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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豆滿江)변에 있는 노랫말 표지석에는 거제인의 혼(魂)이 담겨 있었다.
문경춘  |  mun420133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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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6.24  09:3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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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타임즈 취재팀' 3박4일간 중국 길림성 도문시(圖們市)에 있는 두만강 정밀 취재
탈북자들의 탈출 경로와 유명 가요 '눈물젖은 두만강'에 얽힌 얘기 추적중 노래표지석에 빠진글자도 발견...
'눈물젖은 두만강' 작곡가는 거제출신 故 이시우 선생

북한의 함경북도 남양시와 중국 길림성 도문시를 갈라놓고 있는 강이 그 유명한 두만강이다.

   
▲ 두만강 건너편에 보이는 북한의 함경북도 남양시 뒷산 전경.
그 옛날 우리 선조들이 일제 치하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매불망(寤寐不忘) 조국 광복을 꿈꾸며 비수를 숨긴채 피 눈물을 흘려 보냈던 곳이기에 우리에겐 결코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故 김정구 선생이 불러 유명해진 '눈물젖은 두만강' 노랫말 처럼 그렇게 낭만적이기 보다는 지난날의 아픔과 설움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두만강 푸른물에 노젖는 뱃사공..."에 나오는 푸른물은 오간데 없고 흙탕물로 변해 있었다.

뱃사공을 대신해 강위에는 돈을 받고 태워주는 '뗏목배'만 흘러가는 물결위에서 독립투사들의 옛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만 같았다.

지난날 독립투사들이 일본군에 쫒기다 두만강 물 한줌으로 허기를 채우며 나라잃은 설움을 달랬던 이곳은 이제 탈북자들의 한과 눈물을 씻어주는 또다른 아픔을 간직한 강으로 변했다.

언젠가 남북통일이 되면 우리는 이곳에서 지나간 아픈 과거를 두만강 흘러가는 물로 깨끗이 씻어 낼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할 수 있었기에 설움은 덜 했다.

특히, 이곳 두만강 강변에는 북한땅이 바로 코 앞에 보이는 곳이기에 감회도 새로웠고 거제타임즈 취재팀이 찾았던 '눈물젖은 두만강'의 노래표지석이 새겨져 있었기에 더욱 관심을 끌었다.

큰 수확이 아닐 수 없었다.

김정구 선생이 불러 국민가요가 될 정도로 유명했던 한서린 노래 '눈물젖은 두만강'은 바로 거제출신 이시우(본명 이만두 1913~1975) 선생이 작곡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물론, 두만강변에 있는 노래 표지석에는 김정구 선생이 불렀던 노래라는 말도 없었고 작사가가 이시우란 이름도 없었다.

하지만, 뚜렷한 한글과 중국어로 표기된 노래 표지석에는 거제에서 태어나 예술인으로 활동했던 한 사나이가 여관에 묵으면서 이름모를 여인으로부터 들었던 애절한 얘기가 그대로 담겨 살아 숨쉬는 듯 했다.

이 표지석을 보는 순간 취재팀은 순간적으로 밀려오는 감동으로 인해 숨이 멎는 듯 했다.

   
▲ 두만강변에 도문시가 설치해 놓은 '눈물젖은 두만강' 노래 표지석
알류미늄 판으로 된 이 표지석은 가로 70cm, 세로 1m40cm 정도의 크기로 제작된 후 대리석위에 설치 돼 있었다.

하지만 안타까운 부분도 있었다.

노랫말 2절 가운데 빠져있는 글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2절의 한 구절인 '추억에 목메인 애달픈 하소연'으로 표기 돼 있어야 할 부분이 '연'이란 글자가 빠진 '하소' 만으로 표기 돼 있었다.

거제출신인 이시우 선생의 혼(魂)이 먼 이국땅 중국에 까지 뻗쳐 있다는 생각에 수정할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으나 당장 어찌 할 수가 없어서 안타까울 뿐이었다.

거제시 거제면 남동리 45번지가 고향인 이시우 선생은 1935년 당시 유랑극단 '예원좌'의 지휘자겸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밤 우리 독립투사들의 근거지였던 간도(용정,도문지역 등) 순회공연을 왔다가 기막힌 사연을 듣게 된다.

어느날 해가 저물어 어느 여관에서 묵어가려는데 옆 방에서 어느 여인의 비통하고 처절한 울음소리가 들려 무슨일로 슬피 우는지 궁금해 사연을 알아보니 그 내용이 너무나 처량했다고 한다.

독립군 활동을 하던 남편을 수소문해 두만강 까지 찾아 온 이 여인은 남편이 일본경찰에 붙잡혀 처형됐다는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 절망에 빠져 통곡한다는 가슴아픈 사연을 여관주인을 통해 듣게 되었다.

하필 그 연인이 찾아 온 그날이 바로 죽은 남편의 생일 이었다고 한다.

이 사연을 그 곳에서 우연히 만난 문학청년 한명천에게 말해주자 그가 즉흥적으로 가사를 썼고 이시우 선생이 곡을 붙였다는 것이다.

이시우 선생은 두만강을 바라보며 나라잃은 설움과 남편 잃은 한 여인의 슬픔을 담아 밤을 세워가며 오선지에 멜로디로 그려 내려갔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노래가 바로 오늘날 국민가요가 될 정도로 널리 알려진 '눈물젖은 두만강'이다.

   
▲ 관광객을 태우고 두만강을 유람할 수 있는 강나루 전경

이같은 사연에 대해서는 북한의 대중잡지 '천리마' 2005년 5월호에 자세히 소개 돼 있다.

거제시는 지난해 2월 이시우 선생이 쓴 '눈물젖은 두만강' 노래비를 거제면 농업개발원에 세웠다.

그는 1928년 거제초등학교(19회)를 졸업했으며 만주 하얼빈상업학교(1932~1936)와 만주국립대학(1936~1941)을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해 와세다대학 전문부에서 법률을 공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생은 가고 없지만 그가 작곡한 노래 '눈물젖은 두만강이 한(限) 많은 우리민족의 아픔을 어떻게 대변해 주었는지 이곳을 방문한 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울러, 이 노래는 먼 이국땅 중국 조선족 자치주에서 한민족이란 이름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동포들의 가슴 깊숙히 스며들어 영원히 씻겨나가지 않는 위안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 거제면 농업개발원에 설치돼 있는 이시우 선생의 '눈물젖은 두만강' 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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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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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만강 2022-10-15 07:49:32

    하소= 하소연신고 | 삭제

    • 노래사랑 2014-06-25 17:45:36

      노랫말 2절 가운데 빠져있는 글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2절의 한 구절인 '추억에 목메인 애달픈 하소연'으로 표기 돼 있어야 할 부분이 '연'이란 글자가 빠진 '하소' 만으로 표기 돼 있었다.

      이표기는 잘못된것같군요
      어디를 찾아봐도 '하소'로나와있습니다.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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