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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박사 양형재]'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4-''클래식 음악과의 만남'-환경부 한강물환경연구소장
거제타임즈  |  geojetime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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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2.16  21:3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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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학위까지 받은 환경 공학도가 아름다운 선율을 음미하게 하는 클래식 음악의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여러분은 어떻겠습니까? 유유히 흐르는 강물 만큼이나 잔잔하고, 아름답게 흐르던 강물이 홍수처럼 격렬하게 부딛치는 클래식 음악이야기를 통해 우리들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게 할 글을 환경부 한강물환경연구소장 양형재박사가 본사에 보내주기로 약속했다. <편집자>
물 박사 양형재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4-'헨델'
④서양음악의 어머니 헨델

   
 
1980년대초 미국 덴버대학에서의 실험결과에서 식물이 록 음악보다 고전음악을 더 좋아하는 것으로 밝혀졌다.“록과 헤비메탈을 듣고 자란식물은 비정상적으로 커지거나 아예 성장을 멈추고는 2주안에 죽어버렸지만, 헨델과 바흐의 음악을 듣고 자란식물은 풍성하게 잘 자랐을 뿐만 아니라 음악이 들리는 방향으로 몸체가 기울었다”고하는 이야기를 들어본적이 있으신가요? 우리 인간에게 고전음악이 미치는 영향은 어떨까 생각해 보신 적은 있으시겠지요?

 우리는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통해 바흐는 서양음악의 아버지, 헨델은 서양음악의 어머니로 불리는 음악가임을 알고 있다. 헨델은 바흐와 같은 해(1685년)에 같은 나라(독일)에서, 헨델은 2. 23일에 바흐는 3. 21일에 태어났으니 헨델이 26일정도 빨리 태어난 셈이다. 바흐는 음악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나 헨델은 부계나 모계 모두 음악가라고는 없었고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음악을 공부한 뒤 런던을 중심으로 음악활동을 했다.

독일 밖으로 나가본 일도 없었던 바흐와는 달리 헨델은 유럽각국을 다니면서 활동한 한마디로 유명한 잘나가는 작곡가였다. 그렇지만 궁정의 음악가로 성실한 음악가로 살았던 바흐에 비해 헨델은 남의 작품을 슬쩍 표절하고도 태연하기도 하며 도박을 즐겨 부자가 되었다가 파산에 이르기도 하는 등 생활의 기복이 심했던 작곡가였지만, 한마다로 통 큰 사업가의 기질을 가졌던 음악가라고 평가하고 싶다.

 헨델의 음악은 감성적이고 멜로디를 바탕으로 대중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웅장하고 스케일이 크고 다이나믹하다. 헨델은 성악곡에서 뚜렷한 실력을 보였으며 영국에서 인기 오페라를 많이 작곡하였고 영국음악의 기초를 다진 작곡가 이기도하다.

   
▲ George Frideric Handel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 헨델)작곡가/ 생몰1685.02.23~ 1759.04.14 , 독일 출생
1712년 영국으로 건너가 처음에 오페라 작곡을 의뢰받아 2주일만에  작곡한 <리날도>가 상연되었을 때 영국사람들은 이 오페라에 반하여 헨델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영국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탓에 1726년 영국인으로 귀화하여, 영국민들의 사랑를 받으면서 작곡에 전념하였던 그는 죽어서 영국인들의 최고의 영예로 여기는 웨스트민스트 사원에 묻혔다. 

헨델의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는 <메시아>에는 "할렐루야" 합창이 인기였는데 이걸 듣던 영국 왕이 “할렐루야 할렐루야 ...” 하는 부분에서 일어나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일어났다. 영국에서 일어나니까 미국에서도 그리고 일본에서도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기도 하였다(유럽대륙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는 오라토리아(Oratorio; 종교적대본을 반쯤 오페라적인 양식으로 드라마틱하게 작곡한 확장된 형태의 코랄-오케스트라, 원래는 이탈리아식 장르였지만 헨델이 영국식 오라토리오의 고유한 스타일을 창안하여 후에 하이든이 <천지창조>, <사계>를 작곡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음)와 같은 엄청난 작품을 만들어 바흐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작곡가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외에 유명한 <수상음악>은 왕이 테임즈강에서 뱃놀이를 즐긴다는 걸 알고 환심을 사기위해 작곡하였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그의 음악을 들으면 필자는 시원시원함을 느끼는데 시민 여러분께서는 어떤 느낌이라고 하실지 궁금해진다. 헨델이 74살까지 장수하고 영국민들의 애도를 받으며 운명했고 웨스트민스트 사원에 묻힌 것은 그가 영국음악에 미친 영향이 지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바흐와 헨델이 음악의 아버지와 어머니인 이유
                17세기 바로크 시대를 풍미하던 대표적인 음악가 바흐와 헨델.
 그들은 각자 음악의 아버지 바흐, 음악의 어머니 헨델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음악에는 얕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기자가 공부한 그들의 인생과 대표적인 작품 몇 가지를 소개해 본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
 음악의 아버지 바흐(Johann Sebastian Bach, 요한 세바스찬 바흐, 1685~1750, 독일)
 
대부분의 사람이 '클래식'이라고 일컫는 서양음악에서 바흐는 그야말로 바로크 시대를 주름잡은 절대적인 존재이다. 때문에 그를 음악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17세기 당시 음악에 교회가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음악에서는 신앙심과 경건함을 빼놓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 바흐의 음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토카타와 푸가'이다. 바흐 특유의 오르간 음이 귀에 또렷이 남기 때문인 것 같다. 주로 비극적이거나 음산한 분위기에서 그의 음악이 많이 쓰였기 때문에 나머지 부분도 음산할 것만 같은 느낌이다. 익숙한 피아노 음보다 오르간의 음이 좀더 음산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비극적인 첫 도입부에 비해 토카타와 푸가의 나머지 부분은 오히려 경건하고 웅장한 느낌이 든다. 
 
실제로 바흐는 유명한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교회에서 궁정악사로서 신성하고 경건한 음악을 만들며 살아왔다. 때문에 그의 음악의 대부분은 바로크 시대의 신앙심을 기반으로 한 음악으로 푸가가 대표적이다.
 
그는 궁정악사를 하며 교회를 위한 음악을 만들며 가난하고 평탄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실제로 생전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음악가였다. 사후에 멘델스존이 흩어졌던 그의 악보를 모으고, 그의 음악들이 재조명받으며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렇다면 헨델은 왜 음악의 어머니라고 불리게 되었을까.
음악의 어머니 헨델(Georg Fredric Handel,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 1685~1759, 독일).
 헨델은 바흐와 동 시대, 같은 국가에서 태어나 나중에는 영국으로 옮겨갔다. 바흐가 바로크 시대의 표준이라고 불릴 만큼 큰 틀을 잡아놓았다면 헨델은 실질적으로 음악으로 다양한 방면에 접목했기 때문에 살림을 잘 꾸려나갔다고 하여 음악의 어머니라고 불리게 되었다.

   
▲ George Frideric Handel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 헨델)작곡가/ 생몰1685.02.23~ 1759.04.14 , 독일 출생
실제로 바흐는 음악가 가문에서 자라 신앙심을 바탕으로 궁중악사로서 조용히 작곡을 하며 살았다면, 헨델은 그의 사업가적인 면모로 그의 음악을 돈과 연관시키는 능력이 있었다. 따라서 그는 결혼도 하지 않고 자유롭게 음악활동을 하며 살았고, 그의 음악을 오페라로 발전시켜 많은 돈을 벌어들이기도 했다.
 
그들의 삶은 너무나도 달랐고 음악 또한 달랐기 때문에 어쩌면 비교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그들의 음악관은 뚜렷했고 같은 바로크 시대에 뚜렷이 나타나는 그들의 음악관들로 인해 음악의 아버지, 어머니라는 별칭을 갖게 되었다.
 
독일에서 태어나고 사랑받았던 헨델은 오페라를 맘껏 발휘하기 위해 영국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독일의 왕이었던 조지1세가 독일로 돌아오라고 요청했으나 헨델은 거절했다. 그 일로 조지1세의 미움을 샀는데, 영국의 앤 여왕이 갑자기 사망한 후 조지1세가 영국 왕위를 물려받는 일이 발생했다. 걱정하던 헨델은 1717년 여름, 템즈 강에서 새 국왕의 뱃놀이 연회가 열린다는 것을 알고 '수상 음악'을 작곡한다. 조지1세가 이 음악에 굉장히 만족하여 과거의 헨델에 대한 감정을 버리고, 앤 여왕 이상으로 헨델을 우대했다고 한다.
 
한편, 그의 대표적 음악인 '울게 하소서'는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Rinaldo)'에 나오는 노래이다. 사랑하는 연인 중 남자 리날도는 전쟁터로 가고 여자 알미레나는 인질로 잡혀 헤어진다. 적국의 왕이 알미레나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그를 거절하며 자신의 슬픈 운명을 탄식하는 알미레나의 노래이다.
 
'울게 하소서'는 영화 '파리넬리'에 삽입되어 대중의 인기를 얻은 바 있다. 파리넬리는 그 당시 가장 유명했던 카스트라토(Castrato)의 음역을 가졌던 파리넬리(Farinelli)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나는 처음에 '울게 하소서'를 듣고 아름다운 여성 소프라노의 목소리인 줄 알았다. 파리넬리는 그 당시 남자 테너보다는 높은 음역을 가지고, 여자 소프라노보다 힘 있고 신비로운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었다. 영화 속에서 파리넬리의 목소리는 카운터 테너와 여성 소프라노의 목소리를 합성했을 정도로, 현세에는 파리넬리와 같은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사람은 없다고 한다.
 
간단히나마 바흐와 헨델의 대표적인 곡들을 접하면서 천천히 더 많은 곡들의 내용과 음악을 들어보고 싶다는 느낌을 받았다. 클래식 음악은 음악문화가 가장 활짝 폈을 때 학문으로 잘 정리되었을 뿐, 서구 문화를 좇는 것도 아니며, 귀족들만의 음악도 아니다. 클래식이 어렵다고 그냥 지나칠 것이 아니라  편안하게 감상해보는 것도 좋다. 잘 정리된 책과 함께 감상한다면 보다 더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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