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 음 마

                                                                                                      임     경     희

딸아이는 십이 개월에 첫걸음마를 떼기 시작했다. 그리 늦은 편은 아니었는데 돌이 가까워 오니 조바심이 났다. 육아 책을 보면서 다른 집 아기들과 비교하기도 하고, 제대로 성장하고 있는 것인지 걱정만 일었다. 돌을 앞두고 겨우 두 발로 서더니 한 발짝씩 떼는 것이었다. 

걸음마를 시작한 딸아이가 너무 신기해 신발을 신겨 마당으로 나갔다. 무릎 보호대를 해주지 않은 것은 밖에서도 집 안에서처럼 잘 걸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내려놓으니 주저앉고 일어서지를 않았다. 환경이 바뀌니 겁이 났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나는 얼른 아이가 걷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세워두곤 멀찍이 물러났다. 딸아이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다가 급하게 발을 떼었다. 하지만 몇 걸음 못 가서 앞으로 넘어졌다. 얼굴에 상처가 나고 무릎도 다쳤다. 딸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달려가 안으며 ‘괜찮아’라고 안심시켰지만 한동안 걸음마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딸아이는 겁이 많았다. 피아노 경연대회, 미술대회에 나가기 위해 연습을 열심히 했는데도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고 미리 걱정하며 대회에 나가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꾸지람을 듣고서야 다시 연습을 하곤 해서 많이 속상했다. 정작, 대회에서 다른 아이보다 좋은 결과를 얻었는데도 미리 걱정을 하는 소심한 아이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거였다. 힘들어 할 때마다 용기를 주고, 희망을 심어 주었다. 때론 설득하고 때론 꾸지람도 아끼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니 아이는 나의 마음을 알아 가는지 자신감도 생기고 스스로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앞에 서 있지 않아도 잘 걸었다. 비로소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지금 딸아이는 또 다른 걸음마를 시작하고 있다. 원해서 하고 있는 일이지만 안쓰러운 마음뿐이다. 조바심도 일지만 표현하지 않고 속으로 꾹 누른다. 대학을 삼년 만에 조기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했다. 수학을 전공하면서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끝까지 해내어서 꼭 수학자가 될 것이라 한다. 여기까지 오면서 참 힘들었다. 조기졸업이란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오직 공부에만 전념해온 결과가 아닌지, 놀자는 유혹도 있었을 것이고, 편한 잠도 자고 싶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졸업을 했다. 

그런 딸아이가 대견하기만 하다. 멈추지 않고 도전하고 또 도전하는 아이를 보며 나 역시 홈패션을 시작했다. 예전부터 배우고 싶었다. 그간 도통 시간이 나지 않아 미루고 있었다. 잠시 일을 놓고 있는 지금이 기회다 싶어 재봉을 시작했다. 손으로 바느질하는 것은 많이 해 보아 자신이 있었다. 비슷한 일이겠거니 했는데 쉽지 않다. 재봉일이 나에겐 첫걸음인 셈이다. 시작부터 재봉틀 바늘이 원하는 대로 가지 않고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연습을 해도 자꾸 틀어지고 지그재그니 은근히 짜증이 나고 조바심이 일었다. 그러나 속내를 드러낼 수 없다. 여러 가지 자격증을 따면서 경험을 해 보았음에도 여전히 급한 마음이 생긴다. 딸아이도 그동안 눈물 흘리며 참고 최선을 다하며 열심인데, 엄마인 내가 조금 힘들다고 중도에 포기한다면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그러기를 몇 달, 초급에서 시작하여 고급과정까지 가니 재봉하는 일이 한결 수월해졌다. 삐뚤삐뚤하던 선도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 옆에서 새댁들은 이불도 만들고 옷도 만든다. 슬그머니 욕심이 난다. 기어코 저 수준까지 해 보리라 마음먹는다. 

하루 종일 재봉틀과 싸우고 있다. 발 매트, 화장지 덮개, 쿠션, 식탁보, 커튼 등 여러 가지를 만들었다. 소소한 소품을 만들어 지인들에게도 나눠 주었다. 그러고도 남은 작품들을 바라보면 마음이 흐뭇하다. 

이 작품들이 그냥 생긴 건 아니다. 그동안 얼마나 바늘에 찔려 피를 흘렸는지 모른다. 붉은 피가 하얀 천에 뚝뚝 떨어질 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래도 잠시였다. 볼품없는 천에 불과했던 조각조각들이 나의 손을 거쳐 여러 가지 작품으로 탄생할 때의 기쁨은 손에 난 생채기의 아픔을 충분히 감싸주고도 남았다. 첫 작품에서 오늘 만든 작품까지 차례로 늘어놓는다. 갈수록 태가 나고 맵시도 좋아 보인다. 해 냈다는 자존감이 나를 미소 짓게 만든다.      

딸도 나도 새로운 도전을 위해 서툰 걸음마를 시작하고 있다. 언젠가는 씽씽 달릴 그날이 멀지 않았음을 생각하며, 오늘도 딸은 연필로 쓱쓱 문제를 풀고, 나는 재봉틀로 드르륵 드르륵 작품의 모양새를 잡아간다.
 

▓ 약력 ▓
*수필가
*수필과 비평 신인상 수상
*계룡수필문학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