마며 새까맣게 탄 몰골이 영락없는 아프리카의 쿤타킨테가 아닌가. 바다는 그와 친구들에겐 유일한 오락 장소였고 어린 시절 추억의 무대였다.

 그냥 하는 수영은 시시해서 파도타기를 즐겼는데 밀려오는 파도와 같이 위로 솟아  오르다 타이밍이 잘 안 맞으면 물세례를 맞고 쾍쾍거렸다. 잠복질(잠수)을 해 뽐내려고 배 뒷머리에서 앞머리로 길게 뚫었는데 고개를 쳐들다가 머리로 배 밑창을 쥐어박던 일도 있었다. 겁 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즐기던 시절이 기억에 살아있다고 회고 한다. 그것은 추억이라기 보다는 먼 미래를 향한 그의 말없는 몸짓이었고 오늘을 꿈꾸는 야망의 원천이었으며 오늘을 인내할 수 있는 끈기를 연마하던 순간들이었다

경찰대학에서 얻은 별명 '돌고래'

   
 
  ▲ 1982년 경찰간부후보생 시절 인천 송도 앞 바다에 해양훈련 때(이때 수영대회에서 1등을 해서 돌고래라는 별명을 얻었다.  
 
초.중학교 때 익혔던 수영실력이 경찰간부교육을 받던 시절에 유감없이 발휘하게 된다. 학교장을 비롯한 전간부들과 동기생 전원이 모인 1982년 여름 인천 송도 앞바다. 수영대회를 하는데 전국에서 모인 자칭 지역대표라고 하는 물개들이 앞 다투어 출전한다. 거제물개, 동해물개, 부산물개, 완도물개, 전주물개(이 물개는 실내 수영장에서 기량을 닦음)  등등 나름대로 수영을 익혔다고 하는 친구들이 고장의 명예를 걸고 출전한 셈이다. 다른 친구들이 자유형으로 폼 나게 나올 때 그는 설설 평형으로 물살을 갈랐다. 한참 가다 주변이 조용해서 보니 경쟁자들은 저 뒤에서 열심히 헤엄쳐 오는 게 아닌가. 배영으로 여유를 한껏 보여주었다. 어떻든 거제물개가 당당히 1등을 하는데 이때부터 그의 별명이 '돌고래(돌핀)'라 불리게 됐다.

 어쨌거나 그런 몰골로 산으로 들로 소 먹이러 갔다. 주로 감산골 등빼이(산등성)로 가는데 동네 형들과 또래들이랑 같이 갔다. 산 이쪽에서 소를 놓아 저쪽에서 찾아온다. 산등성이에서 소가 안보이면 동네 형들은 그와 또래들을 정찰대로 보냈다.

 소를 풀어놓고 밀이나 보리를 꺾어 와서 ‘밀 모태’‘보리모태’를 했다. 마른 나뭇가지에 불을 지펴 보리나 밀을 그을려 손에 비벼서 후후 불어 한입에 털어 넣고 씹으면 정말 맛있다. 손이나 얼굴이 거머케(검게) 되면 영낙없는 쿤탁킨테다. 모두들 서로를 쳐다보며 히죽히죽 웃는다. 지 얼굴(자기 얼굴)은 못보고 남의 얼굴만을 쳐다보고는 ‘꼴이 말이 아니라’고 잇발을 드러내고 웃엇던 천진난만한 유년시절이었다. 그런 그 시절이 그를 거제의 사나이로 성장 시킨 것이다.

 "가끔씩 옆집 밭에 고구마를 슬쩍 뽑아 와서 풀잎이나 잔디에 문질러 와장와장 씹어 먹는다. 그때 먹던 고구마는 왜 그렇게도 맛이 있든지…… 봄에는 참꽃을 우물우물 씹어 먹던 기억, 피비가 나올 땐 피비를 한 움큼씩 까서 씹으면 단맛이 나고 상긋한 향이 입에 맴돌았다."고 말하는 그는 어디가서도 속일 수 없는 거제 촌놈들의 성장기 그대로였다. 지금은 그 때로 돌아 갈 수 없지만 새록새록 그리운 시절이라고 말한다. 바깥세상을 까맣게 모른 체 지구촌 한구석에서 거제 촌놈은 그렇게 유년시절을 보내고 있었다는 것.

감성에 젖어 눈물을 흘리며 연습한 웅변은 오늘날 그를 '현장 즉설연설의 고수'로 만들었다.
사라호 태풍이 불어왔을 때는 6살 되던 해다. 그 사라호는 추석을 맞은 이 산하를 초토화시켜 버렸다. 추

   
 
  ▲ 경찰대학 경찰간부 후보생 시절 웅변대회 최우수상을 받고  
 
석이라도 별로 장만할 게 없던 시골이라 집집마다 호박 지짐을 해서 산데미(대나무로 엮어 만든 널따란 그릇)에다 늘어놓았는데 불어 닥친 광풍 폭우에 추석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친구 집 앞마당에 집체만한 고깃배만 덜렁 얹혀 있었다.

 바다는 난리를 쳐 뒤비져서(뒤엎어져서) 어른 손바닥만 한 대합조개들이 정신없이 널려져 있었다. 태풍이 소강상태로 되자 동네 아낙네들이 소쿠리며 다라이를 이고 들고 마치 보물을 찾은 듯 신바람 나게 달리고 있었다. 그 때 한 친구의 아버지는 담장이 무너지는 바람에 사라호 태풍과 함께 돌아가시기도 했다고 한다.

 논밭이나 우시장에서 가설극장이 열릴 때면 어린 마음에 영화는 보고 싶어 동네 형과 친구들이랑 벼나 별 전법을 다 구사해서 개구멍으로 들락거렸지만 숨어있던 직원들에게 붙잡히는 날이면 초상 날이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 '이 세상 어딘가에', '빨간 마후라' 등이 당시엔 주옥같은 명화들이었다. 

선전방송을 하러 다니는 사람들 꽁무니를 새까만 얼굴로 뒤 따라다녔는데 하도 많이 들어서 지금도 방송

   
 
  ▲ 거제경찰서장 재임시 축사 모습  
 
내용을 외우고 있단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시는 관포동민 여러분! 여기는 장목 우시장에 설치된 장목가설극장입니다. 오늘 저녁진지를 일찍 잡수시고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손에 손 잡고 저희 가설극장으로 꼭 왕림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오늘저녁 상영할 제목은 저 하늘에도 슬픔이, 삼천만 국민을 울음바다로 내몰았던 영화, 눈물 없이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의 집 마당이 길보다 위에 있었는데 매일 저녁 동네 건너편을 보면서 그는 웅변을 해 댔다. 때로는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시는……’ 가설극장 가두 선전방송을 흉내 내기도 하고 무슨 소재거리든 작사 작곡을 해됐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의 열 내는 목소리를 귀 따갑게 들었던 친구가 “정치인이 될라꼬(되려고) 어릴 때 그렇게 웅변을 해 됐느냐” 라며 가끔씩 모임 있을 때마다 화두로 삼고 있다고 한다.  그토록 철없던 그의 어린 시절은 지금도 그의 폐부 깊숙이에서 숨 쉬고 있다. 이것이 바로 '거제사랑의 본질' 이란다

<일문 일답>
-학창 시절:
 

   
 
  ▲ 부산 동아고등학교 재학시절 친구들과  
 
나는 장목면 장목리 소재 장목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장목 중학교에 입학  했다. 부산 동아고등학교와,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석사 학위를 받았고, 다시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 군 시절
  1975년 3월 25일 창원 39사단에 거제시 병력만 1개 중대 규모가 입대하였다. 지금도 그때 입대 동기생들이 모여 친목을 도모하고 있으며, 각계 각층에서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다. 나는 육군 병장 출신이다.

-사회활동 기간
  민중의 지팡이로 봉사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하며 경찰에서 18년의 세월을 보냈다. 경위로 임관할 때부터 청와대로 뽑혀가 경호실에서 잔뼈가 굵어졌고 이어 시위 군중들과 함께 보낸 시간, 다시 대통령후보 경찰 경호대장으로 전국 유세장 수행 경호, 청와대 민정비서실에서 땅굴을 확인하러 다니던 일, 다시 청와대경호실에서 영부인과 그 가족분들의 경호 안전을 책임지고 오대양 육대주를 다니던 일, 거제경찰서장으로 부임하여 지역사회에 봉사하던 일,

   
 
  ▲ 청와대경호실 가족경호부장 시절(프랑스 미테랑대통령 국빈 방문시) 영부인 옆  
 
정치에 입문하여 억울한 옥고를 치루고 목숨을 건 단식투쟁도 하고 정치의 비정함을 눈물겹게 체험하며 인동초 처럼 끈질기게 살아온 세월, 창신대학에서 1년 6개월 제자들을 가르치던 일, 지난해 9월부터 금년 4월까지 6개월간 거제교통이라는 택시회사에서 택시기사로 일하던 추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 단식투쟁을 하던 통영기독병원 입원실  
 
-정치관
  정치란 먼 곳의 사람들이 흠모하여 찾아오도록 해야 하는 것이며 가까운 곳의 사람들이 따라오도록 하는 것이다. 서민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정치야 말로 가장 좋은 정치라고 공자가 말하듯이 무섭고 가혹하고 무능한 정치는 진정 참 정치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서민정치, 생활정치, 봉사정치를 나의 정치관으로 삼고 있다.

 종합한 글이 노자선생의 척제현람 능무자호(滌除玄覽 能無疵乎) 이 여덟 글자가 아니겠는가? “몸소 허리를 굽혀서 백성들이 들에 나가서 일한 후에 대청마루에 올라가기 위해 섬돌에 벗어놓은 신발의 먼지를 털어낼 수 있으며 또한 어두운 곳을 구석구석 살피어 그 아픔을 능히 치료할 수 있으면 정치를 하라는 가르침의 글속에서 나는 정치를 찾아내고 있다.  
 
-경제관
  열심히 땀 흘려 일을 하는 사람이 잘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보편적인 원리가 아니겠는가. 자유로운 시장경제 원리가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유 시장경제원리에 의해서 소외 받는 계층들을 위한 제도적 장치와 배려가 필요하다. 나는 경제성장과 함께하는 분배의 개념을 생각하고 있다.

-현실정치를 바라보는 소신
  정치란 과거와 현재를 근본으로 하여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인간 삶의 한 도구다. 삶의 질을 높이는 일

   
 
  ▲ 청와대 민정비서실 근무 시절 김포 주둔 군부대에서 땅굴확인 작업  
 
에 정치가 앞장서야 한다. 작금의 정치는 과거에 너무 치중해 있는 것 같다. 과거를 돌아보는 것에 너무 집중하면, 현재와 미래를 볼 시간과 공간이 없다. 말의 정치가 아닌 실천의 정치가 우리 정치를 지배해야 할 것이다. 

- 거제 발전을 위한 귀하의 주장이나 정견
  우리 거제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 싸여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가진 곳이다.  조선 산업의 활성화로 세계적인 조선메카로 부상해 있다. 우리는 여기서 더 나아 가서 바다를 통해 5대양 6대주로 나아갈 수 있는 통로를 확보 하고 있다.

 앞으로 세계적인 관광자원이 유입 될 수 있도록 관광 해양 휴양 도시를 건설하고, 국제적인 물류 중심 도시, 세계경제 흐름을 집중시킬 수 있는 금융 허브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항만개발과 철도건설, 고속도로 개통, 새로운 도시계획 등을 통하여 100년 대계의 새로운 거제를 디자인해야 한다.

-지난날 잊을 수 없는 추억사연
  너무 많아서 다 말할 수가 없다

   
 
  ▲ 1986청와대 경호실 근무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과 눈싸움을 하고 있다'  
 
-인생관
  인간은 태어 날 때부터 하늘이 준 귀한 선물을 가지고 태어 난다. 소위 천부적인 인간 권리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 존중과 생명사랑에 대한 권리이다. 그래서 나는 한때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일에 종사해 왔었다. 사람됨을 가장 귀하게 생각한다. 내 인생이 귀하듯이 다른 사람의 인생 또한 그러할 것이다.  타인의 삶에 대한 가치를 인정해 주고 존중해 주는 일이 이 시대 우리사회엔 더 없이 필요하다.

 전쟁과 폭력과 멸시와 천대 없는 세상에서 행복을 누리는 것이 인생의 가장 소중한 길이라고 나는 생각

   
 
  ▲ 육군병장 김한표  
 
한다. 그래야 우리 국민 모두가 꿈꾸는 국민성공시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삶에도 그러하거니와 타인에게도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내 생활 철학이다.

- 대선경선 과정에서는 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게 되었나?
 우선 이명박 후보가 좋아서 지지를 하게 되었고 둘째는 이명박 후보가 필요해서 지지를 하게 되었다. 나는 이명박 후보를 첫째 합리적인 리더십을 갖춘 인물이라 생각 했다. 청계천 공사 때 4천 번이나 넘는 만남을 통하여 반대자들을 설득시켜 나가는 합리적 인내 리더십을 가졌다고 본다. 두 번째는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옳은 일 이라고 판단이 되면 실천에 옮기는 합리적인 용기를 가진 인물이다. 셋째는 세계적인 경제 강국으로 다시 성장하기 위해서 경제를 잘 아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다음 공천에서 한나라당 공천에 자신이 있는가?
   자신 있다.

-거제 시민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
  언제나 따뜻한 시민들의 격려와 관심을 먹고 살아가는 저에게 거제시민 여러분은 제 정신적 토양이며 자양분입니다. 지금 우리거제는 새로운 변화가 요구되는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함께 뜻을 모웁시다.

-평소 좌우명이나 가훈
  “쓸모 있는 사람이 되자”

-가장 존경하는 인물
  이순신: 지성과 감성과 야성을 골고루 갖춘 인물
  모세 : 고난의 세월 털어버리고 민족의 꿈을 이루게 한 인물

   
 
  ▲ 한국외국어대학교 졸업식. 부모님과 함께  
 
-종교는?
  기독교, 어릴 때부터, 집사의 직책

-좋아하는 노래?
  “남자의 길”, “전우여 잘 자라” 와 복음송,  가수로는 이미자, 조용필

-기억에 남는 책은?
  “노자를 웃긴 남자”

-기억에 남는 영화?
  “빨간 마후라”, “벤허”

-좋아하는 연예인?
   안성기, 전도연

- 정치적 포부
  앞으로의 정치적 포부는 시민의 숨결이 살아있는 생활정치, 보복 없는 통 큰 정치, 소외 계층과 함께 하는 서민정치, 권력정치가 아닌 봉사정치를 통하여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다운 대접을 받고 사는 나라와 지역을 만드는 일에 앞장서서 일하고 싶다.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꿈을 이룬다면 거제시 발전을 위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
  거제 100년 대계를 이룰 지역비전을 창출해 내고 이를 토대로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일과 정치적 현안사업에 대한 점검과 추진 
  
-술, 담배는 어느 정도인가?
  담배는 못하고 맥주는 한~두잔 정도

-본인의 장점 및 단점
  한번 사귄 만남을 소중히 생각하여 끝까지 이어가는 의리가 장점이라면 사람을 쉽게 믿어주는 단점도 있다.
-가족관계
 아버지, 어머니를 비롯해서 아내(이경숙), 2명의 딸(대학생), 아들 1명(고3)

   
 
  ▲ 아들(고3), 딸(대학생들 2명)과 부인과 함께 애버랜드 나들이 기념촬영  
 
   
 
  ▲ 거제경찰서 자율방범대연합회 발대식  
 


   
 
  ▲ 거제경찰서장 취임 연설  
 

 

   
 
  ▲ 대우조선 진수식 참석 기념 촬영  
 
   
 
  ▲ 98년 5월 삼성조선소 석유시추선 명명식 참석 기념촬영  
 

 

 


 

 

 





   
 
  거제교통 택시운전자 김한표  
 
   
 
  ▲ 거제시해병전우회연합회 창립기념식 격려  
 

 

김한표 한국정책연구소 이사장 프로필
성명: 김 한 표 (金 漢 杓) 54년 8월 8일생 (당 53세)
주소: 경남 거제시 장목면 관포리 417 번지

(학력)
1961- 1969 장목초등학교, 장목중학교 졸업
1970 - 1972 부산 동아고등학교 졸업
1974 - 1982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 졸업
1983 - 1986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졸업
1997 - 2004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박사과정)졸업

(경력)
1983: 경찰간부후보생 제 31기 졸업 경위 임관
1983: 청와대 경호실 제 101 경비단 근무
1988: 경찰청, 서울지방경찰청, 부산지방경찰청 등에서 근무
1989: 경찰청 수사 간부 연수과정 제 8기 수료
1992: 제 14대 대통령후보 경찰경호대장
1993: 청와대 대통령 민정비서실 행정관
1994: 청와대 대통령 경호실 가족경호부장
1998: 경남 거제경찰서장
2000: 1.15 사임
2004. 8. 25 –2006.2.25. 경남 마산 창신대학 경찰행정학과 초빙교수, 겸임교수
2005. - 경기대학교 사회교육원 출강, 동의대학교 사회교육원 출강, 등
2006. 9.27-2007.4.7 거제교통 택시기사(6개월)
2007: 미래사회국민포럼 상임운영위원 (현)
2007. 7: 한국정책연구소 이사장 (현)

(당력)
2000: 민주국민당 부대변인 겸 거제지구당위원장
2000: 제 16대 국회의원출마
2001: 민주국민당 사무부총장, 당무위원
2007.6.13 이 명박 예비후보 정책특별보좌역
2007.7 .22 이 명박 예비후보 경남선대위 자문
2007. 10. 선진국민연대 거제 상임대표

(기타)
서울 남산청년회의소, 특우회 회원
전국장애인 협회 거제시 지회 고문 역임
거제시 태권도협회 고문 역임

(수상)
1983-2000: 근정포장, 대통령, 행정자치부장관, 경찰청장, 대통령경호실장 표창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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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7
전체보기
  • 노창찬 2016-04-14 09:43:52

    유년의 청운꿈을 펼쳐 경찰출신 으로 봉사의 덕목이 더해지신다면 거제의 발전 큰 인물이라 생각ㅁ합니나~신고 | 삭제

    • 어느당? 2007-11-18 13:22:44

      지금 어느당적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하군요...
      지난번 총선때 열린우리당을 도왔다는 예기가 많은데...이번엔 이명박후보를 지지하나요?
      그럼...지금 한나라당 당적을 가지고 있나요?신고 | 삭제

      • 진실함 2007-11-17 13:06:46

        머지않아 좋아질거여.....fighting!신고 | 삭제

        • 호수 2007-11-17 09:20:46

          중년의 삶이지만 참으로 많은 경험과 영화와 역경과 고통과 숱한 인생을 걸어 오신 특별한분이신것 같군요. 개인적으로 참으로 존경하며 꼭 뜻하시고 지향하시는 삶이 이루어지시길기원드립니다. 잘 될거예요. ()()()신고 | 삭제

          • 정의사또 2007-11-16 17:00:34

            참으로 지난 "영욕"을 생각하시면 눈물의 역경세월을 보내시셨군요.
            하지만, 유년시절의 좋은추억을 되살리어 서민에게 다가서지 마시고, 붙으십시오.
            필히,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믿겠습니다. 겨울의 문턱 입니다.아무튼 건강하시고요.신고 | 삭제

            • 우주 2007-11-15 20:00:51

              철학이 좋고 경찰관 출신 이기 때문에 좋고 꿈이 이루어 지길 바랍니다신고 | 삭제

              • 주찬양 2007-11-15 16:42:03

                지금은 진실한지도자 고통을 나눌수있는 가슴이 큰 지도자가 일어나야할때 거제의 발전을 지고갈 김한표님의 글을 읽고 국회의원이되셔서 국민의 일꾼이되시길 기도합니다신고 | 삭제


                거제경찰서장으로 재임시 대우연수원 강당에서 거제중고교생들을 대상으로 학교폭력에 대한 순회강연

                경찰대학에서 교내 웅변대회 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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