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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호자] 덧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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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9.26  11: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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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칠하다.
                                                                                                                                          곽 호 자

   
 
몸은 늙어도 마음은 청춘이다. 수채화 초급반. 복지회관 삼층을 단숨에 오른다. 회원들이 수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젊은 층과 노년층이 섞여있었는데도 분위기는 좋아보였다. 물위의 기름방울 같은 존재로 취급받지나 않을까 우려를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남녀노소. 때늦은 향학열이 실내를 데운다. 주섬주섬 화구가방을 편다. 파렛트와 물감, 스켓치북과 붓, 그동안 거리가 멀었던 물건들이 눈앞에 진열되어있다. 마음은 청춘인데 어지럼증이 난다.
‘소묘’를 가볍게 여긴 것이 탈이었다. 손이 떨렸다. 오른손 왼손 번갈아가며 선으로 이어가는데 도무지 나아지지가 않았다. 그림에 대한 달콤한 환상은 초장에 먹칠이 되었다. 다시 삼각형을 선으로 나타내는데 몰두했다. 가늘게 조심조심 내리긋는 순간 그만 휘청! 손끝이 빗나가간다. 좌우의 회원들 그림을 본다. 고만고만한 수준들에 비해 유독 한분의 솜씨가 눈에 띈다. 선 처리부터 실패한 내 솜씨와는 차이점이 두드러져 보인다. 삼각형의 망가진 선을 지우개로 지운다. 다시 내리긋기를 수차례 손가락의 힘을 빼니 한결 낫다.
수채화의 기본은 선긋기이다. 그러나 물감의 농도 맞추는 일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한 기초였다. 초보입장에서 애를 태우는 건 물감희석이었다. 각기 다른 물감이 섞이어 오묘한 색을 나타내는 것은 그림의 묘미가 아닌가. 젊은 시절에 도전해 보지 못한 아쉬움을 털어내 본다. 학창시절. 미술시간은 나를 들뜨게 했다. 취미였고 로망이었기 때문이었다. 수업시간 못다 그린 그림을 채우는 시간은 집의 대청마루에서 이루어졌다. 상상화는 머릿속에 그려진 꿈의 토막들이 주제가 되기도 했다. 그 시간은 황홀할 수밖에 없었다. 싸구려 물감과 도화지, 형식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한 그림공부. 그런 것을 질타할 줄도 모르는 60년대 초반의 여학생은 얌전히 도화지를 채워가는 재미에 빠졌다.
풍경화에 심취한 것은 그 시기였다. 손가락의 기교보다 사물을 보고 느끼는 심미안이 그림의 완성도를 높인 다는 것을 깨달았다. 잘 그려지지 않는 원근법이며 서툰 붓놀림은 그 당시에도 진전이 없었다. 졸업은 모든 의미를 종료했다. 그림은 사치라고 치부해버리는 주위사람들과 한 통속이 되어야 했다. 그런 내가 이 나이에 화가의 그림을 무심히 스치지 못한다. 추상화든 동양화든 정물화든 그 앞에서 늙어가는 내 초상화의 초라한 모습을 그려본다. 살아온 평생에 명암의 골짜기는 얼마만큼 깊은지 가늠하지도 못한다. 사람의 도리를 다해서 산다는 것이 또 얼마나 어려운가. 설사 그렇다 해도 최선을 다해 살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기도 한다. 지금의 시대로 거슬려 갈수만 있다면 소신껏 살아도 보련만. 그러나 마음만은 청춘이지만 몸은 늙었다.
스켓치 북에 채색을 입히는 작업을 한다. 밋밋한 원기둥이며 목침모양의 직사가형을 그린다. 밝고 어두운 명암을 넣는다. 쉬운 듯 어렵다. 역시 지도교사의 지시가 큰 도움이 된다.
조용한 시간이다. 간이 이젤의 삐걱거리는 소리도 무감각해지고 붓을 놓을 줄 모른다. 물감이 흰 종이에 번진다. 원하는 색깔이 나타나질 않아 다들 고심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교사는 한 바퀴 교실을 돌아 내 그림을 본다. 물감이 번져 얼룩진 부분을 수정하는 기법을 가르쳐준다. 덧칠하는 법을 배운다. 수채화의 중요한 기법 중의 하나다. 마르기 전에 덧칠은 금물이라는 것. 완전히 말린 후에 물감을 새로 칠하는 것. 금물은 또 있었다. 지도 교사의 지시를 무시하지 말라는 주의를 주었다. 혹자는 귀로 듣고 채색을 서두르는 성급한 이도 있어서 한 말이었다. 어른이나 아이나 학생신분이 되니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자존감을 내 세우는가 하면 그 자존감을 굽히지 않으려는 고집 센 사람도 있다. 그들 무리에 나를 희석한다.
그리는 수채화는 진행 중이다. 글 쓰는 작업도 마찬가지다. 한가하게 사는 것보다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 의미 있는 삶이라는 판단을 한다. 내 글속에 덧쓰기의 요령이 필요하듯이 그림 속에 덧칠도 필요하다. 얼룩진 부분을 덧칠로 인해 그림의 완성도를 높이는 술수이다. 언제까지 계속될지 그건 모른다. 나를 위한 작업의 시간을 즐기면 그것으로 족하다. 삶의 후반부가 느슨해지지 않도록 노화된 끈을 조여 계단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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