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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순조]비록 홀로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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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2.31  14: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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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록 홀로이지만

                                                                                                                                    왕 순 조

   
 
날씨가 화창한 봄날 아파트 모서리를 돌아서니 벚꽃이 숨었다가 내 시야로 와락 달려든다. 선들바람이 불자 만발한 꽃잎이 황홀하게 꽃비 되어 내린다.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우뚝 서 버리고 만다. 눈이 부시도록 나풀거리는 모습을 오래오래 바라보고 싶다. 그러나 이 꽃비처럼 허망하게 쏟아져 내리고 마는 것이 또 있을까. 화사함이 오래 지속되려니 하지만 이내 끝내고 마는 것을.
봄, 벚꽃이 밀물처럼 지나가는 계절이 오면 으레 그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신열을 느낀다. 그이는 정말 벚꽃처럼 잠시 지키다가 내 곁을 떠났다. 느닷없이 쏟아진 봄비에 치맛자락 추켜잡고 떠난 벚꽃처럼 그이는 우리의 둥지에서 영원이 떠났다. 나에게 있어서 봄은 그 이후로 애잔한 계절로 바뀌었다.
눈빛만 보아도 내속을 알아차리던 그는 내가 좋아하는 벚꽃 구경을 그 해는 가지 못해서 다음에는 태평양, 대서양이라도 간다고 하면서 나이가 들면서 사소한 것까지 더 챙겨주었다.
굴곡이 많았던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앞만 보고 의상 기술을 살려서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오뚝이란 별명을 붙여준 사람. 그는 나를 믿었기에 그리도 급하게 떠날 수 있었을까? 하루의 삶이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갑자기 날씨가 변하거나 혼자 있다는 것이 느껴지면 어김없이 내 곁을 찾아든다.
얼마의 세월이 흘러야 그의 그림자에서 나는 자유로워 질 수 있을까? 고향이 같은 우리는 동갑내기로 생일도 2월2일,4월4일이다. 별 상관은 없어도 이상한 인연이란 생각이다. 그는 제대 후 집안의 주선으로 첫선을 보고, 콩깍지 씌어 바로 결혼했고, 아들하나 나아 키우며 오순도순 살았다. 마흔이 넘어 늦둥이 아들을 얻은 후 그는 무척 좋아했다. 그 기쁨은 나에게로 닿아, 일을 들어준다며 시장까지 봐 오고, 손수 반찬을 만들어 주는 자상함으로 나에게 조용하고 따뜻하게 다가왔다.
어느 날 병명을 진단받고 의사의 지시에 따라 열심히 치료한 덕에 다 낳아다는 소식을 듣고 그해 여름 우리는 여름휴가를 계획했다. 평소에 애교가 없다는 말을 듣던 나는 이번 휴가에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무슨 말로 감동 시킬까 사춘기 소녀처럼 들떠 있을 때 그는 홀연히 내 곁을 떠나갔다.
배가 아프다고 병원을 찾은 그는 입원실을 거쳐 하루 만에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끝내는 이성과 영원이 결별을 하고 말았다. 병원 간 지 열흘 만에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난 사람. 하고 싶었던 말을 전하지도 못한 나는 응어리진 가슴을 안고 산다. 상대에게 감동 줄 말은 기회를 만들어 빨리 해야 됨을 미처 몰랐던 내가 후회스럽다.
함께 하던 사람이 갑자기 떠나면 무섬증이 든다고들 주위에서 수군거렸지만 그이는 결코 떠나지 않았다. 늘 옆에 있어서 지켜주고 도와주는 느낌이다. 가게에서 점원들은 홀로 남아 저녁밥에 수저를 들 때면 그이는 내 곁에 와서 지켜보며 내 눈가를 닦아준다.
한번은 그러는 내가 안쓰러운지 꿈에 나타나 차에 태우고 한참을 가다가 식당 부근 사람들이 많은 곳에 내려주었다. 생시와 똑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이상타 하고 있었는데 클로버(4H)모임에서 연락이 왔다. 이것은 그가 시골에서 청년시절부터 해 왔던 모임이다. 그가 무척이나 좋아하던 모임. 그들이 갑자기 떠난 친구들을 그리워하여 거제도로 와서 나를 부른 것이다. 인사하러 갔다가 남편대신 모임의 한 사람이 되었다. 바깥 생활이 별로 없는 나에게 밖으로 나가는 기회를 만들어 준 그들의 배려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내가 힘들 때면 그는 의례 생전에 많이 입던 겨울 점퍼 차림으로 꿈에 나타나 환하게 웃으며 오른손으로 V자를 그리기도 한다. 더러는 유리창 너머에서 손을 흔들기도 했다.
이제는 생활이 조금씩 안정이 되어가고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취미교실도 들락거린다. 그만큼 바깥생활이 생기고, 외로움도 마니 들어내고, 슬픔을 이기려 동창회에도 나가서 친구들도 자주 만나고 있다. 지금도 어려울 때면 그이가 내 곁에 있다고 나 자신에게 최면을 건다. 어느새 제 아바를 꼭 닮은 두 아들이 내 곁을 지키고 있다.
 

약력
경남 의령 출생
계룡수필문학회 회원

 

 

비록 홀로이지만

왕 순 조

날씨가 화창한 봄날 아파트 모서리를 돌아서니 벚꽃이 숨었다가 내 시야로 와락 달려든다. 선들바람이 불자 만발한 꽃잎이 황홀하게 꽃비 되어 내린다.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우뚝 서 버리고 만다. 눈이 부시도록 나풀거리는 모습을 오래오래 바라보고 싶다. 그러나 이 꽃비처럼 허망하게 쏟아져 내리고 마는 것이 또 있을까. 화사함이 오래 지속되려니 하지만 이내 끝내고 마는 것을.
봄, 벚꽃이 밀물처럼 지나가는 계절이 오면 으레 그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신열을 느낀다. 그이는 정말 벚꽃처럼 잠시 지키다가 내 곁을 떠났다. 느닷없이 쏟아진 봄비에 치밋자락 추켜잡고 떠난 벚꽃처럼 그이는 우리의 둥지에서 영원이 떠났다. 나에게 있어서 봄은 그 이후로 애잔한 계절로 바뀌었다.
눈빛만 보아도 내속을 알아차리던 그는 내가 좋아하는 벚꽃 구경을 그 해는 가지 못해서 다음에는 태평양, 대서양이라도 간다고 하면서 나이가 들면서 사소한 것까지 더 챙겨주었다.
굴곡이 많았던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앞만 보고 의상 기술을 살려서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오뚝이란 별명을 붙여준 사람. 그는 나를 믿었기에 그리도 급하게 떠날 수 있었을까? 하루의 삶이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갑자기 날씨가 변하거나 혼자 있다는 것이 느껴지면 어김없이 내 곁을 찾아든다.
얼마의 세월이 흘러야 그의 그림자에서 나는 자유로워 질 수 있을까? 고향이 같은 우리는 동갑내기로 생일도 2월2일,4월4일 이다. 별 상관은 없어도 이상한 인연이란 생각이다. 그는 제대 후 집안의 주선으로 첫선을 보고, 콩깍지 씌어 바로 결혼했고, 아들하나 나아 키우며 오순도순 살았다. 마흔이 넘어 늦둥이 아들을 얻은 후 그는 무척 좋아했다. 그 기쁨은 나에게로 닿아, 일을 들어준다며 시장까지 봐 오고, 손수 반찬을 만들어 주는 자상함으로 나에게 조용하고 따뜻하게 다가왔다.
어느 날 병명을 진단받고 의사의 지시에 따라 열심히 치료한 덕에 다 낳아다는 소식을 듣고 그해 여름 우리는 여름휴가를 계획했다. 평소에 애교가 없다는 말을 듣던 나는 이번 휴가에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무슨 말로 감동 시킬까 사춘기 소녀처럼 들떠 있을 때 그는 홀연히 내 곁을 떠나갔다.
배가 아프다고 병원을 찾은 그는 입원실을 거쳐 하루 만에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끝내는 이성과 영원이 결별을 하고 말았다. 병원 간 지 열흘 만에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난 사람. 하고 싶었던 말을 전하지도 못한 나는 응어리진 가슴을 안고 산다. 상대에게 감동 줄 말은 기회를 만들어 빨리 해야 됨을 미처 몰랐던 내가 후회스럽다.
함께 하던 사람이 갑자기 떠나면 무섬증이 든다고들 주위에서 수군거렸지만 그이는 결코 떠나지 않았다. 늘 옆에 있어서 지켜주고 도와주는 느낌이다. 가게에서 점원들은 홀로 남아 저녁밥에 수저를 들 때면 그이는 내 곁에 와서 지켜보며 내 눈가를 닦아준다.
한번은 그러는 내가 안쓰러운지 꿈에 나타나 차에 태우고 한참을 가다가 식당 부군 사람들이 많은 곳에 내려주었다. 생시와 똑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이상타 하고 있었는데 클로버(4H)모임에서 연락이 왔다. 이것은 그가 시골에서 청년시절부터 해 왔던 모임이다. 그가 무척이나 좋아하던 모임. 그들이 갑자기 떠난 친구들을 그리워하여 거제도로 와서 나를 부른 것이다. 인사하러 갔다가 남편대신 모임의 한 사람이 되었다. 바깥 생활이 별로 없는 나에게 밖으로 나가는 기회를 만들어 준 그들의 배려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내가 힘들 때면 그는 의례 생전에 많이 입던 겨울 점퍼 차림으로 꿈에 나타나 환하게 웃으며 오른손으로 V자를 그리기도 한다. 더러는 유리창 너머에서 손을 흔들기도 햇다.
이제는 생활이 조금씩 안정이 되어가고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취미교실도 들락거린다. 그만큼 바깥생활이 생기고, 외로움도 마니 들어내고, 슬픔을 이기려 동창회에도 나가서 친구들도 자주 만나고 있다. 지금도 어려울 때면 그이가 내 곁에 있다고 나 자신에게 최면을 건다. 어느새 제 아바를 꼭 닮은 두 아들이 내 곁을 지키고 있다.
약력
경남 의령 출생
계룡수필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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