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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구17]역동성,도덕성 갖춘 젊은 인재 '설대우 중앙대교수'거제시민 소득 수준에 맞는 생활 보장할 강력한 정치 포부
박춘광  |  geojetime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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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09.11  06:2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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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동적 거제 건설 위한 도덕성 갖춘 젊은 인재 ‘설대우 교수’
                             
어릴적 꿈 실현 위해 한나라당 총선 후보로 출마 준비 중
                         거제시민 소득 수준에 맞는 생활 보장할 강력한 정치 포부

내년 4월 11일에 치러질 제19대 국회의원선거(이하 총선)를 7개월여 앞두고 거제의 정치권이 급속히 요동치고 있다. 총선 때만 되면 인구에 회자되던 인물들은 물론이고 거제 정치권 언저리에 머물러 왔던 인물들이 갑자기 총선출마를 공식화한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은 거제의 정가에서 어느 정도는 알려진 인물들이다. 이들 중에는 호평 받는 인사가 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다.

이 중 유난히 눈에 띄는 인물이 있다. 일각에서는 새로운 인물이라 ‘신선하다’는 평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 편에서는 ‘도대체 누구냐?’는 물음표를 단다. 다름 아닌 '설대우' 중앙대학교 교수다. 그는 내년 19대 총선을 겨냥, 한나라당 국회의원 후보 경선 참여를 공식화하며, 열심히 거제시민들 곁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 중이다.

소득수준에 맞는 삶의 질 향상이 가장 중요한 과제...
“생각해 보십시오. 거제시민들의 소득수준은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높은데 그에 따르는 거제시의 기반은 열악하기 짝이 없습니다. 교통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국도 14호선 대체우회도로가 언제 완공될지 알 수 없는 지경입니다. 시민들이 내는 세금을 기준으로 따졌을 때 벌써 완공이 됐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이는 거제시의 정치력 문제가 아니라 중앙 관계부처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정치인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임자가 있어야 합니다.”

   
▲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함께
설대우 교수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거제시민이 소득수준에 맞는 삶의 질을 찾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욕구를 실현해 줄 수 있는 강력한 정치인이 등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 기반시설의 확충, 여가를 즐기기 위한 다양한 문화시설 완비, 이를 지속시키기 위한 다양한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 등을 위해서는 중앙 정관계에 다양한 인맥을 형성한 인물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한 적임자가 바로 설대우 교수 자신이라는 것이다.

최근 몇몇 지역언론에 소개된 바와 같이 설대우 교수는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지원했다. 서울시장 재직시절에 알게 된 인연으로 인해 당시 이 시장으로부터 귀국을 권유받았고, 국내로 귀국하기 전부터 정책조언을 해왔다. 2007년 2월 말에 귀국한 후에는 ‘한나라당 중앙선대위 양성평등본부 부본부장’ 직책을 맡아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여성정책 수립에 깊이 관여했다. 시장재임시절부터 측근의 핵심 인사들과 교류하며 아직도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명박 대통령 당선 후에는 ▲청와대 대통령실 정책자문위원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운영위원 ▲지경부 기술위원 ▲농촌진흥청 미래전략자문위원 ▲교과부 신성장동력 창출을 위한 글로벌신약 개발전략 TF 위원 ▲미래기획위원회 글로벌신약 개발전략 TF 위원 ▲교과부 신기술융합 바이오제약사업 운영위원 ▲교과부 융합기술 개발사업 추진위원 등 청와대와 다양한 정부부처의 자문역을 맡았다.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정계인사 및 정부의 수많은 관계 요로 실무자 등과 인연을 맺고 있다는 게 설대우 교수의 최대 장점 중 하나이다. 이러한 인맥은 거제시와 시민들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학자의 정치참여를 경계하는 시선들이 많은데 이 부분에 대한 견해는...
“얼마 전 한 지역언론사를 방문했을 때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폴리페서(Polifessor·정치 지향 교수)란 지적을 받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이었는데 오히려 저는 ‘더 많은 폴리페서가 나와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강단에서의 후학 양성도 중요하지만 개인적인 지향점에 따른 행보가 폴리페서라는 이름으로 색칠되는 건 다소 문제가 있습니다.

학자들의 현실정치 참여가 더 큰 공적발전을 위한 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제 소신입니다. 이는 비단 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학계의 많은 분들이 공감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과학이 더 크게 발전하지 못하는 것은 연구자 지원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아직 미비한 탓도 있습니다. 이런 것을 누가 바꾸겠습니까. 이런 현실을 가장 잘 아는 그 분야의 학자들이 정계로 진출해야 충분한 개선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전문가들의 출현을 경계하는 정치인들이 만든 용어가 폴리페서가 아닐까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 전국여성대회에 참석한 대통령후보와 양성평등본부 요인들과 함께
국회의원 출마를 결심한 배경은...
설대우 교수는 거제에서 내년 총선 후보로 출마하고자 결심하게 된 배경을 세 가지 정도로 압축해 설명했다. 그는 우선 최근의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거제시민들이 ‘도덕성’을 갖춘 인물을 원하고 있다는 점을 가장 먼저 지적했다. ‘도덕성’은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제일 중요한 덕목이고, 도덕성에 흠결이 있을 경우는 직책에 걸맞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어 설대우 교수는 거제시민들이 기존의 정치인들이 아닌 새롭고 참신한 인물이 등장해 거제정치를 바꿔주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내다봤다. 이는 설대우 교수가 기존에 알려진 정치인이 아니라는 점에서 충분히 설명 가능한 부분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거제시민들이 거제발전을 이끌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갖춘 인물을 원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는 귀국 후 현 정권의 유력 인사들과 교류하면서 상당한 정치적 역량을 쌓았다. 또한 국정자문 등을 통해 형성한 정부의 주요 책임자 및 실무자들과의 친분은 향후 거제정치의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설 교수는 본인이 거제시민들의 이러한 세 가지 요구에 충분히 부합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것이 예선 및 본선에서의 경쟁력이라고 판단하여 출마를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 고려대학교 졸업 때 가족과 함께
미국 피츠버그대학교 의대 교수로 재직하다 귀국했는데 귀국결심이 쉽지 않았을 것인데...
설대우 교수는 30여년 전 중학교 국어시간에 발표한 꿈을 말했다. “대학은 서울로 갈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으로 유학을 갈 겁니다. 공부를 마친 후 미국에서 교수가 될 것이고, 그런 다음 고국으로 귀국하여 교수를 하다가 정치에 입문하여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설대우 교수는 현재까지 이루지 못하고 남은 것이 정치에 입문하는 것과 대통령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되겠는가 하고 스스로 반문하지만, 적어도 정치에 입문은 해야 하는 것이 어린시절의 꿈에 다가가는 것이라 했다.

“꿈을 30년 넘게 가슴 한쪽에 담아 두고 살다보니, 꿈을 향해 조형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05년 말 황우석 교수 줄기세포 사건이 터졌을 때 피츠버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서 언론과 우연히 가진 인터뷰가 엄청난 조명을 받았습니다. 이 일로 인해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과 인연이 만들어 졌고, 잠시 귀국했을 때 이명박 시장을 만나게 되면서 대통령을 포함하여 대통령의 주요 참모들과 교분을 쌓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 후로도 귀국할 때 마다 대통령 후보를 만났고 정책적 조언을 했습니다. 이후 대통령후보로부터 귀국을 권유받았고, 한국의 한 대학으로부터 학과장직을 전격 제의 받으면서 2007년 2월말에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설대우 교수는, 꿈이 있었고 언젠가는 꿈이 이뤄질 것이라는 소망이 있었던 터라, 이런 일련의 일이 꿈을 향해 가는 것이라 판단하여 아무런 주저 없이 귀국을 결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자라온 환경은...
“우리세대가 대부분 그렇듯 저 또한 어린 시절 무척이나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돌아가신 제 어머니께서 마지막 눈을 감으시는 그 순간에도 가슴에 맺힌 게 있다며 말씀하신 게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라고 생각되는데 점심 먹으러 집에 왔는데 누나와 동생들이 다 먹어버려서 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돗물로 배를 채우고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그걸 어머니께서 보셨는데 눈을 감으시는 순간까지도 그렇게 한이 되어 가슴에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 미 백악관에서 가족과 함께
가난했던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어머니는 매일 땔나무를 해서 머리에 이고 산에서 내려 오셨습니다. 굴양식이 요즘보다 그 때는 더 활발했는데, 항상 남의 집 굴양식장에 가셔서 일을 하셨는데, 바닷물이 어는 겨울에도 가슴깊이의 물에 몸을 담그시고 품삯일을 하셨습니다. 참이라고 주는 빵을 가져 오셔서 하나 뿐인 아들놈이라는 제게만 넌지시 주시곤 하셨던 어머니십니다.”

“니가 하도 빼빼 말라서 누구한테 물어 보니 개구리에 파, 대추, 마늘 넣고 삶아 미기면 좋다더라. 개구리를 잡을라꼬 논바닥에 나갔는데, 그 놈 개구리가 어디 나한테 잡히나. 신을 던져보이 잡히나 돌을 던져보이 잡히나. 지나가는 사람이 잡아 주더라.” “이 개구리탕을 먹어 본 적이 있는데, 어머니는 그렇게 개구리탕을 준비해 주셨던 겁니다.”

유학생활은...
“대학을 졸업할 무렵, 어머니는 취직을 권하셨습니다. 형편이 어려우니 공부를 계속하기 보다는 취직을 해서 가계에 경제적인 도움을 주었으면 하셨던 겁니다. 저는 유학길을 택했습니다. 가난을 극복하는 길은 공부를 하는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 200만원만 해달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200만원을 빌려 제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 200만원으로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제가 유학을 떠나던 1992년도 무렵의 미국경제는 매우 어려웠습니다. 졸업 때까지 자비를 모두 대거나, 적어도 1년 정도는 스스로 비용을 충당할 수 있어야 유학이 가능했습니다. 대학 4학년 시절, 미국으로 유학을 가겠다는 일념으로 공부에 매진하면서 생물학 분야에 권위있는 텍사스대학의 한 교수님께 편지를 보냈습니다. 다짜고짜 교수님 학생으로 입학하여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고 한 것입니다. 여름방학이 되어 대학 선배가 도서관으로 절 찾아 왔는데, 텍사스 대학의 그 교수님 얘길 전하면서, 그 교수님이 널 좋아해서 학생으로 받으려 했는데,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었다는 사연을 제게 전하러 왔다는 겁니다.”

   
▲ 가배 집 앞마당에서
   
▲ 어머니와 함께 거제초등학교 교정서






 

 

 

 

 

 


이후 설대우 교수는 1년 동안 유학 재수를 하게 된다. 우선, 신변정리를 위해 혼자서 1달에 걸쳐 전국일주를 떠나게 되고, 이 여정을 마치자 바로 부산으로 내려가 도서관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참 희한하지요. 도서관 나가던 첫 날 아내를 만나게 된 겁니다. 제 이야기엔 무슨 잘 짜여진 소설같은 대목이 많은데 아내를 이렇게 만나게 될 줄 어디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유학이 1년 정도 늦어진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유학준비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난 다음에도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건 하늘의 뜻이라 여기고 후회는 없도록 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아내도 만나고 유학준비도 잘 진행되어, 설대우 교수는 이듬해 10여개 대학에서 입학허가서를 받게 된다. 그런데 한 대학만 빼고 모든 대학에서 자비유학이라야만 입학이 가능한 조건이었다. 유일하게 한 대학만이 입학 때부터 장학금을 주겠다고 했는데 바로 그 대학이 피츠버그대학교 의과대학이었다. 지금은 미국에서 10번 째 안에 드는 명문 의과대학이다.

   
▲ 군대시절
   
▲ 하버드대 교정에서












 


 


   
▲ 중학시절 수학여행 때 경주에서
   
▲ 청와대서 이재오 특임장관과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200만원을 들고 바로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처가는 홀장모님만 계셨고 큰 딸인 아내가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던 터라 손을 벌릴 처지도 아니었지만, 유학을 떠나던 당시는 혼인식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아내와 약속하기를, 6개월 후에 돌아 와서 결혼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에 가니 한국에서 참 잘 배웠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고려대학교에 유전공학과가 생기면서 입학한 첫 회 학생들이다 보니 학생들이 매우 우수했고 학교측도 열의가 있어 강의의 질이 상당히 높았습니다. 영어학원을 한번도 다녀 본 적이 없었지만, 원서를 읽는 과정이 영어공부라는 생각으로 공부를 했기 때문에 비교적 영어도 잘 했던 편이라 유학생활에 적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한 학기가 끝나던 겨울, 일주일간 귀국하여 아내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아내는 신혼의 달콤함을 상상했는지 모르겠지만, 집에 들어오자 아내를 맞이한 건 모두 어디서 얻어 온 살림살이였습니다. 결혼생활도 단조롭기 짝이 없었습니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으니 차라고 구입한 것이 앞 눈 한 쪽이 찌그러진 웨건, 어디 좀 멀리라도 갈 것 같으면 서버릴 그런 차에다가 외식을 할 만한 여유도 없었습니다.

남편이라는 사람은 학교가는 게 일인 사람이니 신혼인데도 우울증에 걸릴 정도였습니다. 죽는다는 각오로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연구를 할 때면 밤을 세는 일도 많았고 일주일 거의 대부분 아침 8시부터 밤 12시까지 연구실에 매달려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학위과정 중 두 번 가족여행을 떠났었는데, 한번은 다른 지인의 가족들과 함께 뉴욕을 다녀 온 것이고, 다른 한번은 우리 가족만으로 나이아가라폭포를 다녀온 것입니다. 뉴욕을 갈 때는 지인의 차를 얻어 타고 갔었고, 나이아가라폭포에 갈 때는 소위 우리 똥차로 갔었는데, 100년만에 폭염이 미국을 덮쳤을 때 떠났던 터라 에어컨이 없었던 우리 차로는 참 어려운 여정이었습니다. 유학시절은 그렇게 치열했습니다. 학위과정 중에는 정말 공부 밖에 몰랐던 것 같습니다.”

유학을 가기 전 대학생활도 고난스러웠을 것 같은데...
“밀양고등학교를 졸업하였는데, 처음엔 잘 모르고 진학했지만 가서 보니 명문 고등학교로 부상중인 학교였습니다. 능력별 수업을 실시하고 밤늦게까지 공부를 시키는 등 학생들을 심하게 몰아부쳤습니다. 처음엔 적응이 쉽지 않았지만 열심히 공부한 탓에 고3이 되자 상위권 학생이 되었습니다.

대학진학은, 집안 형편으로 인해 서울로 가는 것 외에는 수가 없었습니다. 둘째 누님이 결혼을 해서 1년 전에 서울에 정착한 때문입니다. 그 해 처음으로 학과가 생겨 전국적으로 인기가 높던 고려대학교 유전공학과에 눈치작전 없이 바로 지원했습니다. 앞 지원자 두 명이 떨어져서 세 번째 지원자였던 제가 1회 1번이 된 이유입니다.”

설대우 교수는 대학 첫 2년을 누님 집에서 기숙하며 보내고, 그런 다음 육군으로 군에 입대하여 병장으로 만기 제대한다. 제대 후 다시 복학하여 나머지 2년은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가며 대학을 졸업했다고 한다.

“대학 생활은 공부하면서 보냈습니다. 84학번이니 80년 봄을 거치면서 대학도 많이 시끄러웠습니다. 데모도 열심히 했지만, 정말 죽을 만큼이나 열심히 공부한 때입니다. 전공서적이 120여권 정도, 그리고 대학 3학년 때부터 Nature, Science, Cell 등 전공분야 최고의 논문들을 읽어 낼 수 있는 정도의 지식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논문을 읽고 영어로 토론하는 써클도 만들어 주도하곤 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자, 이쯤에서 독자들이 궁금해 할 소소한 부분에 대해 알아보자.
출생과 유년시절에 대해...
“호적에는 출생이 1966년으로 되어 있으나, 사실은 1965년(뱀띠) 동부 가배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고향은 일운면 망치지만 어머니 고향은 거제면이신데 가배에서 생후 1년이 채 못 되어 어머니 고향인 거제면으로 이사를 와서 호적을 하게 되어 거제면이 출생지로 되어 있는 셈입니다. 이후 거제면에서 자랐고 거제초등학교와 거제제일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가족관계는...
“아내와 두 딸이 있습니다. 제가 귀국하던 때 큰 딸이 중학생이었는데, 제가 워낙 갑자기 귀국하게 되어 중학생인 큰 딸을 데리고 가족이 함께 귀국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두 딸 모두 유학 중에 얻었습니다. 큰 딸을 대학에 진학시킨 후에 가족이 귀국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아내와 두 딸은 지금 모두 미국에 있습니다. 큰 딸이 현재 고3(12학년)인데 대학입학 지원서 제출이 끝나는 올 연말이면 아내는 귀국할 예정입니다.”

   
▲ 피츠버그대학교 박사학위수여식장에서 부인과 함께
부인에 대해 궁금하고, 러브스토리도 있을 것 같은데...
“아내는 눈에 띄게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제게 보물 같은 사람이지요. 아내를 만난 곳은 부산대학교 도서관입니다. 전국일주를 마치고 유학준비를 위해 부산대학교 도서관에 나가던 첫 날, 계단을 엇갈려 지나던 찰나에 아내가 첫 눈에 제게 반한 겁니다. 여름철에 전국일주 하느라 새까맣게 탄 얼굴에 기본적으로 볼품없던 제게 아내가 번개에 맞은 것처럼 감전된 겁니다. 광안리 백사장을 여러 번 오가면서 결국 백사장에 글로 썼습니다. 결혼해 줄 수 있겠는가고 말입니다.”

“아내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남편이 누구인지 궁금해 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 아내가 그랬습니다. 20년 가까이 결혼해 살면서도 첫 눈에 반하던 그때의 감동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아니 자기의 사랑은 그 때보다 지금 더 깊어 졌다고 말입니다.”

본인 연구 분야에 대해...
“제가 연구하는 분야는 종양생물학, 쉽게는 암생물학이라는 분야입니다. 국내에서 유전공학을 공부하고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이 학문은 의학과 연관이 깊은 연구로 쉽게 말하면 암이 생기는 원인과 항암제의 효과를 높이는 방법, 좋은 항암제의 개발 등에 관한 연구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연구했던 것 중에서 대표적인 것을 꼽자면 기존의 항암제와 다른 항암 신약 개발을 들 수 있습니다. 개발된 신약 항암제는 현재 국내 유수의 제약회사에서 사람 뇌암 환자를 상대로 임상시험 중에 있습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뇌암에 대해 좋은 치료약이 없는 상태인데 임상시험이 완료되고 본격적으로 시판된다면 뇌암환자들에게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부인과 함께
   
▲ 부인
   
▲ 한, 양성평등본부 회의




 

 

   
▲ 한나라당 양성평등본부 부본장 임명식장에서
   
▲ 대학시절 동기, 후배들과 함께
   
▲ 유학시절 한국인 유학생 가족들과 함께









   
▲ 용산역 유세에 참석한 대통령후보 부인
   
▲ 예일대학에서
이외에도 신종플루를 포함한 모든 독감을 예방할 수 있는 범용백신 개발, 췌장암치료제 개발 등 여러 분야에서 좋은 연구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이처럼 연구들이 좋은 결과로 나타나면 개인적으로도 좋지만 공익적인 면에서 그 사명을 조금이나마 감당했다는 점에서 큰 위안을 얻습니다. 그것은 과학자로서, 또 후학을 가르치는 학자로서의 역할이자 책무, 또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제 자신의 철학이기도 합니다.”

황우석 교수 사태 때 언론으로부터 엄청난 조명을 받았었는데...
“그 사건은 정말로 우연히 언론에 제 의견이 밝혀지면서 벌어진 일인데, 질타도 받고 응원도 많이 받았습니다. 저는 줄기세포를 연구한 학자는 아니었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우리나라가 국치를 느낄만한 일은 아니며 오히려 우리 스스로 자정작용을 잘 갖추고 있으니 그렇게 자학할 필요는 없다는 취지의 발언이었습니다. 또한 생명공학을 연구하는 유사분야의 학자로서 윤리관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설대우 교수는 황우석 교수 사태 당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이왕재 교수가 한 '오늘은 한국 과학계의 국치일'이라는 발언에 대해, '오늘은 한국 과학계의 잔칫날'이라고 맞선 장본인이다. “연구결과는 좋게 나올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 너무 연연하다 보면 본질이 흐려지기 마련입니다. 제가 우려했던 부분은 논문의 저자를 표기할 때 기본적인 연구관행을 지키지 않는 태도였습니다. 논문에 있어 저자는 무척 중요한 부분인데 그러한 질서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은 연구 결과를 떠나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더 나아가, 저는 연구에 있어 조작은 해서도 안되고 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결과가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으면 안 나왔다고 하면 되는 것이지 조작해서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만들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과학을 하는 사람, 학자라는 사람은 성과나 업적보다 윤리관이 확고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항상 말합니다. 보이는 성과도 중요하지만 인간적인 매력, 품위, 품격이 더욱 큰 경쟁력이라고 말입니다. 과학자로서 윤리와 도덕을 지키는 것이 사회적인 성공보다 훨씬 경쟁력이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제 정치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정치로의 입문을 준비 중인데 정치에 대한 꿈은...
“이 부분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제가 항상 이야기하는 일화가 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국어시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국어선생님께서 ‘내가 OO라면’이라는 내용으로 발표를 시킨 적이 있습니다. 저는 앞서 언급한 대로, 그때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 대선캠프에 합류해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이어 청와대와 정부의 주요 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인맥 등 외연을 확장하는 단계도 밟았습니다.

이제 이러한 역량을 바탕으로 거제시민들께 사랑받는 정치인이 되고자 합니다. 열심히 하다보면 마지막 꿈도 이뤄지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고향 거제로 내려왔습니다. 국민들에게 사랑받기에 앞서 거제시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정치인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내 뿌리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기 위한 것이며 더 큰 정치를 하기 위한 제 힘의 원천이 거제에 있다고 확신한 때문입니다.”

선거 때 고향 찾아 온 철새라는 비아냥도 있을텐데...
“거제시민들로부터 거제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바라기는 그 비판의 날을 앞으로 거제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느냐 하는 방향으로 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으로 거제를 위해 많은 일을 하기 위해 미국에서, 또 서울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정치적 힘을 길러 온 것으로 이해해 주십시오. 거제시민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을 힘 있고 깨끗한 정치인이 되겠습니다. 그러한 정치인이 될 수 있는 원천은 바로 거제시민 여러분의 지지입니다.”

거제시가 직면한 문제라고 한다면...
설대우 교수는 개선해야할 문제는 많다고 진단했다. 다만, 큰 틀에서 현재는 세 가지 정도만 언급한다고 했다. “먼저 삶의 질과 관련한 분야에서의 문제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거제시는 양대 조선소 덕분에 소득수준 3만불을 넘는, 소득수준만 놓고 보면 세계 7대 도시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고민이 깊습니다. 바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대한 것인데, 소득 차가 너무 심합니다. 동반성장은 복지의 새로운 한 프레임입니다. 이 문제 해결 없이 사회갈등이 온전히 치유될 수는 없다고 확신합니다. 이 문제는 법적 장치를 마련해 해결해야 하고 당연히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이 해야 할 몫입니다.”

“또한 거제시는 소득수준에 걸맞는 사회적 기반이 필요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거가대교 개통을 바라보는 시각이 기대보다 우려가 많았던 것은 교육, 문화, 여가, 의료 등에서 충분한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고 판단한 거제시민들이 거제를 이탈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은 국회의원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치, 행정, 시민 등 삼자가 서로 노력하며 개선해 나가야 할 부분일 것입니다. 이러한 분위기 조성에 앞장 서야 할 사람이 국회의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산업과 함께 거제의 발전을 견인할 새로운 산업을 발굴해야 합니다. 현재 가장 크게 주목받고 있는 부분이 천혜의 자연을 활용한 관광산업의 활성화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개발의 방향과 자연과의 공존 등 다양한 문제에 직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슬기롭게 해결해 가는 것 또한 국회의원이 가지는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일 것입니다.”

정치적 비전과 철학은...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는 세계 그 누구도 이루어 내지 못한 경제부국과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했습니다. 하지만 압축성장을 한 탓에 그 부작용이 심각하고 다양한 갈등(지역간, 세대간, 계층간)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갈등의 관리나 치유없이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하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민주화를 이루어내긴 했지만, 민주화가 더 고도화된 형태, 즉 법치의 확고부동한 확립 그래서 공평하고도 정의롭고 또 투명한 사회는 아직도 요원한 상태입니다. 기본적으로 이를 위해 헌신하고자 합니다.”

이제 설대우라는 개인에 대해 알아보자.
평소 존경하는 인물, 또 그 인물을 존경하는 이유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를 존경합니다. 목숨도, 일신의 안위도 돌보지 않고 자식을 위해 헌신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을 하건 그런 마음으로 해 낼 수만 있다면 세상에서 못 이룰 일이 없을 것입니다. 제 어머니도 그런 삶을 사시고 가셨습니다. 그런 어머니들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존경합니다.”

좌우명은...
“입지재아 성사재인(立志在我 成事在人). 뜻을 세우는 것은 나지만 일을 이루는 것은 사람, 즉 주위 사람의 도움이 있어야만 이루어 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늘 가슴 깊이 새기고 있는 말입니다.”

좋아하는 노래, 가수, 연예인은...
“기본적으로 노래를 잘하는 가수를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가수는 정말 많은데 몇 사람만 꼽자면 패티김, 강산에, 이승철, 박정현 등입니다. 좋아하는 노래는 패티김의 '사랑은 생명의 꽃', 강산에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이승철의 '그 사람',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박정현이 나는가수다에서 부른 '나 가거든' 등입니다.”

좋아하는 음식, 색깔, 취미는...
“음식은 소위 혐오식품을 제외하고는 가리는 게 없습니다. 그 중 특히 한국적인 음식, 된장찌개, 김치찌개, 수슨무슨 탕 등과 같은 것을 고집스럽게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색깔은 진홍빛을 좋아합니다. 열정적이기 때문입니다.” “취미는 영화감상입니다. 광적으로 좋아합니다. 바쁘지 않을 땐 매주 반드시 한편의 영화는 꼭 보는 편입니다.”

술, 담배는...
“술은 기본적으로 약체입니다. 이제는 많이 늘었는데도 '좋은데이' 소주로 반 병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담배는 피우지 않습니다.”

<프로필>

성 명: 설대우
   
 

생년월일: 1966. 05. 23
본 적: 경남 거제시 거제면
현 주 소: 경남 거제시 일운면
병 력: 필(육군 병장 만기제대)
직 업: 교수(현재, 중앙대학교 약학대학 교수)
블 로 그: http://mylovegeoje.blog.me

[학력]
1998-99 박사후연구원(Post-Doc), 미국 피츠버그대학교 의과대학 외과
1998 박사, 미국 피츠버그대학교 의과대학 세포분자병리학과
1990 학사, 고려대학교 유전공학과(학과 제1회 입학생, 입학: 1984)
1984 밀양고등학교 졸업
1981 거제제일중학교 졸업
1978 거제초등학교 졸업

[주요경력]
2010- 중앙대학교 약학대학 약학부 교수
2007-09 미국 피츠버그대학교 의과대학 외과 겸임교수
2007-10 경원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생명과학과 교수
2007-08 경원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생명과학과 학과장
2007-08 경원대학교 가천바이오나노연구원 연구실장 겸 운영위원
2000-07 미국 피츠버그대학교 의과대학 외과 교수

[사회활동 I (정당, 정부기관 및 유관단체)]
2011- 교과부 융합기술 개발사업 추진위원
2009- 농촌진흥청 미래전략자문위원(1기 및 2기)
2010-11 교과부 신기술융합 바이오제약사업 운영위원
2009 미래기획위원회 글로벌신약 개발전략 TF 위원
2009 교과부 신성장동력 창출을 위한 글로벌신약 개발전략 TF 위원
2009-11 지경부 기술위원
2008-10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운영위원
2009-10 청와대 대통령실 정책자문위원
2007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중앙선대위 양성평등본부 부본부장 겸
권익증진분과위원회 위원장

[사회활동 II]
2009- (재)코리아미래재단 이사 겸 남북과학기술협력위원회 위원장
2009- (사)한국문화예술체육회 자문위원회 부위원장
2008- 피츠버그대학교 Korean Heritage Classroom 추진위원회 한국본부장
2008-09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훈포장 공적심사위원
2007 경제중심과학기술정책포럼 총무재무간사
2007 미래과학기술전략포럼 창립발기인 및 초대 사무총장
2006 은하도시포럼 창립발기인

[학계활동 I (회원)]
2008- 한국 생화학분자생물학회 회원
2008- 한국 유전자치료학회 회원
2000 피츠버그지역 한인생명과학자 회장

[학계활동 II (평가 및 심사위원)]
2010 질환중심 글로벌신약후보물질 발굴 연구사업 평가위원
2010 농촌진흥청 우장춘 프로젝트 추진위원
2010 글로벌프론티어사업 분과위원
2009 지역거점연구사업단 평가위원
2008 체코 과학재단(NSF) 연구과제 국외전문심사위원
2005-06 영국 국립암연구소 연구과제 국외전문심사위원
2007-08 미래융합파이오니아 사업 컨설팅 및 평가위원

[기업자문활동]
2009- KBCC(생물산업기술실용화센터) 운영위원
2009- 건국대학교의료원 경영자문위원
2008- (주)제넨메드 기술고문
2007- 동아제약(주) 기술고문

[세계인명록 등재 및 수상]
2007- 세계인명사전 Marquis Who’s Who America
1992 미국 피츠버그대학교 의과대학 학장장학금
1989 고려대학교 최고학생(Gold Meda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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