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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희]잔영
거제타임즈  |  geojetime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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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8.28  14:2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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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영 
                                                                                                                                               윤정희

   
 
그녀가 저만치서 터벅터벅 걸어온다. 가을은 아직 멀리 있는데 철 이른 긴 옷에 두 손으로 불룩한 배를 가리듯이 옷 앞자락을 붙잡고 우리에게로 천천히 다가왔다. 그녀를 기다리며 바라보고 섰던 친구들이 그 모습에 의아하여 각자 한 마디씩 던진다. 누구는 우스갯소리로 환갑에 임신을 했느냐고, 또 누구는 운동을 하지 않아 뱃살이 나왔다고, 그렇게 조잘거려도 그녀는 별 반응 없이 싱긋이 웃으며 그냥 소화가 잘 안된다고 말 할 뿐이다.
한동안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우리 둘은 손자를 돌보느라 늘 바쁘게 살았다. 집은 쳐다보면 지척인데 천리 밖 같이 만나기가 힘들었다. 가끔씩 전화 통화로만 서로의 소식을 들었다. 추석을 지난 어느 날 그녀의 딸이 병원이라며 한통의 전화가 왔다. 매우 다급한 목소리였지만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하고 울먹거렸다. 순간 예사롭지 않음을 직감했다. 나도 모르게 다그쳤다. 엄마가 간암 말기, 남은 시간이 이 삼 개월뿐이란다. 딸의 오열에 수화기를 힘없이 놓고 말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 버렸다. 내가 알기로는 평소에 한 번도 건강문제로 병원에 가본일이 없는 그녀다.
그녀는 병원에서 아주 위독한 상항을 면하고 잠시 집으로 왔다. 다시 또 병원으로 몇 번을 반복했다.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생을 아는지 모르는지 친구들이 찾아가면 여느 때처럼 생글생글 웃으며 그냥 초연한 모습이다.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슬펐다.
사람들은 누구나 죽는다. 하루 살았다는 말은 하루 더 죽음에 가까워 졌다는 또 다른 표현일 뿐이다. 언제나 모든 삶이 죽음과 공존한다고 해도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절박한 현실을 마주하면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분명 그녀도 엊그제 까지는 힘겨워도 손자들의 재롱에 즐거움도 있었고 살아 볼만한 세상 이였을 텐데 한 순간에 삶이 이렇게 허망하게 끝날 줄은 상상이나 했을까.
정해진 시간은 어쩌면 그렇게 빨리 가는지. 그날도 그녀를 만나려 갈 준비 중에 있었다. 갑작스런 전화 벨소리, 수화기 속에서 들리는 소리는 엄마의 죽음에 자녀들이 절규하고 있었다. 서둘러 친구 몇몇이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녀의 남편은 잠깐 출타 중이였고 엄마의 주검 앞에 자녀들만 넋을 놓고 울부짖고 있었다. 어떤 말로도 위안이 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마지막 가는 길에 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을 잠시라도 눈에 더 담고 싶었는지 눈도 감지 못하고 험한 세상 지혜롭게 살아가라는 당부의 말도 입을 연채 숨을 거둔 슬픈 표정은 무엇으로도 표현이 안 된다. 아무리 슬퍼도 내가 정신을 차려야했다. 헛터러진 그녀의 주검을 보고 그냥 있을 수 없었다. 내속 어디서 이런 용기가 나왔을까. 그녀의 육신이 굳어지기 전에 얼굴을 나의 두 손으로 부드럽게 쓰러 내렸다. 깨끗한 수건을 접어 턱을 고이고 손은 가지런히 가슴에 놓고 두발도 모아 자세를 바르게 잡아주었다. 비로소 이승을 떠나는 그녀의 안정된 모습이 되었다. 하얀 면사포 같은 천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이승에서 마지막 작별의 인사를 했다.
“사랑하는 친구여 여태껏 살아온 일상의 더께를 훌훌 벗어버리고 진정 친구가 원하는 곳에서 편안히 영면하라. 또 다음 생에도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되자”고 당부했다.
삼십년을 이웃하여 고락을 같이 나누던 친구를 그렇게 허망하게 떠나보냈다. 이제 그녀의 사대는 지수화풍으로 돌아가고 한줌의 재로남아 자신이 살아온 한 생애의 기억들을 천천히 지워갈 것이다. 하지만 남은 자들의 슬픔은 언제까지 그녀를 휩싸고 돌지 가늠이 가지 않는다. 인생은 왔다 가는 길일뿐 머물러 영원히 사는 곳이 아닌 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주검 앞에 서면 살아있는 이 자리가 얼마나 허망하고 덧없는지. 죽는다는 것이 자연의 순리라고 하지만 그 순리 앞에 서있는 우리들은 왜 이리도 목이 메이는지 모르겠다.
그녀와의 좋았던 시간은 한 순간처럼 짧았고 평생을 이웃에서 같이 할 것 같았던 무언의 약속은 이승과 저승의 단절로 끝나 버렸다. 몇 달을 아무 일도 손에 잡을 수가 없었다. 한동안 그녀의 잔영으로 잠도 제대로 못 이루고 눈물이 친구를 잃은 허전한 가슴을 적셨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가.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죽음은 차츰차츰 멀어지고 하루 먹을 것 입을 것 만 가지 걱정으로 다시 현실 속으로 찾아들었다.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여태 열심히 살았다 생각하고 돌아보니 뚜렷한 흔적은 보이지 않고 아쉬움만 남았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을 보면서 누구나 한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인생의 의미를 다시금 절감했다. 마지막 순간이 내일이 될지라도 이제는 자신을 위해서 무언가를 찾아 몰입해 보고 싶다. 또한 미워하는 마음보다 감사하면서 살아도 내 남은 시간은 그렇게 여유롭지 않다는 것도 느꼈다. 요즘은 내 생활공간이 좀 넓어졌다. 때때로 가슴속에 좋은 생각을 담은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며 삶에 즐거움을 찾을 수 있어 새롭다. 이모든 것도 그녀가 나에게 주고 간 선물이라 여긴다.
친구여! 나는 지금도 너 가 그립다. 잊은 줄 알았던 너와의 추억들은 세월이 갈 수록 다시 새록새록 살아나 수년 아니 수십 년이 흘러도 보고 싶고 그리워하는 그 마음은 내내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 약력 ▓

*거제 출생

*거제대학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수료

*《수필과 비평》 신인상 수상

*계룡수필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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