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 승
배복희
거리엔 벚꽃의 향연이 한창이다. 벚꽃이 활짝 피었나 했더니 어느새 지고 있다. 꽃잎은 바람이 스칠 때마다 붉은 보도블록 위에 내려앉는다. 벚나무가 깔아준 연분홍 빛 융단이 장관이다. 환승을 위해 방금 버스에서 내려 꽃잎이 내려앉은 길 위에 서서 있다. 흩날리는 꽃잎을 따라 내 시선이 허공 속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동안 버스가 앞에 멈추어 선다.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리고 나는 버스에 오른다. ‘환승입니다’ 녹음된 여자의 목소리가 경쾌하다. 교통카드로 요금을 한번만 내면 한 시간 안에는 시내 어느 곳이나 타고 내릴 수 있는 편리한 버스 환승제도. 간이 정류장 전광판에는 지정된 버스의 목적지와 순환경로를 친절하게 알려주는 자막이 뜬다. 그럼에도 낯선 곳에서 이따금 헤매게 될 때가 있다.
오늘도 사색 속에 빠져 환승을 반복했다. 환승버스에 앉아 화사하게 피어 있는 벚꽃을 바라보다가 얼마 전 요양원에서 만났던 그녀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녀는 구부러진 허리로 뒤뚱거리며 걸었다. 그 모습이 금방 뭍으로 올라온 오리 같았다. 그녀의 작은 두 눈과 납작한 코, 도톰한 입술은 무언가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가슴에 담아둔 못다 한 말이 많은 것일까. 그녀에게 자주 눈길이 갔다. 그녀를 가만히 본다. 들릴 듯 말 듯 어눌한 말투. 하늘을 향해 치솟은 듯 올 굵은 머리카락은 반항기 많은 소녀 같았다. 도톰한 입술에서 어눌하게 말할 때 서너 살 먹은 아이마냥 천진함이 묻어나 예뻐 보였다.
그녀는 대화에 끼어들고 싶었던지 뒤뚱거리며 우리들 곁으로 다가왔다. “나도 젊어서 남항동에서 잘 나갔었어.” 그녀가 더듬거리며 말한다. “그래요.” 그 말에 반색을 해 보이자 그녀는 자신의 말에 반응해 주는 것이 좋은가 보다. 엉거주춤 서서 도톰한 입술로 어눌하게 ‘목포의 눈물’을 불렀다. 우리는 그녀의 노래에 따라 손뼉을 치며 박자를 맞추었다. 듣고 있으려니 끊어졌다 이어지는 그녀의 노래가 애달프게 들렸다.
이따금 피상적으로 바라보이던 것이 피부로 느껴져 올 때가 있다. 지금 하차지점을 놓쳐버리고 낯선 곳에서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내 모습이 그녀 모습과 겹쳐진다. 나 자신이 완벽하고자 하지만 정작 얼마나 어설픈지를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일까. 순환경로에서 목적지를 잊어버리고 있는 그녀와 목적지를 가기 위해 순환경로에서 배회하는 나와 무엇이 다를까 싶다. 그때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던 것도 어쩌면 그런 맥락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녀가 풀쑥 힘없이 주저앉아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금방 뭍으로 올라온 오리 같던 그녀. 병원에 옮겨져 의식이 없어 코에 산소 호흡기를 낀 채 깊은 숨을 몰아쉬고 있다고 했다. 어쩌면, 그녀는 지금 행복했던 어느 한때의 환승버스를 타고 있지 않을까 싶다. 버스가 정류장에 선다. ‘하차입니다.’ 내려야 할 곳을 한참이나 지나쳐 있었다. 나는 갑자기 낯선 지점에 내리자 방향감각이 없었다. 길 위에 서서 왔던 곳과 가야할 곳을 찾느라 두리번거렸다. 횡단보도를 걷는다. 다시 환승을 하기 위해 간이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길 위에 서서 잠시 낯선 얼굴들을 본다. 제각각의 표정 속에 다들 무엇을 위해 어디로 바삐 가고 있는 것일까.
전광판에서는 시시각각 버스의 목적지와 순환경로를 알려준다. 강변도로를 따라 조금 둘러서 순환하는 버스와 시내를 순환해 가는 버스가 있다. 버스 번호 앞에서 어떻게 할까 잠시 망설인다. 그러다가 강변을 따라 순환해 보기로 했다. 벚꽃이 다 지기 전에 강변을 따라 즐길 수 있다면 조금 더 늦어져도 좋으리라. 하늘을 보니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다. 봄비에 벚꽃이 젖어 떨어져 내리지나 않을까 내심 불안하다. 차가운 추위가 가져다 준 선물이라면 자연이 주는 꽃의 향연이 아니던가. 지난겨울의 추위가 환기되어서일까. 길가의 벚꽃이 오래 피어 아름다움에 좀 더 취해 있고 싶다. 비 내리기 전에.
☐ 약력 ☐
*수필가
*거제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수료
*수필과 비평 신인상 수상
*계룡수필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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