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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통곡의 42년, 숨 죽여 살아온 42년문경춘 편집국장
문경춘  |  mun420133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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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2.24  14: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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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춘/ 본사 편집국장

"살아있어 고맙다 정말 고맙다", "통일되면 꼭 다시 만나자..."
이번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 가장 많은 관심과 눈길을 끌었던 비운의 중인공은 바로 거제출신 박양수(58),양곤(52)씨 형제다.  거제에서 유일하게 이번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 대상에 포함됐던 박양곤(52)씨가 20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꿈에 그리던 형 양수(58)씨를 42년 만에 만났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형이 살아있다는 소문을 듣게 된것은 10여년 전(前) 북한을 탈출한 사람으로 부터 "형이 살아있다"는 꿈같은 얘기를 듣고부터 였다고 한다. 이들 형제를 갈라놓은 것은 지난 1972년 12월 28일 서해상에서 홍어잡이를 하던 쌍끌이 어선 오대양 61,62호가 북한 경비정의 공격을 받고 선원 25명 전원과 함께 황해도 해주항으로 나포(拿捕) 되면서 부터다.

이른바 '오대양호 사건'으로 불리던 안타깝고도 비통한 사건은 끝내 가족들의 가슴에 말못할 고통만을 남긴채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진행형으로 남아있다. 고작 16세의 나이로 매서운 눈보라 휘날리는 서해 바다에서 시린손을 입김으로 불어가며 어려운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고기잡이 배를 탈수밖에 없었던 양수씨는 선원으로도 막내였다고 한다.

이후 거제 장목에 살고있던 가족들은 영영 돌아올 수 없게된 양수씨를 생각하며 하루에도 수백번씩 북녘을 바라다 보며 눈물을 흘려왔을 것이다. 양수씨의 어머니는 아들의 생사조차 모른채 오랜 세월을 한숨과 눈물로 지새우다 80년 후반쯤 눈을 감았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해 어린나이에 어른들도 참아내기 어렵다는 홍어잡이배를 그것도 고향이 아닌 천리길 넘어 서해 바다위에서 추위에 떨다 차디찬 북녘땅에 끌려 갔다는 안타까운 마음에 제대로 눈도 감지 못했을 것이다.

양수씨의 납북 사건은 가족들의 가슴에 이루 형언할 수 없는 큰 충격과 아픔을 안겨줬던게 사실이다.
한(恨)과 눈물로 보낸 그들의 아픔을 그 누구도 대변할 수 없었으며 알지도 못할 것이다. 그런데, 더 가슴치고 통곡(痛哭)해야 했던 일은 아픔을 당한 국민들을 보살피고 어루만져 줘야 할 국가가 가족중 한명이 "북한에 납북됐다"는 이유로 24시간 감시감독을 해 왔었다는 것이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앞두고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도 그 휴유증은 아직도 여전히 남아 있음을 알수 있었다. 기자를 만나는 자체가 두렵고, 또 소문이 나는 것이 겁이 나는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어서 모든 부분을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전국에 방영된 방송과 신문에 박양수씨와 양곤씨 가족의 극적인 만남은 이산의 아픔을 안은채 살아가고 있는 모든 가족들을 대변 하기에 충분했다.

현재 거제에는 양곤씨 가족의 딱한 사정과 같은 고통을 받아온 오대양사건 피해 가족들이 여럿 살고있다. 그동안 말못하고 속으로로만 끙끙 앓으며 차돌 보다도 더 딱딱하게 엉어리진 가슴을 안고 숨죽여 살아온 그들에게 국가가 해준것은 무엇인가?

단지 '이산가족상봉' 이라는 만남의 장(場)만 마련해 준것 외에 아무것도 해 준것이 없다. 차라리 뭔가를 해주기 이전에 "색안경을 끼고 바라다 보지나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 더 간절했는지도 모른다. 죄인의 죄를 가족 친지들에게 까지 함께 묻는 제도로 봉건사회의 왕조국가 에서나 사용해 왔던 이른바 '연좌제(連坐制)'라는 사회통제 수단을 아무 죄없는 납북가족들에게 까지도 적용해 감시감독을 해 왔던게 사실이다.

스스로 대한민국을 부정해 월북한 인사의 가족도 아닌, 그야말로 억울하기 그지없는 납북어민 가족들에게 까지 둘러씌운 무겁고도 힘겨운 멍에는 그동안 북에 강제로 끌려간 당사자를 생각하는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이중삼중으로 고통을 받게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남북문제는 이들 가족들에게 어떤 시련으로 다가올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국가와 사회가 이들에게 안겼던 고통 만큼이나 이제는 더 많은 사랑과 배려를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로 인한 이 시대 최대의 피해자이자 가슴아픈 사연을 안고있는 이들에게 아직도 국가와 사회는 "내몰라라"하며 내팽겨 쳐 놓아서는 안될 것이다.

국민소득 2만달러를 넘어선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지난날 이데올로기로 인해 엄청난 고통과 시련을 안겨줬던 이산가족들을 모든 것을 떠나 따뜻하게 보듬어 줄수 있는 날 비로소 참다운 선진국으로 거듭날 것이다.

"살아있어 고맙다"며 울먹이던 동생 양곤씨의 눈물속에는 오매불망(寤寐不忘) 꿈속에서나 만나볼수 있었던 형인 양수씨를 만났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그동안 주변의 색안경을 낀 감시감독과 억울함도 눈 녹듯 녹아내렸을 것이다.

2박3일간의 짧았던 42년 만의 재회와 감동의 드라마는 또다시 기약없는 생이별과 통곡으로 아쉬운 막을 내렸다. "통일돼서 꼭 다시 만나자"며 양곤씨의 손을 꼭 잡아준 형 양수씨의 눈물섞인 목소리에서 우리는 왜 이들의 아픔을 잊고 있었는지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지금도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이들 형제가 나눴던 얘기가 귓가에 생생히 들려오는 것만 같아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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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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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 2014-02-24 22:20:15

    글보니 눈시울이 뜨거워 지는군요
    분단의 슬픔 빨리 해결되야 할건데
    다시 한번 가족이라는 단어를 되새겨봅니다
    생생한글 고맙습니다신고 | 삭제

    • 거가대교 2014-02-24 19:33:35

      저도 이산가족 상봉 그 장면 보았습니다. 저도 아는 사람입니다. 편집 국장님, 글을 너무 잘썼습니다.
      우리 정부는 뭘 했을까요? 무조건 북에 갔으니 월북자라고 하여 그가족 들을 보호는 못해줄 망정 연좌제라는
      멍에만 씌워놓고... 온갖 말할수 없는 고통만 가한 정부 였습니다. 과연 우리가 미국시민 이라면 북에서도
      그렇게 했을까요? 돈 몇푼 주면 당장 풀어 줬을것 아닙니까?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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