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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보국에 나선, 임응구-정종녀 등 친일화가들[특집] 경남.부산 친일예술인 연구 4 인물편-화가들
전갑생  |  jkh2000k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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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4.11.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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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응구(林應九, 1907∼1994, 伊藤應九)

   
▲ 단광회 회원들.

1907년 9월 13일 아버지 임춘화(林春和)와 어머니 김복덕(金卜德)의 4남2녀 가운데 3남으로 부산부 대신동 576의 2에서 태어나 일본화가 오카다의 가르침을 받았다. 일본과 부산을 왕래하다 1936년 일본여성과 결혼하여 그 처가에 입적하여 이토우 오우규우(伊藤應九)란 이름으로 귀화하였다. 임씨는 조선미술전람회 제13회 첫 입선하면서 총 6회 입선과 조선총독부상을 받기도 하였다.
산전신일(山田新一)를 중심으로 조직된 한국화가와 일본화가가 함께한 친일미술모임인 단광회(丹光會·1943년 2월 결성)에도 들어가 일본에 귀화한 사람답게 미술활동을 하였다. 이에 앞서 1934년에 임응구는 일본어판 부산일보사 전시장에서 첫 서양화 개인전을 열었다. 1941년 11월 제11회 부산미술전람회에 특별 출품작으로 [해변소경(海邊小景)]을 제출했다.

또한 임씨는 1943년 단광회의 [조선징병제실시] 합작품을 4월 전람회에 공개하고, 1943년 6월 14일 일본군사령부 조선애국부에 기증하였다.
1977년 살롱 도톰(가을의 전람회) 회원이며 일전회우(日展會友·일본미술전람회·관전)에 들어있었다. {일전(일본제국미술전)}에 9차례 내어 특선 1번을 했고, 백수상(白壽賞)을 받았다. 문제전(文帝展)에서 입선 12번을 했으며 살롱상도 받았다.

정종녀(鄭鍾汝 1914∼1984)

   
▲ 단광회 회원들.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다. 1928년 거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공장에서 일하며 동경 입정(立正)중학 및 대판미술학교를 고학으로 다녔다. 1936년 제15회 조선미술전람회 첫 입선한 이후 서울 통의동 3번지에서 하숙하면서 총9회 입선과 특선을 차지했다. 특히 조선미전 최고의 상인 창덕궁상을 받기도 했으며, 1944년 제24회 조선미전에는 황군을 수송하는 수송선을 그리는 등 친일화가로 나선다.

[삼월의 눈]을 응모해 첫 특선에 오른 정종녀는 작품창작의도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판 하숙에 있을 때 역경에서 우는 아는 여학생 한 사람이 있었으므로 그를 용기있게 하여 주기 위하여 삼월의 동백꽃이 무거운 눈을 머리에 이고도 꼿꼿이 하고 또 그 아래에는 원앙을 그리어 그 여자의 존재를 의미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1942년 3월 18일부터 23일까지 화신화랑에서 제2회 청진화숙전람회가 열렸다. 정종녀, 정용희, 이현옥, 허림, 이건영, 한오영 등이 출품했다.
1944년 전쟁선동 미술전인 결전미술전람회에 [상재전장(常在戰場)]을 응모하여 특선, 1945년 강화군수의 도움으로 강화군병에서 그린 [수호 관음불상] 1천매를 대동아전쟁 출정자와 입영자에게 증정하기 위하여 1월 25일에 이 작품을 강화 전등사로 가져가 입불식(入佛式)을 마친 다음, 2월 3일에는 강화군 토야마(富山)군수를 방문하여 헌납하였다.
해방이후 1948년 조선미술동맹이 와해되자 전향을 표방하고 서울에서 개인전을 여는 등 작품활동에 전념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조선미술가동맹에 참여하고 9·28 수복 무렵 월북했다. 평양미술대학 조선화 강좌장과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지냈으며,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허 민(許 珉, 1911∼1967)

1911년 경남 합천군 가회면에서 태어났다. 아호는 운전(芸田)이며, 이당 김은호(金殷鎬)의 제자로 그의 문하에서 사사를 받았다. 주로 진주에서 작품활동을 했다. 허민은 김은호를 중심으로 결성된 동양화가 단체인 후소회(後素會)의 회원이었다.
후소회는 김은호의 일본식 채색화풍을 전수한 모임으로 동양화 후진양성 통로였다. 1941년 11월 4일부터 9일까지 경성 화신화랑에서 열린 제4회 후소회전에서 허민은 작품 '적광(寂光)'과 '나팔꽃'을 출품했는데, '적광'은 김은호의 '추정(秋情)'과 함께 "금년의 수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무엇보다 그는 조선총독부의 '선전'에 최다 입선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1944년 23회 선전에서도 입선해 모두 7차례나 동양화부에 입선하는 등 드문 기록을 세웠다. 특히 1944년 마지막 선전에서는 총독부가 주창한 '회화보국(繪畵報國)'과 '결전'에 걸맞은 주제로 출품한 작품 '투혼(鬪魂)'이 입선했다. 물론 그의 생애에 있어 한 점도 특선을 하지 못했지만 이러한 다작의 입선에는 그의 스승 김은호의 영향이 컸다.
해방 후 허민은 1946년 1월 6일 진주 의곡사 대흥루에서 진주3·1동지회가 결성되었을 때 결성식 모습을 제작해 3·1동지회장 강상호에게 증정하기도 했다. 이후 허민은 진주화단에서 미술활동을 하는 한편 한문에도 조예가 상당해 허준의 '동의보감'을 번역하기도 했다. 그가 번역한 한문고전으로는 '동의보감'과 '열하일기' 등이 있다.

기타 화가들

부산지역의 미술가 모임인 춘광회 회원인  우신출(禹新出, 「秋の謝]), 이정모(李正模, [金村君]), 한학석(韓學錫, [夕映](부산단가회 회원)), 김수찬(金木守贊, [お分]), 김남배(金子南培, [子供]) 등이 부산미술전에 입선하기도 하였다. 또한 춘광회 회원인 우신출,  이일동(李一東), 김남배 등은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기도 했다. 특히 우신출은 민간친일단체로 알려진 1941년 조선임전보국단 경남도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부산미술전에 입선한 이들은 김호일(金子浩一), 우신출(禹新出), 이흥상(李興相), 이동일(李一東), 박정수(朴貞守) 등이며, 정내식(丁內軾, 거창)은 1942년 제21회 조선미전에 [春日]로 입선하다. 
또한 1941년 10월 25일 부산미술연구회 제1회 공모전람회에서 박두영(新井斗永)이 [秋]로 당선되었으며, 1941년 8월 제10회 동방서도전에서 전낙수(田洛水, 경남 농정과 근무중)가 [集字聖敎序臨]을 출품해 입선하였고, 이비헌(李 憲)도 함께 입선하였다. 조영제(趙榮濟)는  진주출신의 유채화가로 조선미전 입선과 1940년 3월 15일부터 나흘 동안 진주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하였다. 
사진분야에서는,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 주최 '연맹강령실천 요목'으로 사진현상공모전에서 신봉술(申鳳述, 밀양군 군북면 제대리)씨가 1등에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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