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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태]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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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1.14  17: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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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시

서 용 태

   
 
한여름엔 새벽운동이 그저 그만이다. 뙤약볕에 달궈진 열기가 알맞게 식어있어 좋다. 운동이래야 걷기가 전부다. 나이를 생각지 않고 운동의 강도를 높이면 몸이 알아서 거부를 하기 때문이다. 새벽 다섯 시께 집을 나서서 한두 시간 후에 돌아오면 된다. 새벽공기가 시원하게 폐부를 적시면 온 몸에 활력이 전해진다. 걷기운동을 할 때에는 빠른 걸음으로 움직여 주어야 효과가 있다. 그러면 땀으로 온 몸이 흠씬 젖는다. 체내에 쌓인 노폐물이 땀과 함께 빠져나간다는 상상을 하면 기분이 더욱 상쾌해지는 것이다.

요즈음 들어 날씨가 이상해졌다. 중부지방에는 물난리, 남부지방에는 매일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 가뭄이 이어지니 말이다. 땅속의 미물들도 가뭄을 타는 탓일까, 하천 뚝 길 위에 지렁이들이 수 없이 나와 뒹군다. 사람들은 지렁이가 땅속에서 기어 나오면 통상 수 일 내로 비가 온다고 믿어왔다. 그러한 경험의 축적은 상당한 정확성을 가졌다. 일 년 전만해도 그랬다. 출장길에 기어 나오는 지렁이를 보면 틀림없이 이틀 안에 비가 왔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금년 들어서는 그게 아니다. 달포 동안 비는 오지 않고, 애꿎은 지렁이만 죽어나가니 말이다.

필경 땅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크고 작은 것들이 산책길 곳곳에서 꿈틀거린다. 그 동안 늘어난 식구들의 등살에 못 이겨 힘없는 노모가 집을 나왔거나, 남편의 주사에, 손찌검에 견디다 못해 방황하는 새댁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공부에 지친 어린 것들이 세상구경이나 해보자며 뛰쳐나올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땅 속 지렁이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온 몸을 쭉 늘어뜨리고 이동을 해보지만 이슬에 젖은 풀 속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 능선 위로 햇빛이 비치는 순간부터 생의 마감시간은 분침만큼 빠르다. 몸통에 남아있는 끈끈한 습기가 서서히 마르면서 몸을 이리저리 굴러 고통을 이겨보려 한다. 그렇지만 그 몸부림은 무자비한 적들의 공격 신호가 될 뿐이다. 개미들이 한 마리씩 모여드는가 싶더니, 이내 떼로 몰려와 산채로 그놈들의 소굴로 끌고 가기도 한다. 그 뿐이 아니다. 전신주에는, 운동하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가며 까마귀와 까치란 놈이 밥상에 올리려 노려보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몸집이 작은 새무리들까지 이 성찬에 참여할 태세다.

죽음을 앞둔 지렁이는 아무런 저항이 없다. 어느 미물들에게 끌려가기도 하고, 그 놈들의 뱃속을 채워 주기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이건 제 육신을 던진 보시다. 죽어서 어디론가 끌려가 개미 밥이 되고, 새들의 먹이가 되어 그들을 살찌우니 어찌 보시가 아니랴.

문득 무재칠시(無財七施)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비록 재물이 없어도, 남을 위해 베풀 수 있는 게 일곱 가지가 있다는 말이다. 나는 이 일곱 가지 중에서 ‘자안시(慈眼施) 하나라도 실천하기로 했다. 항상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면서 마음의 화평을 얻으며, 과욕과 경쟁심을 멀리하는 자기수련을 통해서 편안하고 자애로운 눈빛을 갖고자 하는 것이다. 남을 위해 온유한 눈빛 한 가지라도 제대로 베풀 수 만 있다면 그 만큼 세상에 온기가 돌지 않을까 싶어서다.

세상에는 자애로운 눈빛이 있는가 하면 살기마저 느껴지는 소름끼치는 눈빛도 많다. 자애로운 눈빛에는 뭐니 뭐니 해도 엄마가 자식을 바라보는 눈빛이었으면 좋겠고, 버려야할 것은 사바나에서 사자가 배고플 때 희번덕거리는 살기 가득한 눈빛이 될 것이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려면 서로 도우며 살아야한다. 이 평범한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너무도 잘 알고 있으면서 하루하루의 삶은 정반대이다. 상대를 억누르고 위에 서고 싶어 한다든지, 멸시하고 저주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이처럼 마음이 아비지옥으로 흐르니 마음의 창이라는 눈의 빛이 비수처럼 매섭게 변할 수밖에 없다.

땅속에서 나온 지렁이가 온 몸을 던져 다른 미물들에게 보시하는 것처럼 하기는 어렵다. 내 눈빛 하나라도 세상에 보시해 보는 것은 쉬운 일일 것이다. 자식을 바라보는 자애로운 어머니의 눈빛이어도 좋고, 연인끼리의 다정한 눈빛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으나, 아침 이슬에 함초롬히 피어난 꽃송이를 쳐다볼 때의 그윽한 눈빛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약력-

 *수필가

*수필과비평 신인상 수상

*계룡수필문학회 회원

*거제시 의회사무국장, 주민생활국장 역임

*수필집 ‘덧셈과 뺄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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