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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재조명]거제시가 잊어선 안될 거제사람 '윤병도'기증한 터엔 기념비 세우고, 시민의 날엔 명복을 기원하자
박춘광  |  geojetime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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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0.09.25  09: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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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애로 뭉친 정신'무궁화로 승화시키다 무궁화동산서 교통사고로 결국 타계'
영원한 거제인, 영원한 한국인으로 살기 원해 무궁화 동산 조성하고 단군상 세워
고려사, 고려역 보존에 힘쓰고 무궁화 동산 만드다고 일 우익단체로 부터 압력 받기도
고구려 유민 영혼 비는 성천원도 자비로 건립
거제시에 공원용지 기증 및 거제.창원.의왕시 등엔 느티나무 기증도
자신과 관련한 KBS.MBC 취재요청도 거부, 거제언론 통해 소식 전하겠다 '고집'
장학재단 설립 및 관광시설 조성, 거제식당 무산 등 아쉬움도 많아
지난 2일 일본 도교도 사이타마현에서 작고한 재일동포 윤병도씨는 진정 거제사람이었고, 진정 한국인이

   
무궁화동산을 설명하는  윤병도씨
   
성천원의 유래와 의지를 말한 윤병도씨
었다. 비록 어려운 시절에 살기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인 부인과 결혼해 자식 낳고 일본국적을 가지고 살았지만 그의 정신 속에는 언제나 한국인이라는 진한 민족애가 똘똘뭉쳐있는 거제사람이었다. 

내가 그 분을 처음 알게된 것은 1995년경으로 기억난다. 당시 거제신문 사장을 지내고 있던 나는 재일본 경남도민회장으로 거제시 고현동 매립지를 비롯해 창원 도청 옆과 여타 의령, 창녕 등지에다 자비로 구입한 느티나무 수천주를 기증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어서 그의 가장 철친한 친구였던 전 국회전문위원인 신용주씨를 통해 알게됐지만 실제로 그 분을 만난 것은 2008년 7월 그분의 초청으로 세계항공여행사 이금숙 사장과 반용근 당시 거젝신문편집국장과 다른 여행사 관계자 2명이 그를 만나기 위해 동경으로 간 것이 첫 대면이었다.

그 분을 만날 당시에도 늘 불편하다며 지팡이에 의지하면서 지냈고, 역까지 마중 나온 그의 차램새도 운동복 차림의 아주 평범한 소시민 차림이었으며, 그의 승용차도 중고차 비슷할 정도로 낡은 차로 우리 일행을 안내햇다. 특히 기억 나는 것은 우리가 교통편만 자부담해서 일본으로 오면 일본에서의 숙식과 이동은 자기들이 해결해 주겠다고 햇는데 동경 1박은 3류 호텔 수준의 방이었고, 2박 째는 사이타마현 낡은 옛날식 여관방이었으며, 첫 음식은 국수로 대접했다. 과연 이분이 수천억대의 재산을 가진 사람이 맞는가 싶을 정도여서 신용주님께 여쭈었더니 그런 근면하고 검소한 생활이 몸에 벤 사람이라 전혀 자신을 거치레하지 않는다고 말해 놀라웠다.
 
그러면서도 성천원 나무기둥을 여러개 세웠는데 1개에 수 억엔을 들였다고 하니 그의 민족을 향한 정신적 자세를 읽을 수 있었다. 수십만평의 땅을 가진 거부이면서도 일본인 부인은 자신이 운영하는 청소년 야영장에서 땔감 나무장작을 팔거나 구멍가게로 라면 등을 팔면서 지내는 그런 생활 자세라 이번 권민호 시장의 조문 때도 무궁화 동산을 운영할 경비를 걱정하더라고 하니 참 기막힌 노릇이기도 하다.

무궁화 동산 일구다가 끝내 교통사고로 다쳐 운명
그 분이 조성한 무궁화 동산은 동남아를 비롯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무궁화 꽃나무가 제일 많은 곳이다 종류를 비롯해 그 숫자가 엄청나 일일이 숫자로 기억되지 않는 듯 햇다. 다만 사쿠라가 국화인 일본에서 한국의 국화인 무궁화를 심어 공원을 조성하려는 그,에게 일본 정부의 간섭과 감시가 심했다는 것을 은연 중에 토로하기도 해, 이국인의 서름을 읽을 수 있었다. 성천원의 단군상과 일제 36년을 상징하는 36층탑, 파고다 공원형의 팔각정 등 때문에 우익 일본인 단체들로 부터 생명의 위협까지 받아가며 지키려던 그의 조국애는 결국 '거제식당'을 지으려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결국 아들을 설득하는데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모든 경제권이 전부 아들에게로 넘어갔고 아들은 한국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고 전해들었다. 대형온천장의 종업원이 회장을 몰라볼 정도 였고, 그 지역의 관광열차가 자신의 땅을 통하지 않거나 래프팅장이 운영이 곤란할 정도의 땅부자와 거부이면서도 가장 자기를 나타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분은 무궁화 동산에 무궁화만 조성 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재 박물관, 전시관, 옛 선조들의 무덤과 고분  등을 조성해 명실 공히 한국인들의 정신적 터를 만들고 싶어 했지만, 결국 자신의 마지막 한계는 넘지 못했다. 그리고 거제시에 기부한 땅 문제로도 일본인 부인과 자식들 그리고 한국의 친척들로 부터 많은 원망을 들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그런 와중에서도 고향을 생각하고 민족을 찾으려는그분의 조국애를 새삼 존경스럽게 하고 있다.

고려신사, 고려역, 성천원 그라고 납골원 조성-전부 희사하고 자기 이름 석자만 남긴 돌비석
그 분이 일본에서 한국인을 위해 봉사한 일 중에는 역시 성천원을 건립한 것이 제일 큰 공적이랄 수 있다. 고구려 유민들이 살던 터에 고려사, 고려역을 보존케 하고, 유민들의 영혼을 달래는 성천원을 짖고도 모자라 민족 정기를 키우기 위해 단군상을 비롯한 시설을 조성했으면서 자신을 나타낸 것은 고작 작은 비석 하나 뿐이었음을 보면 짐작이 된다. 마치 한국의 차이나 타운 같은 느낌일 것이지만 전혀 그런 배경도 아니다. 그리고 개인 땅에서 무궁화 동산을 조성하자 일본 지방정부로 부터 혜택은 커녕 제재를 많이 받아 참 허술했다.

자신이 잚은 시절 억척스럽게 일본에서 버틸 수 있었던 원천이 근면.성실. 정직이었다고 하니 그가 한사람의 거제인으로서의 자긍심을 크게 높힌 셈이다. 2008년 11월 15일 거제시청을 방문해 상동마을에 있는 땅 6천8백45㎡, 시가 60억원 상당의 부지를 희사해 현재 상문동 주민자치센터 신축과 시민공원을 조성하고 있으며 거제도서관 지원을 비롯 선진농업벤치마킹 등 고향 발전의 산 주역임을 몸소 실천, 거제시는 그 해 10월 1일 윤씨에게 제12회 자랑스런 거제시민상을 수여했었다.

해에는  일본에 무궁화공원을 설립한 윤병도(80) 옹의 아내 이토 하쓰에씨에게 지난 8월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4회 무궁화의 날 기념식에서 무궁화사랑 특별상을 받았다.'국화인 무궁화를 잘 번영시켜달라'는 윤 옹의 뜻은 도쿄 인근 사이타마(埼玉)현 치치부(秩父)시에 자비로 무궁화공원을 만들고 30여 년 가꿔 일본에 무궁화를 알린 공을 인정받아 이날 독립기념관장이 주는 무궁화사랑 특별상을 받은 것이다.

또 "무궁화의 날이 아직 국가 기념일이 아니고 무궁화도 법률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을 아쉬워하고 있다"며 "하루라도 일찍 법률로 인정해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달했다. 이토 씨는 "(남편은) 애국심이 강한 분이라 항상 나라를 생각하고 돈을 벌면 쌓아놓지 않고 한국을 위해서 무엇을 할지 계속 생각한다"며 "남편이 일하고 돈을 쓰는 동안 나는 아이들을 키웠고, 그런 남편이 싫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이토 씨는 최근 무궁화공원이 지방정부의 외면으로 존폐 위기에 처했다는 언론보도에 대해 "그런 일 없다"고 부인했다.

그는 "가족들이 모두 남편의 의지를 받아 함께 해 온 일이다. 지금까지는 후원해 주겠다는 분들의 호의를 거절해왔지만, 이제부터는 조금 힘들어질지도 몰라 도움을 주면 감사하게 받을 예정이다"고 말했다.이토 씨는 "여름 3개월 동안 매일 꽃을 피우는 무궁화의 에너지를 남편이 좋아하고 나도 동감한다"고 말했다.또 "벚꽃은 피면 예쁘지만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짧다"며 "두 꽃의 성격이 다르니 둘 다 좋아한다"며 웃었다.

거제시, 이번 시민의 날엔 그를 위해 명복을 빌고, 기념비라도 세워주자
거제시에 꼭 큰 땅을 기부해서만이 아니라 그의 조국애와 향토애를 길이 알리고자하는 시민들이 많다. 그러한 윤 옹의 정신을 우리 거제시가 잊지않았으면 한다. 그가 기부한 터에는 작은 비석하나라도 세겨서 추념의 글이라도 남기고, 시민들이 함께 축하하는 시민의 날에 명복을 비는 순서를 올해 만이라도 가지면 좋겠다는 발상을 해본다.  

언제가는 자신이 돌아 갈 무궁화 동산에 안장되기를 원해 그 곳에 영원한 안식처를 마련했지만 과연 일본 내에서 무궁화 동산이 얼마만큼 자켜질지 매우 우려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그분의 진정한 거제사랑 정신만은 계승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려역 안내판
   
성천원 입구
   
성천원 현관서 주지와 마중









   
성천원 기둥
   
36층탑과 조각상
   
무궁화 동산









   
무궁화동산 조성(승용차)
   
무궁화 동산 구내
   
전부 무궁화 천국이다









   
사재박물관 건립 중
   
야영장및 래프팅장 안내
   
그의 땅 옆엔 래프팅장이









   
은하철도 999관광열차
   
항상 지팡이에 의지했다
   
운전창 입구









   
온천장내 특산품점
   
온천장 내부 연못
   
거제운동장보다 큰 주차장









   
시치부시의 관광열차가 윤옹의 땅을 거치지 않으면 운행이 불가하다. 꿈의 관광열차

 
<관련기사>
[기행문:박춘광] 일본속 한국혼 '고려촌을 아시나요?' 
국내도 없는 단군상, 고려인 위한 고려신사, 고려역
 
2008년 07월 02일 (수) 02:50:34 박춘광 geojetimes@hanmail.net
 

재일거제인 윤병도씨,사쿠라안방에 무궁화동산, 36층위령탑-'조국애.향수애 상징' 
일본 우익단체 위협에 '이제 더 이상 확대 않겠다' 약속해야 했던 어려움도
‘1,799명 고구려유민 이끌고 간 약광(若光)’의 신위 모신 성천원도 장관

일본 히다카시 등 역사탐방 여행상품 개발 절실 …'거제식당 개설 할 것'
거제사랑으로 똘똘뭉친 재일본 거제인 윤병도  
재일본 거제향인회장을 역임한 윤병도씨의 초청으로 거제신문의 반용근국장, 세계항공여행사 이금숙거제지사장과 부산의 여행사 전문인 2명 등 5명의 우리 일행은 김해공항을 떠난 두시간여 만에 도쿄 나리따 공항에서 우리 일행과 함께하기 위해 서울서 날아온 전 국회전문위원 신용주씨를 만났다.

신씨는 윤병도 회장과는 소꿉친구로 어릴적 부터 격의없이 지내온 평생의 벗이며 윤 회장의 한국문제 해결의 창구역활을 하는 분이다. 

   
'고려산'이란 편액이 붙어 있는 고려사 입구. 입구에 돌로 새긴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석상도 한국에서 돌을 구해 한국인 석공으로 부터 조각해 콘테이너로 운반 윤병도씨가 입구에 세웠다.
먼저 윤병도 회장에 대한 소개가 필요한 듯 하다. 그는 거제시 신현읍 용산마을에서 태어나 아린 시절 홀홀 단신으로 일본에 들어가 자수성가한 분이다. 지금도 일본인 부인이 7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일을하며 지내는 문자 그대로 억척같은 부부. 슬하에 1남 2여를 두었지만 항상 그에게는 어린 시절 뛰놀던 고향마을에 대한 향수만 가득했다는 것.

당시 일본인 교사들이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많은 학생들이 일본인 선생에게 매를 맞곤했지만 신용주씨 만은 착하고 똑똑해 매를 안맞았는데 하루는 신용주씨가 매를 맞고 코피를 흘리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전교생들이 몰려가 구경하는 진풍경도 있었다고 은근히 신씨를 윤회장이 칭찬하자 신씨는 "허허, 저사람 나이가 들면 거짖말도 잘한다더니 정말 그렇군'하고 억지로 말을 바꾼다. 이렇게 두 사람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성인된 이후까지 60년 이상을 함께 우정을 나눈 친구간이다. 그러면서 신씨는 " 건설업을 하다보니 밀어붙이는 추진력은 강하지만 계획성이 좀 부족한 것 같다. 고향에 무언가를 항상 남기고 싶어 했는데 여러가지 제약 때문에 끝내 제대로 성사 시키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저려있는 사람"이라고 윤회장을 평가했다. 그는 45세 나이에 성공을 해서 건설업을 아들에게 물려 주었지만 그는 오로지 성실함으로 부를 이룬 사람으로 지금 일본에서도 수십만평의 땅을 소유하고 있어 자신도 자기 재산을 다 헤아리지 못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36층 위령탑
   
옛 고구려 선조들을 위로하고 한국인들의 안식처로 만든 납골묘지
그의 거제사랑은 유별나다. 젊은 시절엔 고현만 일대에 느티나무심기나 경남도에 느티나무 심기 등을 펼쳤지만 제대로 살아 있지 않아 아쉽다 거제시에는 지난해 공원용 부지를 기부하고도 인근 친지들에게서 무지하게 핀찬만 들었다고 말한다. 친지들을 도와 줄 것이지... 특히 그는 일본이 결코 한국의 역사와 떼어 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며 일본 내의 한국혼을 기리기 위해 고려촌과 성천원 등을 사재를 털어서 조성했다. 이러한 사실과 무궁화 동산 조성 등으로 일본 우익단체로 부터 위협을 당했지만 그래도 그는 고려촌과 36층 위령탑(일제 36년간 압박의 기간을 상징하기 위한 탑), 한국에서도 이미 사라져 가는 단군상을 모시고 민족혼을 일깨우기 위해 애쓴다.
   
성천원 본당 입구
얼마전 모 교수가 찾아왔다가 민족정신이 희박하다며 투박을 주어 돌려 보냈다며 그는 자신이 일본내에서 펼치는 고려촌 등의 사업을 한국의 유수 언론 매체들이 취재요청을 했지만 거절했다며 반드시 거제로 부터 이 사실을 소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거제의 관계자가 소개하지 않는 한  KBS.MBC.SBS도 결코 인터뷰에 응하거나 소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한다.

고려인 혼이 깃든 '성천원'
일본 신주쿠 거리 인근에 있는 선사인프린스 호텔에서 1박을 한 우리 일행은 신용주씨의 안내에 따라 특급 전철을 타고 한 시간 남짓 거리를 달려, 사이타마현 지치부시(秩父市) 히다카시(日高) 역에 내렸다. 마침 역사까지 윤회장이 불편한 몸에 지팡이 까지 짚고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이타카시역앞 광장옆 건물에 배용준이 웃고 있는 겨울연가의 입간판. 한류열풍을 이곳에서도 진하게 느낄 수 있어 이 지역이 결코 한국인들과의 인연이 무관치 않은 것 같았다.

   
윤회장의 재산이나 공적표시는 이 표시석하나가 전부였다고 했다.

















승용차로 한 30분을 달리승용차로 한 30분 달려가니 길가에 고려역과 고려신사의 도로표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고려산' 이란 팻말이 붙은 성천원 입구에 들어서니 1300년 전 고구려의 선조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이 곳은 나당연합군에 의해 고구려가 망하자 고구려 유민 1,799명을 이끌고 이곳에 안착해 수장이 된 약광왕(若光王)의 넋을 기리는 성천원(聖天院)과 재일본 한국인의 뿌리가 잠들어 있는 곳이었다.
   
성천원 입구 조각상
약광왕이 1799명의 고구려 사람을 이끌고 이곳에 정착, 광야를 개척하고 산업부흥에 나선지 어언 1292년, 사람과 의사(意思), 집들, 그리고 생활습관 등 모든 것이 이미 오래전 일본화 됐지만 이곳에 뿌리내린 고려 혼(魂)은 아직도 변치 않고 그들만의 삶터를 지켜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재일교포 독지가 윤병도 회장이 80평생 피땀 흘려 모은 재산을 쏟아 부어가며 성천원 중건, 고려신사 재정비와 함께 고려촌, 고려역 등을 재조명하는 사업을 펼치는 등 역사의 바퀴를 되돌리고 있어 일본 속의 고구려 혼이 잠깨어 일어 설 날은 머지않아 보였다.

<아래는 동행했던 거제신문 반용근 편집국장의 글이다>
2박3일간(6.27~29) 옛 고구려 삶터를 현장 취재했다. 이번 취재를 주선한 전 국회전문위원 신용주 선배님, 세계항공여행 거제지사 이금숙 지사장께 감사드린다.

성천원과 고마진자(고려신사)의 유래
도쿄 이케부쿠로역(Ikebukuro)에서 1시간 남짓 거리, 사이타마현에는 고려향(작은 도시명)과 고려역, 그리고 고려사(高麗寺)로 불리는 성천원과 고마진자 등 옛 고구려 유적들이 즐비하다. 특히 성천원은 약광왕이 일본으로 건너오면서 가져 온 불상의 이름을 따 승천원이라 명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약광의 신위를 모시고 있다.

고마진자는 한반도인들이 제단을 세우고 조상신께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린 곳이다. 972년 완성된 일본 고대 율령집 ‘엔키시키’ 9-10권의 진묘초는 사이타마현 고마진자는 고구려 왕족인 약광왕을 모신 신사로 모든 관리는 그의 자손들이 맡아 왔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현재는 제59대 고마 쓰미오씨(72)가 모든 것을 맡고 있다.

정감 넘치는 ‘히다카시’
히다카시, 즉 일고시(日高市)는 서기 716년, 고구려의 왕족이었던 약광(若光)이 스루가(相模: 지금의 가나와), 가즈다(찌바), 시모후자(찌바이바라기), 히다찌(이바라기), 시모노스케(도찌키) 등 7개 지역에 살던 고구려인 1799명을 이끌고 이주해 망국의 한을 달래던 곳으로, 지명부터가 정감 넘치는, 일본 속의 고구려라는 뜻인 듯하다.

더구나 히다카시는 지난 1889년(명치 29년)까지는 고마군으로 불리었고 현재도 이곳에는 고려향(사이타마현의 작은 도시)과 고려역(高麗驛)이 여전히 존재하는 등 고구려의 숨결이 그대로 남아 있다. 또 인근에는 백제의 유민들이 살았다는 백제촌과 도공들이 살았다는 도자기 마을, 임진왜란 때 잡혀간 울산 사람들이 살았다는 울산 마을, 고구려 유민들이 살았다는 고려촌 등이 그대로 남아 있어 일본 속에서도 민족 숨결이 피부로 느껴지고 있다.

기지개 켜는 고구려 혼
속일본기는 성천원, 즉 승낙사(勝樂寺)는 약광왕의 사후 ‘지넨소 쇼오라쿠’가 약광의 성불을 기원하기 위해 751년에 건립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약광왕의 3남, 쇼오운(聖雲)과 손자 고오진(弘仁)이 쇼오라쿠의 유지를 이어 이를 보전해 왔으며 한때는 법상종, 진언종으로 명칭이 변경되기도 했다. 1580년(天正 8년)에는 본전을 부동명왕(不動明王)으로 하는 등 현재까지 1257년간을 계승해 왔다.
   
 
   
 
지난 2000년에는 거제출신 윤병도 회장의 재정적 뒷받침으로 산중턱에 새로운 본당을 건립하고 사찰 바로 옆에는 ‘무연고 재일동포 위령탑’도 세웠다. 또 본관 우측에는 단군상을 모신 가운데 단군상의 좌측으로는 고구려 19대 광개토대왕, 신라 29대 무열왕, 백제의 왕인 박사. 고려중신 정몽주, 조선의 신사임당 상도 세워 고구려는 물론 백제, 신라 ,조선 등 민족혼이 새록새록 피어나고 있다.

이곳 사찰 요꼬다(70) 주지승은 벌써부터 고구려인으로 살고 있다. 그는 분명 일본인이면서도 그 어떤 사람의 부름이나 수상(首相)에 버금가는 고위공직자의 면담 요청도 손만 내젖고 마는 이색적 인물로 정평 나 있다. 그러나 고구려인의 후손, 우리들의 요구에는 정겨운 대화는 물론, 선뜻 카메라의 포즈까지 취해주는 것은 아마도 민족의 동질성 때문이리라,

사쿠라 본고장에 ‘무궁화동산’ 까지
최근 일본 사이타마현 치치부시 ‘미나노마치’에는 또 하나의 새로운 볼꺼리가 탄생했다. 윤병도 회장은 자신의 소유 땅, 35만평에 지난 1996년, 10만5000본의 무궁화를 심었다. 붉은색, 푸른색, 분홍, 흰색, 보라 등 총 18종 무궁화는 일본 전역에서 수집, 이제 일본 땅에서 이곳 미나노마치를 제외하고는 무궁화를 보기 어렵게 됐다.
   
윤병도씨의 고향친구이며 60년 지기인 신용주 전 국회전문위원(중)과

뿌리와 씨를 통해 종족번식을 번식하는 무궁화는 이제 30만 본에 가까울 만큼 그 수가 늘었다. 8.15를 전후해 꽃이 피기 시작하는 무궁화는 사쿠라의 본고장에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한국민의 자긍심 고취는 물론 관광 상품으로도 각광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더구나 인근에는 신라고분이 덩그렇게 버티고 서 있는데다 고가품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을 비롯, 원시인들의 생활공간도 재현해 한국 관광객들의 구미를 당기는 관광지 급부상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거제식당 건립에 박차
‘미나노마치’ 중심지에 한국음식 전문점, 거제식당(가칭)이 웅지를 틀 전망이다. 윤병도 회장은 자신의 땅 450평에 중장비를 동원, 터를 고르는 등 이미 식당 건립에 착수했다. 이곳 식당에는 짭짤한 젓갈류를 비롯 바다 내음이 물씬 풍기는 각종 해산물과 싱싱한 농산물을 재료로 한국인이 즐겨 찾는 전통 한식을 만들어 낸다는 계획이다. 윤 회장은 거제식당의 성공 가능성을 99%로 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 거제식당 건립 예정지를 중심으로 10km이내 위치한 골프장만도 10군데에 이르는데다 이중 2곳은 이미 한국 사람이 인수, 한국 관광객 및 골퍼들의 투어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거제식당 건립공사
관광객 관심 끌기 충분
사이타마현은 최근 일본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고구려의 혼을 담고 있는 고려촌이나 약광의 신위를 모신 성천원과 고려신사가 그들의 관심을 끌기 때문이다. 또 이들 유적지 인근에는 윤 회장이 운영하는 1만2000평 규모의 ‘간나노’ 나트륨탄산 온천까지 있는데다 또 이곳에서 30분 거리, 굿마겐다까사끼에는 일본에서 가장 크고 높은 41m의 ‘백의관음불상’의 인자한 모습이 있고 특히 히다카시를 관통하는 급물살의 강은 레프팅에도 안성맞춤, 고려향 일대는 한국관광객의 구미에도 10문7이다.

또 사이타마현 구마가야에서 미쯔미네까지 72.7km는 금,토,일 주 3회 ‘은하철도 999’의 모델이었던 증기기관차가 운행, 또 하나의 이색적인 볼꺼리가 되고 있다. 때문에 이곳은 2박3일의 관광지일정으로는 수박 겉핥기식 관광도 무리다. 한 4일쯤 마음 푹 놓고 이곳을 탐방하다보면 옛 고구려의 숨소리도, 황야를 개척해 벼농사를 시작하는 고구려인의 실루엣도 확인이 가능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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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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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문동 주민 2010-09-27 10:59:05

    윤병도님이 기증한 공원부지에 무궁화동산을 조성하여 그 분의 뜻을 기리는것이 마땅하다고 봅니다. 현재 용산공원은 너무 밋밋하여 공원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잘 살려서 역사 재발견의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신고 | 삭제

    • 부자동네 2010-09-27 10:31:05

      거제식당의 완공으로 우리음식을 알리는데 많은 효과를 기대합니다
      국위선양에 많은 도움이 될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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