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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수필:곽호자]'나잇살'
서정자  |  jjtime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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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12.21  0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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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잇살 
                                                                        곽 호 자
   
 
겨울 바닷가로 가자고 그녀가 말한다. 뜬금없이 여름이 물러간 자리를 왜 찾느냐고 했으나 막무가내다. 바람막이가 된 제방 밑에 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그녀의 얼굴이 물빛을 닮아가고 있다. 뭔가 심상찮은 기미다. 거대한 파도가 멀리 있는 섬 하나를 가리고 달려온다. 그녀가 운을 뗀다. 아흔을 넘긴 시어머님과의 불화로 부부싸움을 했다는 것이다. 코맹맹이 소리를 하는 걸 봐서 눈물깨나 쏟은 모양이다. 일흔의 나이에도 시모님과 갈등을 겪으면서 사는구나 싶다. 웬만한 건 지우고 살아 갈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근래에 와선, 노모의 건강이 나빠진 눈치다. 치매증세도 보이고 거동도 예전 같지가 않다는 것이다. 자신들도 늙은 처지에 노모를 돌보는 일이 수월하지는 않았으리라. 이런저런 일로 스트레스가 쌓여 남편 앞에 푸념삼아 몇 마디 한 것이 화근이 되었을 것이 뻔하다. 내 생각은 적중했다.

“이 꼴 저 꼴 안 보고 내가 갈 길은 딱 한군데인기라.”
수십 년을 모셔 왔지만 노모의 말은 어깃장으로 들렸다. 서운하고 미운 감정이 가시처럼 돋았다. 노모의 푸념은 멍이 되어 고부간의 좋았던 시절을 시퍼렇게 물들일 것 같았다. 야속한 기억들만 줄줄이 꿰면서 자신을 노려보지나 않을까. 염장 지르는 남편보다 더 미운 노모. 그러나 지금 바닷가에 와서야 정신이 번쩍 든다는 것이다. 그녀는 일어서면서 말한다. 삶의 중심인 노모를 밀어내고 있는 자신이 어처구니없다고 한다. 겨울 바닷가를 가자고 조른 이유를 알 것 같다. 파도의 몸부림을 보면서, 파도의 울음을 들으면서 그녀는 미움을 버리기로 하는가 보다.

요즘 뜨는 화두는 ‘백세시대’다. 어제도 그제도 신문이며 텔레비전에서 이 주제를 다룬다. 나이가 나이니만큼 솔깃하다. 열에 아홉은 건강 이야기다. 노년에 가까워지면 거의가 먹는 약이 서너 가지씩이다. 기침만 해도 헐레벌떡 병원을 찾는다. 암은 불치의 병이 아닌 시대로 접어들었다. 의술, 의학의 발달로 수명이 길어진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그 삶이 어찌 영광이고 축복이겠는가.

미국 아이다호 대학 스티븐 오스태드 교수는 백 오십까지 살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에 일리노이대 스튜어트 올샨스키 교수는 백 삼십을 못 넘길 것이라 예언한다. 누구의 예언이 맞을지는 모른다. 두 교수의 인간 수명을 주장하는 것을 보더라도 백세시대는 이미 현실이다. 두 교수의 예측이 소설의 한 대목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오래 산다는 것은 영광이 아니고, 고역일 것 같은 생각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아서다.

두 달에 한번 병원엘 간다. 대기실을 메운 환자들은 거의가 노인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사람들은 아픈 몸을 치료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다. 이름을 부를 때까지 지루한 시간을 용케 견디고 있다. 굽은 허리, 초췌한 얼굴, 푸른 정맥에 꽂힌 링거에 희망을 거는 모습이 구차하다.

내 인생의 옷은 점점 얇아지고 있다. 한때는 풍성하고 화려하며 윤이 났다. 원본에다 차근차근 박음질한 멋진 옷이었다. 잘라내고 이음새 없는 온전한 한 벌의 옷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세월의 강한 빛으로부터 퇴색되고 있다. 한 겹 두 겹 덧댈 수밖에 없는 헌옷으로 변한다. 누더기가 되기 전에 벗어내고 싶다. 무겁다. 인생의 덩치에 걸친 무거운 옷이 가벼워지기를 바란다면 욕심이리라. 이래저래 두꺼워진 옷. 그것은 바로 ‘나잇살’이다. 나잇살은 삶의 흔적이다. 오랜 세월동안 기쁘고 슬픈 것이 겹겹이 쌓여진 퇴적층이다.

파도가 거세다. 해변을 덮치는 물살에 자갈이 또르르 구른다. 수심에 말려 들어가지 못한 자갈을 파도가 제자리로 밀어 올린다. 수억만 년의 공존은 아름다움을 잉태한다. 저 성난 파도를 자갈이 도와주고 자갈의 아픔을 파도가 어루만진다. 바다는 그녀를 위로한다. 서로 달래며 사는 것이라고.

백세시대가 도래함을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그냥 살고 볼 일이다. 그러나 나는 저 파도가 무섭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예후가 두렵다. 해일이 밀려와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 덮치지나 않을까. 정말 두렵다.

▒ 약력 ▒
*수필가
*거제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수료
*“수필과 비평” 신인상 수상
*계룡수필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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