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따뜻한 햇볕이 창문으로 쏟아진다. 오늘 같은 날 햇볕에 침구를 널면 이불도 크게 숨 한번 쉴 것 같다. 창문을 열고 이불을 걸친다. 아침 청소를 대충 해놓고 시내로 나갔다. 시내에서 볼일을 보고 느긋하게 집으로 가는 중이다. 집에 가도 크게 바쁜 일이 없고, 점심때가 되어 가지만 점심 약속 또한 없다. 혼자서 뭘 먹을까 한가로운 고민에 빠졌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창가로 가본다. 이불의 보송한 기운이 느껴진다. 뒤돌아서려는 순간 온 몸이 굳어버리는 느낌이 든다. 큰 말벌 하나가 거실 안쪽 유리창에 붙어 있는 것이다. 아침에 서둘러 나가느라 방충망을 열고는 닫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그것도 꼼짝 않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말벌은 일반 벌과는 크기에서부터 확연히 다르다. 그러나 크기는 문제가 아니다. 이 벌에게 쏘이면 사람의 생명까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 아니던가. 그런 무서운 벌이 지금 나 혼자밖에 없는 집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이 대낮에 말벌을 용감하게 물리쳐줄 나만의 흑기사도 없고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우선 먼저 침입자를 내쫓아봐야겠다. 잘하면 쉽게 날려 보낼 수도 있을 것 같다. 파리채를 들고 조심스럽게 말벌에게 뻗어본다. 말벌은 지금 창문틀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앉아 있다가는 열심히 탈출구를 찾는다. 이 놈은 앞만 볼 줄 알고 옆은 보지 못하는가. 약 오 센티미터만 창틈을 넘으면 자유의 몸이 될 텐데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파리채로 창틈을 넘어서게끔 유도해 본다. 슬슬 걸어가더니 창틈에서 멈추고 다시 안쪽으로 들어가고 만다. 참았던 숨을 내쉰다. 멍청한 말벌, 겨우 용기를 내어서 도와주었더니 머리가 따라주지 않는 듯하다. 몇 번을 시도하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계속 건드렸다가 화라도 나서 공격해 오면 어쩌겠는가. 아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고민에 빠진다. 말벌을 창문에 둔 채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느긋하게 점심을 즐길 수도 없다. 위층 언니에게 도움을 청해 볼까 생각해 보았지만 나하고 똑같은 여자인데 무슨 뾰족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지나가는 남자를 집으로 불러들일 수도 없는 일이다. 순간 예전에 현관문이 차단되었을 때 오층 베란다를 타고 문을 따주었던 관리실 소장이 생각났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점심시간이 되어서 자리에 없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집밖에서 서성이며 들어오기를 몇 번이나 했다. 점심도 못 먹게 하는 말벌을 원망하면서 스스로 나가기만을 바랬다. 말벌도 지쳤는지 꿈적도 않고 그 자리에 있다. 옆으로 조금만 움직이면 되는 것을 한치 앞도 못 보는 곤충에게 내가 무엇을 바라겠는가.
달리 방법이 없어서 남편이 퇴근해서 오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위층 언니한테 하소연이나 하려고 전화를 했다. 마침 언니는 집에 있었다. 한 시간 이상 벌린 말벌과의 사투를 힘없이 얘기했다. 얘기를 다 들은 언니가 한마디 했다.
“창문을 닫으면 되잖아!”
“네?”
그랬다. 우리 집 거실은 이중창문이다. 밖에서 보면 제일 먼저 방충망이 있고 그 다음 창문이 있고 거실 안쪽으로 다시 창문이 하나 더 있다. 말벌은 바깥쪽 창문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안쪽 창문을 닫기만 하면 말벌은 우리 집 내부와는 차단이 되는 것이다. 그것을 모르고 그저 말벌을 내쫒으려고만 했던 나의 어리석음에 실소가 나온다. 그러면서 말벌의 어리석음만 탓하고 있었다니. 어리석은 것은 말벌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당황해서 그랬다고 합리화시키려 해도 한심하다는 생각이다. 인간이 태어날 때 부
터 날카로운 무기 하나 몸에 지니지 않았어도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 나의 행동은 창틈을 넘지 못해 갇히고 만 말벌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러면서 때로 잘났다고 뻐기고 큰소리치는 게 인간이란 생각이다. 이것은 인간과 곤충 세계에서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지 싶다. 배우고 못 배우고, 혹은 흔히 말하는 높은 자리에 있거나, 밑바닥 인생을 사는 사람이거나 무슨 대단한 차이가 있을까. 배웠다는 이유로 큰소리치기도 하고,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낮은 사람을 괄시하기도 하는 세상이다. 조금 더 자신을 낮추고 살펴볼 일이다.
집으로 들어와 얼른 창문을 닫는다. 말벌은 여전히 꿈쩍 않고 있다. 한시름 놓인다. 이제 말벌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리라. 그제야 늦은 점심을 먹는다. 햇살은 변함없이 따뜻하다. 말벌의 운명은 말벌에게 맡겨야겠다.
하루가 다 지나고 있다. 문득 창문에 붙었던 말벌을 확인해 본다. 없다. 혹시 죽었나 싶어서 창문 밑을 봤지만 흔적도 없다. 삶과 죽음을 넘나들다 다시 자유의 몸이 되어 훨훨 날아간 것이다. 다행이다. 곤충도 이렇게 자기의 삶에 충실하며 살아가고 있다. 역경을 이겨내며 제 갈 길을 찾아간다. 널어두었던 이불을 힘차게 털어 본다. 다시는 우리 집에 오지 말고 어디선가 잘 살기를 기원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