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짜장면 사 드릴게요  
                                                         
                                                                                                      이 양 주

아무리 생각해도 괘씸하다. 인간 만들겠다고 녀석들의 머리와 가슴 속을 얼마나 힘들게 헤매고 다니는데, 장난삼아 해 본 소린데, 비정한 모습들을 보니 이거 아니다 싶어 이대로 물러설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하나하나 다시 접근했다. 녀석들은 묘하게 빠져나간다. 시간이 흐를수록 좌절과 오기가 동시에 일어났다. 얼마 남지 않은 아이들. 드디어 한 놈이 걸려들었다. 바짝 마른 몸매로 작은 얼굴엔 잠자리 눈동자 같은 큰 안경을 낀 초등학교 일학년 종훈이. 협박과 호소가 동시에 담긴 선생님의 강력한 눈빛을 뿌리칠 수가 없었는지 약간은 들어가는 목소리로,
 “짜장면 사 드릴게요.”네가 우리 체면을 살려 주는구나. 다음 날 짜장면 파티를 하기로 우리는 굳게 약속하였다.

녀석이 현관문을 활짝 열고 흥분한 목소리로 선생님을 외치며 들어오는데 양 볼이 상기되어 빨갛다. 뛰어 왔는지 손에 꼭 쥐어진 꼬깃꼬깃 보관해 두었던 낡고 때 묻은 천 원짜리 지폐들이 땀에 절어 있었다. 이왕 먹는 김에 탕수육도 시키자고 했다. 돈 없다고 펄쩍 뛴다.
 “빌려줄게.”

난감한 표정이다. 하지만 이미 전세는 우리에게 기울어져 있었다. 맛있었다. 녀석도 짜장면 먹을 준비를 단단히 해서 배를 비워 두었는지 무척 맛있게 먹었다. 다 먹고 난 뒤에 세배를 하라고 했다. 얌전히 일어나 귀엽게 절한다. 이제 우리가 나설 차례다. 짜장면 값으로 낸 돈에 세뱃돈이라며 웃돈을 얹어 손에 쥐어 주었더니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입이 쫘악 벌어졌다. 

선생님은 기술도 좋다며 종훈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탄복하셨단다. 녀석의 호주머니엔 돈이 한번 들어갔다 하면 좀체 나오지를 않아 집안에서 지독한 구두쇠로 소문나 있단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너무나 맛있는 짜장면을 먹었다. 행복했다. 

아이들에게 음악 공부는 왜 하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대답은 엄마가 시켜서, 피아노를 잘 치고 싶어서, 노래를 잘 부르고 싶어서, 점수 잘 받으려고 하며 대답한다. 그때마다 음악 공부는, 아니 모든 공부는 참된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고 뜻을 알든 모르든 가슴에 베이도록 심어준다. 기능만 키우고 점수만 높이며 감사할 줄도 배려할 줄도 모르는 사람으로 키운다면 위험한 교육이 아닐까. 물질 앞에서 흔들리는 아이들을 보며 그 마음을 시험해 보고 싶었는데, 그나마 종훈이가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몇 해 전 문화회관에서 연주를 한 적이 있었는데, 공연이 끝나고 무대 뒤로 종훈이 엄마 아빠가 찾아왔다. 거리에 붙은 포스터에 선생님 얼굴이 보여 너무나 반가웠다고. 종훈이는 군 복무 중에 있는데, 너무 궁금해 하며 꼭 찾아가 인사드리라고 했다며 꽃다발을 들고 와 축하해 주셨다. 종훈이의 귀여운 잠자리 눈알 안경이 눈앞에 선하게 떠올랐다.

가끔씩 오래 전 아이들이 찾아온다. 군에서 휴가 받았다고 거수경례와 함께 ‘충성’을 외치며 나타나기도 하고, 공부 열심히 해서 장학금 받았다고 손에 음료수를 들고 오기도 한다. 진로 이야기. 첫사랑, 첫 키스 이야기, 결혼 청첩장을 들고 오기도 한다.
  예전엔 우리가 많은 얘기를 들려주었었는데 지금은 녀석들이 세상 돌아가는 얘기며 재미난 얘기로 우리를 위문한다. 때론 성공해서, 보고 싶어서, 참을 수 없어서, 그냥 왔다며 불쑥 나타나기도 한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너희들의 성공은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신의 삶을 사는 거란다. 이렇게 찾아와 네 얼굴만 보여줘도 우린 행복하단다. 고맙다.” 

☐ 약력 ☐
*경남 밀양 출생
*거제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수료
*계룡수필문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