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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거제시, KBS'불멸의 이순신'에 '옥포첫승첩' 효과적으로 접목하라!'무인시대' 거제 패왕성 알릴기회 아쉽게 놓쳤다.
박춘광  |  geojetime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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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4.09.0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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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 KBS가 대하역사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제작을 마치고 드디어  4일 오후 10시 첫방송을 시작했다.

이 연속극은 1TV에서 매주 토, 일요일 밤 9시 45분에 방영한다. 

제작진에는  연출 이성주. 한준서, 극본 윤영수. 윤선주. 박영숙. 장기창 출연진에는  김명민, 최재성, 이재룡, 조민기 등이 출연하는 장기상영 대하드라마이다. 
 
드라마 이순신은 성웅이라는 이름 하에 오랫동안 광화문 네거리 동상과 현충사에 박제되었던
 영웅 이순신의 외피를 과감히 벗겨 그의 인간적인 면에 천착해 들어가는 것을 그 출발점으로
 잡는다.

따라서 우리나라 역사속의 성웅에서 넘어 세계해전사에서도 길이 빛나는 그의 업적과 인간미를 잘 각색해 우리민족을 구한 영웅으로서의 진면목을 보여 줄 것으로 믿어진다.

이미 충무공 이순신에 대한 역사적 평가나 그의 혁혁한 전공은 새삼 설명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우리 민족에게는 잘알려져 있지만  임진왜란의 첫대첩이 거제 옥포만의 옥포대첩인 것은 모르는 국민들이 많다.

이 연극속이 방영되자 뜻있는 거제시민들은 임진왜란의 첫 승첩지가 옥포만해전이었는데 이
사실을 잘 모르는 국민들이 많으므로 단순히 옥포대첩기념공원을 조성하고, 기념제전행사만 치루기 보다는 이런 기회에 방송 매체를 통해서 거제의 역사적 고장으로서의 위상을 높히고 거제시내 곳곳에 산재한 유물들을 알리는 기획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방송사와 연계해 거제옥포대첩의 줄거리를 보다 실질적으로 거제를 알리는 방향으로 자료를 제공해 주고 거제 옥포대첩과 각 포구의 해전사를 널리 알려 이를 관광자원화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앞전에 종영된 '무인시대'에도 고려시대 패왕과 거제 패왕성간의 스토리가 너무 짧고 타지에서 엉성하게 만들어진 셋트장 광경 몇 토막으로 끝나 거제와 접목하는 기회를 놓친바 있다는 지적에 따라 이번에는 확실하게 거제를 알려 이 기회를 거제관광 진흥의 한 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

시는 언제나 '관광거제'를 외치면서도 결정적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이를 놓쳐 아쉬움을 더하게 했으므로 이번에 만은 기회를 잘살리기를  바라는 시민들이 많다.   
 

 

                                                     (관련기사)
   [역사 인물의 흔적을 찾아서]

                                                              이순신 장군 
1592년 4월 13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을 받은 왜병이 부산진(부산)앞바다에 700여 척의 군선에 나눠 타고 나타났습니다. 왜군은 순식간에 부산진에 이르러 동래현을 점령하고는 한양을 향해 북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조선 조정은 4월 28일 신립 장군에게 군사 지휘권을 줘 맞서게 했으나 탄금대에서 크게 패했습니다. 그러자 1592년 4월 28일 선조는 임진강을건너 함경북도로 피난을 가야 했습니다. 선조 임금 일행이 평양에 머무를즈음 이순신 장군은 바다에서 왜적들을 잇달아 무찌르며 조선에 희망을 주었습니다.

▲ 한산대첩 후 일본에게서 바다의 지배권 빼앗아와 1592년 5월 4일, 이순신은 수군 연합 함대를 이끌고 첫 출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왜병 수군을 찾아다닌 지 3 일 만에 옥포에서 큰 승리를 거뒀습니다.

다음날은 한산도 해전에서, 9월 1일에는 부산포 해전에서도 이겼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우리 수군은 싸우기만 하면 승리한다는구먼. 육지에서도 의병들이 곳곳에서 일어나 왜군과 당당히 맞서 싸운다네.”

선조 임금은 장군의 활약상을 보고 받고, 그를 전라 좌수사 겸 경상도 수군 통제사로 임명하였습니다. 이 때가 1593년 8월의 일입니다.

이후 조선 수군은 한산대첩을 고비로 바다를 완전히 장악했고, 적은 서해로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당시 적들은 서해로 나아가 한양을 장악한 육군에게 보급품을 보내려 하였으나,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의 수군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결국 왜군들은 명나라에 강화 회담을 요청하면서 남쪽으로 철수를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남해 바닷가에 성을 쌓은 후 그 지역을 점령하고, 머물렀습니다.

이렇게 전쟁도 아니고 평화도 아닌 상태는 3 년 반이나 계속됐습니다.

▲ 어명 어긴 죄로 삼도 수군통제사 자리에서 쫓겨나

조선에 남은 왜군은 거제도를 사이에 두고 우리 수군과 맞서고 있었습니다. 오도가도 못할 상황에 놓인 왜군은 한 가지 꾀를 내었습니다.

고니시라는 왜장이 거짓 정보를 흘려 조선의 신하들을 속인 것입니다.

“왜장 가토가 조만간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조선으로 들어온다.”

이 말을 곧이 들은 조선 조정은 장군에게 즉시 출동해 왜구가 오는 바다로나아가 싸우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장군은 왜적의 말이 거짓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 하면 우리 수군이 한산도를 빠져 나가야만 왜병이 철수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순신은 조정의 말을 듣지 않고 그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결국 장군은 어명을 지키지 않았다는 죄로 한양으로 끌려가게 되었고, 삼도 수군통제사에 원균이 새로 임명되었습니다.

장군이 수레에 태워져 한양으로 향하는 길에는 많은 백성들이 나와 통곡하며 슬퍼했습니다. 이 때가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6 년째인 1597년이었습니다. 어명을 어긴 죄는 사형이었지만 선조는 차마 장군을 죽일 수는 없었습니다.

“대역 죄인 이순신은 백의종군하여 나라에 지은 죄를 갚도록 하라!”

이순신은 선조의 명을 받아 권율 장군 밑에서 아무런 관직 없이 전쟁터에나가 싸웠습니다. 그 즈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소강 상태에 접어든 조선침략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20만 대군을 급파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원균은 수군을 총출동 시켜 거제도 북쪽 앞바다 칠전량으로 나아가 전투를 벌였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조선 수군의 배는 가라앉았고, 병사들은 물에 빠져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 명랑해전 도중 적의 화살에 맞아 장렬히 전사해

“백의종군하는 이순신에게 다시 삼군 통제사로 임명하노라!”

장군은 흩어진 군사를 다시 모아 해남으로 진격했습니다. 사기가 오른 왜군은 9월 16일에는 133 척이나 되는 많은 군선을 이끌고 쳐들어왔습니다.

“아무리 이순신이라 할지라도 이번에는 꼼짝 없이 당할 것이다. 공격하라! 조선 수군의 군사는 120 명이고 군선은 겨우 12 척뿐이다.”

장군은 배 12 척으로는 수백 척의 적선을 찾아다니며 무찌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꾀를 내어 명랑해협으로 왜군들을 유인했습니다.

그 곳은 물살이 매우 빠르고 폭이 좁아 5 척 이상은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장군은 명랑에서의 빛나는 승리로 왜병의 수군을 거의 전멸시켰습니다.

이후 조선 수군이 나타나면 왜군들은 도망 다니거나 숨기에 바빴습니다.

이 즈음 조선 침략 전쟁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왜병은 500여척에 나눠 타고 몰래 일본으로 후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장군은 후퇴하는 왜군을 쫓아 노량 앞바다에서 크게 무찌를 생각으로 작전을 짰습니다. 이 때 명나라의 수군도 함께 싸우기로 계략을 짰습니다.

“내 아들, 내 가족을 죽인 왜놈들을 그대로 물러나게 할 성 싶었더냐! 진격하라.”

수백 포의 총통이 불을 뿜고 화살이 날아갔습니다.

왜군들은 장군 앞에만 서면 싸울 기세를 접고 모두들 달아나려고만 했습니다.

“이순신은 싸움의 신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왜군들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하지만 노량 앞바다에서의 전투는 치열했습니다. 양측 모두에게 포탄이 무수히 날아들고 화살은 비오듯 떨어졌습니다.

“피웅!”

“윽!”

어이없게도 왜군이 쏜 화살이 날아와 장군의 가슴에 꽂혔습니다.

장군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습니다.

“어서 나를 방패로 가려라. 내가 죽었다는 말을 절대로 하지 마라. 이제승리가 눈앞에 다가왔다.”

장군은 이 말을 남기고 그대로 눈을 감았습니다. 우리 수군은 크게 승리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까지도 몇 명을 제외하고는 장군이 숨진 것을 몰랐습니다.

이처럼 이순신 장군의 큰 희생으로 7 년 동안 많은 희생과 고통을 준 임진왜란은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장군은 오늘 날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명장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김남석(작가)

::::: 연보:::::

1545년 한양에서 태어남

1580년 전라 좌수영 발포의 수군 만호가 됨

1589년 정읍현감이 됨

1588년 여진족의 기습을 격파하여 큰 공을 세움

1591년 전라 좌수사가 됨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남

1592년 4월 30일 임금이 궁궐을 떠나 피난감

1592년 5월 4일 조선 수군을 이끌고 첫 출전해 공을 세움

1592년 5월 7일 옥포 해전에서 승리

1592년 7월 8일 한산도 해전에서 승리

1592년 부산포 해전에서 승리

1593년 8월 전라 좌수사 겸 삼도 수군 통제사 됨

1597년 2월 임금의 어명을 어긴 죄로 한양으로 끌려감

1597년 4월 백의종군하라는 어명을 받고 권율 도원수에게 감

1597년 7월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칠전량 해전에서 크게 패함

1597년 8월 다시 삼도 수군 통제사가 됨

1597년 9월 명량 해전에서 전함 12척으로 적선 133척을 격퇴

1598년 노량 해전에서 일본으로 후퇴하는 적선 500여 척을 공격하다 전사

< 소년한국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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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의 대하역사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이순신에 출연한 연기자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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