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물 앞에 서서

                                                                                                            곽 호 자

나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무리가 아니다. 항상 명확해야 되고 매사에 반듯함을 주장하는 사람이다. 반면에 나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챙기는 사람이 있으니 느슨해 진 건지 알 수는 없으나 잊음이 헐한 건 사실이다. 그런 사람이 돈 씀씀이를 얼버무리는 내 버릇을 곱게 볼 리가 없다. 저렴한 것만이 좋은 상품이라고 우기는 사람이니 더욱 그런지 모른다. 어리석게도 자기 마누라가 비싼 물건을 피하는 줄로 안다. 명품이 왜 존재하는지, 왜 짝퉁이 쏟아져 나오는지 그 이유를 모른다. 명품 가방 없는 아내가 둘도 없는 현모양처인 줄 믿으려 한다. 그러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재주는 있다. 아내로 살아가는 재주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적당히 속아주며 산다. 알면서 속아주는 것이 부부간의 미덕이라면 미덕이다. 지나친 간섭은 관심으로 여기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불만을 내쳐버린다. 싫은 것이 한둘씩 불어난다고 해서 이 나이에 경거망동할 처지는 아닌 것이다. 남편이나 나나 피차 마찬가지다. 왈가왈부하기에는 머릿속이 먼저 지끈거린다. 반쯤은 싱겁게 반쯤은 짭짜름하게 사는 것이 지혜롭지 싶다. 젊은 시절에는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이 투명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 늦은 귀가라든가 잡다한 일까지 꿰뚫고 있지 않으면 초조했다. 그런 행동은 신혼을 벗어날 무렵에 더 기승을 부렸다. 그러나 왕성한 질투가 밴 생활은 얼마 못가서 시들해졌다.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으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악처와 양처의 존립. 그 사이를 넘나들며 스스로를 조절할 줄 아는 어른이 되기까지 반복된 어설픈 삶. 지나고 보니 그 세월도 열정이었지 허투루 살아온 건 아니었다.

지갑은 부부의 신뢰 주머니와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돈이 있고 주민등록증이 있다. 몇 개의 카드와 운전면허증도 있다. 삶을 이끄는 원동력이 집약된 공간이나 다름없다. 가족을 감싸주는 능력이 있는 반면 위협 당할 소지가 있는 위험물이기도 하다. 얇은 부피에 반비례하는 힘은 무한대다. 굴복하고 지배한다. 천의 얼굴이다. 그것을 다 품을 수 있는 것은 지갑이다. 이것을 내가 지배하거나 남편이 지배한다. 허물없다. 부부간도 허물없기는 마찬가지다. 지폐를 정리해 주거나 영수증을 보관해 주려는 일을 아내를 위해서 대신한다. 그 의도가 순수하다. 그 순수를 왜곡하는 것은 악처나 다름없다. 허물을 덮는 매개체는 누구도 아니고 우리 부부일 뿐이다. 늦게 깨달을수록 작아지는 몸체. 그러나 흩어졌다가 뭉치며 거듭나는 작은 세상을 품었다. 그 지갑 속에 내가 있다. 잉글랜드 학자 토마스 풀러가 말했다. ‘남자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재산, 또는 최악의 재산은 바로 그의 아내다.’라고.

최고의 재산과 최악의 재산은 부부의 공통분모가 아닌가. 부족한 것을 채우고 서툰 것을 익히는데 사십하고도 오년을 더 보탰다. 마음의 짐도 어지간해서 내색할 줄을 모르는 사람. 때로는 답답하다. 좋고 싫음이 불분명한 성격이 마뜩찮다. 사십 오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하지만 이제는 얼굴 표정에서 모든 것을 읽는다. 서로를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흠이 되길 원치 않는다. 동반자란 사명감으로 서로를 외면하지 못한다. 짊어진 짐이 무겁다고 내려놓지 못하는 짐꾼, 그 짐꾼의 지팡이를 빼앗을 수 없듯, 같이 목적지까지 걸어가는 남편과 아내다. 무거운 등짐을 나누어 들고 가는 동반자다.

한해의 끝이다. 끝물이라는 단어가 불쑥 생각난다. 아침에 떠오르는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가는 것은 하루의 끝물이라 말할 수 있다. 끝물의 빛깔이 곱다. 한나절 내내 찬란하던 색채와는 사뭇 다르다. 지는 해만이 품을 수 있는 그윽함이다.

▒ 약력 ▒
*수필가
*거제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수료
*“수필과 비평” 신인상 수상
*계룡수필문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