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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수필;심인자]'머위'수필가/수필과 비평 신인상 수상/ 수필집 '야누스의 얼굴'
서정자  |  jjtime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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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09.20  15: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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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 위
                                                                        심 인 자

   
 
설레고 흥분된다. 얼마만큼 자랐을까. 단비를 맞았으니 제법 모양새를 갖추었겠지. 기대와 달리 번번이 헛걸음이다. 간난 아이 손바닥만한 게 도무지 클 기미가 안 보인다. 쑥쑥 자라는 게 눈에 보인다면 재미가 더 할 텐데. 꽃나무에 가려 햇빛을 덜 받아서인지 더디기만 해 애가 탄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눈치 보는 내가 우습다. 앞전에 소쿠리를 들고 나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온 게 멋쩍어서다. 비 오는 며칠 사이 못 봤더니 어른 손바닥만큼 커져 있다. 비에 씻겨 잎이 깨끗하다. 문득 십층 할머니가 떠오른다. 유일하게 맛을 아는 분이다. 잠시 고민에 빠진다. 오늘은 혼자만 먹고 다음에 따다 드릴까. 망설임도 순간 나의 손길은 익숙하게 잎을 뚝뚝 따낸다. 두 집 식구 식탁에 오를 만큼 채워졌음에 미소가 번진다.

사 년 전, 뜬금없이 머위 한 포기가 영산홍 화단에 숨어들었다. 어떻게 하여 이곳에 뿌릴 내렸는지 모를 일이다. 화단정리를 하다가 머위를 모르는 이웃이 잡초라 생각했는지 가차 없이 손을 댔다. 황급히 제지하지 않았다면 무참히 내팽개쳐질 뻔했다. 그 이후로 머위는 화단의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며 지금껏 잘 자라고 있다.

쪄낸 머위를 식탁에 올린다. 쌉쌀한 향이 코끝을 스친다. 벌써부터 군침이 돈다. 볼이 미어져라 한 입 싸 먹는 모습이 신기한지 아들 녀석이 멀뚱하니 쳐다본다. 입맛을 돋우는 보약이라며 한 쌈 싸서 입으로 넣어준다. 몇 번 씹던 아이 얼굴이 우거지상이다. 물을 마셔도 쓴맛이 사라지지 않는다며 툴툴거린다. 그 모양이 우스워 재차 권하니 손사래를 치며 멀찍하니 물러선다. 입맛을 돋우기에 이것보다 더한 것이 없는데 말이다. 하기야 벌써 머위 맛을 안다는 게 무리긴 하다.

모처럼 머슴밥 한 그릇을 쓱싹 비워냈다. 아직도 쌉싸래한 맛이 입안을 맴돈다. 혀를 자극하는 쓴맛이지만 싫지가 않다. 그 맛을 은근히 즐긴다. 쓴맛 뒤에 고이는 침 속에 단맛이 묻어나는 걸 안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쓴맛이 물러가면 와 닿는 또 다른 맛, 단맛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즐겨 드셨나보다. 오늘 같은 날은 친정어머니가 그립다. 어쩌면 어머니를 그리려 일부러 머위 쌈을 즐기는지 모를 일이다.

어렸을 적, 어머닌 집 뒤 산 밑에 댓 평 남짓한 돌밭을 일구었다. 워낙 돌이 많고 척박한 터라 잘 자라는 돌나물과 원추리, 머위가 거의 자릴 차지했다. 여린 원추리 잎을 뜯고 머위도 손으로 뚝뚝 따서 소쿠리를 들고 서 있는 나에게 안겨 주었다. 산 밑에 제법 큰 가시나무가 있었는데, 지금 즐겨먹는 엄나무였다. 가시에 긁혀 생채기가 나는데도 대수롭지 않은 듯 까치발을 디디거나 편편한 돌을 갖다 놓고 올라섰다. 그렇게 해서라도 여린 잎을 뜯어오는 어머니가 이해되지 않았다. 장독대 옆 작은 밭에 쌈 거리가 많은데 굳이 말이다.

어머닌 유독 쌈을 즐기셨다. 엄나무와 머위 잎을 쪄내고, 코를 막고 싶을 만큼 향이 진한 강된장을 끓였다. 상추쌈이 고작인 나는 어머니의 손바닥에 가득한 쌈이 입안으로 다 들어갈지 의문이었다. 머위와 원추리, 엄나무 잎을 겹겹이 올려놓고 밥 한 숟가락에 강된장을 끼얹어 맛나게도 드셨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맛있어 보이는지 한 입 얻어먹은 것이 하필 머위였다. 소태만큼이나 썼다. 약만 쓴 줄 알았지 음식에 쓴맛이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한 어린 나이였다.

어느 사이 어머니처럼 나도 머위를 즐기게 되었다. 쌉싸래한 맛이 자꾸 입맛을 당긴다. 입안에 설설 녹는 먹을거리들이 널렸는데도 그 맛보다 쌉싸래한 것을 찾고 있으니 삶이 녹녹치 않은 것인지, 삶의 쓴맛을 알아가는 중인지.

이제 생각하니 어머니의 삶은 참 고달팠다. 온갖 시련에 가슴 저리며 보낸 인고의 나날이었다. 첫아이를 가슴에 묻은 아픔도 지울 수 없는 상흔이었고, 삶의 기로에서 겨우 붙잡은 가녀린 줄이 얼마나 질길지 노심초사하며 보낸 아픔의 시간들이었다. 어찌 달기만 했을까. 그럼에도 당신 입으로 고통을 내비친 적 없고, 잃어버린 자식에 대한 언급은 더더욱 없었다. 속으로 곰삭히며 인고의 세월을 감내하지 않았다면, 쓴 것을 뱉어버렸다면 어머닌 진정한 쓴맛을 몰랐을 것이다. 삶의 쓴맛을 알았기에, 그런 시련을 감내했기에 머위의 쓴맛을 잘 소화해낸 끝에 느끼는 깊은 단맛을 음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에 비하면 난 별 굴곡 없이 지내왔다. 그러니 달콤하고 고소한 맛만 알았지 쓴맛을 몰랐다. 쓴 것을 먹는 순간 뱉어 버리고 입 안을 달래줄 단 것만 찾았다. 인내하는 법도 모르거니와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에 연연해하며 입안을 다스릴 여유를 찾지 못했다. 이젠 어머니의 숱한 세월이 달기만 해서 살아온 것이 아님을 자각하는 시점에 온 것 같다. 제법 쓴맛을 다스릴 줄 아니 말이다.

지인으로부터 머위 몇 포기를 얻었다. 돌멩이가 하도 많아 제쳐둔 화단을 다시 손질해야겠다. 무성한 풀도 뽑아내야겠다. 듬성듬성 구덩이를 파서 머위를 심을 요량이다. 내년 봄이면 제법 많은 머위가 화단 여기저기에 머릴 내밀겠지.

화단에 가득한 머위를 떠올리니 벌써부터 단맛이 입안에 맴돈다.

  ■ 약력 ■

*수필가,

*수필과 비평 신인상 수상

*거제대학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수료

*계룡수필문학회 회원

*수필집 《야누스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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