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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년만에 만난 '김치1과 김치5'이경필씨,"YTN방송출연장에서 만나 지하철도 함께타고 하니 쌍둥이 같은 느낌"
박춘광  |  geojetime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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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6.25  10: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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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년전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의 흥남철수가 개시되고 피난민들을 실은 메르디스빅토리호에서 태어난 5명의 어린아기들도 이제 환갑을 넘긴 노령기에 들어섰다.

장승포동물병원의 이경필원장은 이 배에서 5번째로 태어나 '김치5'로 널리 알려진 인물.

   
좌측 김치 1 김대평(가명)씨, 와 김치5 이경필씨 -김치1 김해평씨는 북한에 현재 가족들이 생존해 있어 가명을 사용함
그가 24일 YTN의 요청을 받아 6.25특집방송에 출연하면서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 마치 형제 처럼 쌍둥이 처럼 느꼈다는 김치1을 만난 것이다. 두사람은 너무도 반가워서 방송출연 후 지하철도 함께 타면서 정겨운 지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고 이경필씨가 페이스북에 소박한 심정을 실었다.

"오늘은 6.25전쟁 64주년입니다.  64년전 흥남에서 할머니께서는 부모님에게 10개월 만삭이 된 저를 구하려 흥남철수작전때 자유의 땅인 남으로 가라 하시고 희생당하셨습니다. 돌아가신 할머니, 부모님 감사합니다. 어제 YTN방송에 초대받아 2시 뉴스에 생방송을 20분 동안 진행하고 밤에 거제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쌍둥이나 형제같은 Kimchi1도 만나 같이 방송도 하고 지하철도 타니 정말 반가웠습니다.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저는 이 기막힌 출생의 사연에 '자의반 운명반'으로 죽을때 까지 "평화, 은혜, 나눔"을 실천하려 합니다."라고 말을 이어갔다.

"오늘은 아무렇게나 펑펑 울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가 메러디스 빅토리호에서 기적의 아이(Milacle baby)로 태어나게 해 주신 하나님에게 감사드리며 저의 생일 크리스마스날에는 한껏 웃고 싶습니다. 어제는 방송 때문에 돌보지 못한 나의 사랑하는 동물들아! 미안해! 사랑해! "라면서 6.25를 맞는 남다른 감회를 소개했다
 <아래는 YTN의 방송 인터뷰 기사>

 [뉴스인] 6·25 특집, 한국전쟁 중 피어난 희망 '기적의 김치 5' [김해평·이경필]
[앵커]내일이 6.25전쟁 일어난 지 64년 되는 날입니다. 지금 보신 이 배. 미국 수송선, 이 배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한 배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배입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

   
▲ 메르디스빅토리호/ 이 배는 이미 폐선처리되어버렸다.
원래 정원은 수송선이기 때문에 60명만 탈 수 있게 되고요. 화물을 다 버려도 2000명까지 태울 수 있는 배입니다. 그런데 공산당 치하에서 살 수가 없다면서 몰려든 피란민은 당시에 수만 명이었습니다.

그때 선장과 사무장이 하나님께 운명을 맡기자면서 미국인들이었죠. 군수물자는 다 버리고 이 배에 1만 4000명을 태웠습니다. 12월 23일에 북한의 흥남부두를 떠났고 3일 만인 25일 크리스마스에 거제도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이 배를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다라고 불렀고 전쟁 역사상 가장 인도주의적이고 또 성공적인 작전이라고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1950년생인 김치파이브. 이 아기들, 배 안에서 태어난 아기들도 우리나이로 이제 65세가 됐습니다.

북한의 6.25 남침 64주년 하루 앞두고 오늘 이 가운데 저희가 두 분을 초대했습니다. 김치1 김해평 씨 그리고 김치5 이경필 씨 초대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두 분 먼저 시청자 여러분들께 인사를,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인터뷰] 저부터 할까요. 생명의 기운이 전쟁의 참상을 이겨냈다고 메러디스 빅토리호에서 미군들이 오 마이 갓으로 환영을 해 주며 태어났던 신생아 5명 가운데 제일 먼저 태어난 저 김치 넘버1 김해평입니다.

[앵커]어서 오십시오. 그리고요.

[인터뷰] 저는 김치5 이경필입니다. 빅토리호 도착지인 거제도 장승포에 살고 있고 아침 일어나면 옛날에 태어났던 배가 도착지역이 보이거든요. 지금 거제도에서 옛날 메러디스 빅토리호 도착한 장승포에서 동물병원 수의사를 하고 있습니다.

[앵커] 그 자리에서 계속 살고 계시는군요. 배가 도착한 장승포에서.

[인터뷰]아침에 문 열면 바다가 보입니다.

[앵커]수의사를 하고 계시고요. 선생님의 지금 무역업을 하고 계시고.

[인터뷰]철강제품 수출입을 하고 있습니다.

[앵커] 김치1, 김치5 태어난 순서대로 된 거군요. 두 분은 계속 연락을 하고 지내셨습니까?

[인터뷰] 2년 전에 알게 됐고 한 3년 전 내지 4년 전에 거제도에 흥남철수기념작전 추모사업에서 김백일 장군 동상제막식을 한 적이 있어요.그때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아직 살아계시는 지금 사무장님하고 3등 항해사로 들었습니다. 그분들이 한국에 오셔서 그때 돌아가시는 마지막 날 잠실 롯데호텔에서 저녁 때 직접 만나서 그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를 좀 하고.그때 제가 김치 넘버1이라는 걸 처음 알게됐습니다.

   
▲ 빅토리호 선상의 피난민들 모습
[앵커]그때 처음 알게 됐습니까? 그 배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그전에도 알고 계셨고요?

[인터뷰]부모님으로 부터는 마지막 배에 태어났고 선장실에서 태어났다고 했지만 직접 살아 계신 선원들로부터 네가 그때, 저희 부모님들은 선장실에서 해산을 하셨다고 하셨는데 들어보니까 선장실 바로 옆에 의무부속실이 있더라고요. 거기서 제일 먼저 제가 태어났다고 들었습니다.

[앵커]그리고 김치5께서는.

[인터뷰]저는 어릴 때 큰 배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때 배 이름도 몰랐고요.보통 사람들이 와서 그러는데 배놈, 배놈 그러는데 저도 어릴 때 피난민 소리도 듣기 싫었고 커가면서 그때 인터뷰하면서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얘기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보니까 그 배 맞았고 우리 선배님들이 메러디스 빅토리호다. 뭔지는 잘 모르겠고 빅토리호다.

네가 거기서 태어났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물어보니까 옛날에 배는 영어로 써놓지 않았습니까? 배 이름은 모르겠더라고요. 큰 배다, 아주 큰 배다. 큰 배가 싣고 왔다. 그것만 가르쳐 주시더라고요. 그런데 다큐멘터리 촬영하면서 인터뷰하는 과정에 선배되는 사람들이 그게 메러디스 빅토리호다.

그래서 그 배에서 태어난 것을 알았고. 김치파이브는 배가 도착해서 하선할 때 태어났기 때문 김치5다. 그 정도의 김치파이브지 미국사람들이니까 김치파이브다, 그건 아닌 것 같고요. 그건 아닌 것 같고요. 김치1은 복을 받았고 의무실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먹을 것도 받았는데 저 같은 경우는 하선 직전에 태어났기 때문에 인의 장막. 쉽게 얘기하면 인의 장막을 뚫고 출산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다음에 탯줄을 자르는 것도 제일 좋은 무기 하나, 이빨. 그렇게 빨리 해서 항구를 들어왔다고 하더라고요.

   
▲ 필사의; 탈출현장이었던 흥남철수작전
[앵커]지금이니까 우리가 웃으면서 얘기를 하지만 그당시에는 수만 명이 몰려서 서로 배를 타려고 하고 공산치하에서는 살 수 없고. 그래서 부모가 자식을 버리는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고 합니다. 거기에서 태어나신 분들, 복 받으신 분들이었지 않습니까. 선생님께서는 부모님께서 거기서 태어났다라고 하시면서 또 무슨 얘기들을 해 주시던가요?

[인터뷰]평소에 그런 말씀을 잘 안 하세요. 공영방송을 통해 이야기를 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마는 피난 내려오실 때 워낙 만삭이 되셔서 원래 저희 어머니는 배를 안 타시려고 하셨나 봅니다. 금방 해산을 해야 될 입장이니까.

그런데 주위에 국군 여러 분들이 도움을 주셔서 잠깐 2, 3일 동안에 남쪽에 갔다오면 다시 올라오신다 그러니까 그 바람에 배를 타셨는데 그때 저희 부모님들은 주위의 부축을 받으셔서 편안하게 승선을 하셨는데 그 배로 올라가는 그 과정에 그물 같은 걸 쳐놨는데 그 흥남부두에 10만이 넘는 사람들이 그 배를 못 타면 완전히 생과 사의 갈림길에 있으니까 올라가다가 떨어져서 돌아가신 분들은 많고 진짜 문자 그대로 아비규환의 상황이었다는 그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뱃속에서도 3, 4000명이 타는 배인데 1만 4000명이 타니까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악취가 진동을 하고 그렇게 해서 막 정말 열악한, 아주 오로지 살아야 되겠다, 탈출해야 되겠다, 그 일념 하나지 나머지는 말 할 수 없는.

[앵커]선생님께서는 부모님께 어떤 말씀들으셨습니까?

[인터뷰]저는 할머니가 북한에 살아 계셨거든요. 할머니가 피란 가라 있으면 죽을 거라. 그래서 그때 엄마가 만삭의 몸이니까 할머니가 권유를 안 하셨으면 배에 승선을 안 하셨을 겁니다. 그런데 할머니 말씀은 집은 내가 지키고 있으니까 늦어도 한 보름이면 오지 않겠느냐. 여기 있으면 북한군 들어오면 죽을 거다. 피란가라 그래서 피란 오셨다고 그러더라고요.

[앵커]그리고 또 무슨 말씀하시던가요?

[인터뷰]출산하고 피란 못 온 사람들 한 10만 명 정도를 중공군이 들어가서 학살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거기 계셨으면 아마 지금처럼 생존해 있지 않고 죽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앵커]아까 미국선원들, 그때 살아 있었던 미국 선원들. 그때 제가 듣기로는 선장, 그때의 미국인 선장은 나중에 귀국해서 수도사가 됐다고 들었고요. 사무장은 변호사가 됐다고 하던데. 그때 그 사무장도 만나시고 1등 항해사 만나시고 하셨다고요?

[인터뷰] 사무장 되시는 러니 씨가 거제도 김백일 장군 동상 제막식 때.

[앵커] 김백일 장군이 그러니까 흥남철수작전 하도록 미군을 설득했던 장군이죠?

[인터뷰]그때 우리나라 1군단장을 역임하셨고 그러고 미국에서는 10군단장 알몬드 소장하고 포니 대령을 적극적으로 설득을 했고 김백일 장군하고 현봉학 교수라는 분이 알몬드 소장을 설득시켜서 우리를 피란하는데 도움을 주셨던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앵커]저분들이 선원이십니까?

[인터뷰]저쪽에 계신 맨왼쪽에 계신 분이 러니 씨입니다.사무장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쪽에 나머지 두 분이 한 분은 3등항해사로 들었고요. 전문가가 아니라서.

[인터뷰]그건 제가 말씀드릴게요. 제일 키가 작은 분은 벨 스미스 기관사고요.제일 오른쪽이요. 그다음에 오른쪽 두 번째는 벨리 스미스, 조타수. 우리나라로 치면 3등 항해사.

[앵커]그때 저분들이 어쨌든 의무실로 데려가서 거기서 아이를 낳게 하셨고 태어난 것도 어쩌면 봤을지도 모르겠고. 그리고 그때 그분들을 60년 만에 만나서 무슨 얘기 나누셨나요?

[인터뷰]저같은 경우는 우리나라로 오신다고 해서 만났는데. 그래서 감사패 드리고 인사드리고 그때 선물하고 그리고 그때 피란민들 선물을 많이 하더라고요. 그래서 일단은 서로 살아생전에 만나뵀으니까 고맙고요, 저한테는 생명의 은인이거든요. 그래서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 1950년 12월 24일 유엔군이 흥남 철수작전을 완료한 뒤 부두를 폭파시키고 있다.
[앵커]그랬더니 뭐라던가요?

[인터뷰]자기들이 한 게 별로 없고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한 것 아니냐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앵커]선생님, 무슨 말씀 나누셨습니까?

[인터뷰]갑자기 저분들을 만나게 됐어요. 그날 제막식, 거제도 갔다가 내려오셔서 내일이면 미국으로 돌아가시는데 잠실 롯데호텔에 계셨는데 그날 집안에 혼사가 있었어요. 그래서 가족석에 앉았는데 우리 친척 분 한 분이 거제도를 다녀오신 거예요. 갔다 왔다가 이경필 원장이 김치 넘버5가 나타나서 다 활동도 하는데 나머지 김치 4명 아이들, 생사가 불분명하다, 어디서 살고 있는지. 살아계신 선원들이 궁금해하시고 그래서 제가 이야기를 하시다가 제가 그 김치넘버1이라고. 김치넘버1이라는 거 4, 5년 전에 어렴풋이 알았습니다.

선장님이 퇴역을 하시고, 은퇴를 하시고 말씀하셨지만 베네딕토 수녀원에서 수사로 평생을 봉직했는데 제가 송파의 모 성당을 나가는데 우리 원장 수녀님이 베네딕토 수녀원에서 근무하다 올라온 수녀님이 특강을 하셨는데 6.25 때 선장 이야기를 많이 하신 거예요. 그래서 선장이 항상 이 아이들이 살았냐고 궁금하다고. 특강을 하시는데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 딱 제 이야기를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제가 어렴풋이 알게 됐다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날 4, 5년 후에 친척 결혼식을, 거제도 갔다, 결혼식을 했는데 그자리에서 바로 원동혁 로터리 총재하시는 분이 만찬을 베풀고 있었어요. 그분한테 전화를 해서 너 결혼식 참석하지 말고 잊지 말고 빨리 가라. 그래서 그분하고 가서 처음 만난 거예요. 그래서 제가 또 젊어서는 모 종합상사의 LA지점에서 한 7년간 근무를 했습니다. 그래서 잘 하지는 못하지만 저분들하고 영어로 대화가 되고 그러면서 저한테 주민등록증을 보자.

부모님으로부터 들은건 뭐냐.너 언제 태어나고 쭉 물어보시더라고요. 주민등록 보여주고 다 했더니 저 러니 사무장하고 3등 항해사가 맞아, 너희 부모님이 선장실에서 낳았다고 하는, 의무실에서 제일 먼저 태어난 넘버1이야, 오늘부터 네가 김치넘버원이야. 저분들이 그때 말씀해 주셨고 그때 처음 김치 넘버5를 알았습니다.

[앵커]선친께서는 저분들잊지 말아라, 은인이다라고 말씀하셨다면서요, 생전에.

[인터뷰]그때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세가지 말씀하시더라고요.피란 와서 전쟁하지 말자.평화. 그다음에 배나올 때 도와준 사람들 은혜. 거제도 피란 와서, 옛날 거제도는 인심 참 좋았거든요. 돈 주고 한 게 아니고 고기 잡아오면 나누는 문화가 있었다고요. 그래서 부친께서 평화, 은혜, 나눔을 실천해라. 그런 말씀을 했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그 세 가지 지켜 나갈 것입니다.

[앵커]본인들이 그런 역사의 증인이고 상징이고 그런 배에서 태어난 그런 주인공이라는 걸 아셨을 때 그때 어떤 생각하고 어떤 느낌을 느끼셨습니까?

[인터뷰]저는 김치넘버1이라고 처음 들었을 때 몸에 전율을 느꼈어요. 제가 보통 아이가 아니고 그냥 부모님으로부터 선장실에서 마지막으로 태어났다고 하는데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는 가장 전쟁사에서 가장 많은 피란민을 구출한 기네스북에서 그것도 생과 사의 갈림길에 있는 거기에서 태어났다고 그러니까 첫째는 제 삶이 굉장히 소중한 것 같고 또 하나는 제가 우리 6.25 전쟁의 산증인으로서 제가 젊은 세대나 이런 데제가 느꼈고 또 부모님들이 겪었던 것을 많이 좀 알려져야 되겠다 하는 많은 느낌을 들었어요.

[앵커]어떤 말씀을 후세들에게 내일이 6.25 64주년인데 어떤 말씀을 하시고 싶으세요?

[인터뷰]지금 6.25가 어떻게 발발했는지 우리 젊은이들 2세들이 잘 모르고 있어요. 6.25 자체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역사 교육을 제대로 좀 가르쳐줬으면 좋겠고 6.25을 모르니까 안보의식이나 이런 개념이 없죠. 6.25는 지금 현재 전쟁이 끝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전쟁이 지금 잠깐 멈추고 있는 정전상태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언제 이게 전쟁이 다시 발발할지 모르고 또 서로 남북간에 군사긴장이 아주 팽배하게 있는 상태에서는 전쟁의 상처를 어떤 것이다, 그다음에 전쟁은 얼마나 무서운 것이다.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이다,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이다를 알아야 될 텐데 아이들이 모르고 있어서 이걸 잘 좀 가르쳐줘야 되고. 제가 아는 것은 주위에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앵커] 아마 젊은 세대들, 저도 전후세대입니다마는 지금 전쟁은 지나갔고 또 지금 새로운 시대를 살고 있는데 6.25 전쟁 옛일을 기억해야 될 이유가 무엇이냐. 그것을 꼭 왜 알아야 되느냐라고 생각하는 후세들도 있을 거란 말이에요. 선생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겠어요?

[인터뷰]저는 요새 속담에 과거를 기억하는 자는 한쪽 눈을 잃고 과거 전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양쪽 눈을 다 잃는다, 그런 속담이 있습니다. 우리가 과거를, 지나 온 과거를 알아야 반성도 하고 다음 전쟁 안 나도록 대비를 할 텐데지금 우리 자라는 어린 학생들 6.25 잘모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왜 전쟁이 일어났는지 그다음에 평화가 왜 소중한지 국가관이라든지 안보관이 많이 결여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이런 것을 홍보를 해서 옛날 미국에서 6.25를 잊혀진 전쟁이다라고 표현하더군요. 그건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나라는 지금 좀 보강이 됐는데 그때 참전해서 돌아가신 분들. 민간 차원에서 가서 인사를 해야 되고 그런 부분이 있는데. 그런 것은 우리나라에서 하는 게 미흡한것 같더라고요.

아이들에게 전쟁이 뭐다, 평화가 뭐고 자유가 뭐다. 그래서 국가관이 이래서 전쟁을 안 해야 된다, 전쟁하면 다 죽는다. 어린 아이들에게 그런 걸 심어줘야 되는데 아직 국가에서 하는 건 미흡한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이걸 구성하고 있거든요. 여기 장진호 전투부터 해서.

[앵커]장승포 호국평화공원사업. 장승포가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들어온 그 항구고 지금 선생님이 거기서 생업을 하고 계신 곳입니다.

[인터뷰]지금 배 문제는 국가에서 개입해서 지금 노르웨이에 1척이 있고 미국에 5척이 있더라고요 똑같은 배가...

[앵커]자매선들이 있다면서요. 고철로 중국에서.

[인터뷰]그래서 5척이 남아있는데 한 배를 갖고 와서 전시회를 하면 우리가 말로 하는 것보다는 학생들한테 안보관이나 국가관을 심어주는데 득이 안 되겠느냐 그렇게 생각합니다.

[앵커]김치 2, 3, 4 그분들은 아직 못 찾고 있는 거죠.

[인터뷰]전혀 못 찾았다고 얘기를 들었어요.

[앵커]아마 본인들이 모르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인터뷰]제가 느끼기에는 반반인데 저도 사실은 여기 나오기가 상당히 좀 거북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이북에 제 형님하고 누님을 아버님, 어머님이 내려오실 때 다섯살 누님이 있었고 9살 형님이 계셨어요. 그러다 보니까 자꾸만 제가 좀 나오기가 뭐했었는데. 이산상봉, 가족이죠.

[앵커]그래서 선생님 지금 성함도 가명으로 썼습니다. 양해를 해 주십시오.

[인터뷰]그래서 지금 김치 넘버5께서 말씀하셨다시피 역사 교육을 제대로 시켜서 젊은 아이들한테 안보 교육을 확실하게 심어줬으면 좋겠어요. 지금 6.25가 전쟁이 안 일어난다고 해서 전쟁이 끝난줄로알고 있는데 6.25는 아까 말씀하신 대로 정전상태 아닙니까? 그러니까 빨리 남북간 평화체제가 정착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앵커]알겠습니다. 두 분의 길고 정말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얘기를 듣기에는 시간이 짧았지만 두 분이 남기신 특히 저희 후배들한테 남기신 메시지는 꼭 기억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어려운 걸음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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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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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양득 2014-06-25 18:22:35

    김치파이브님 YTN방송에서 장승포평화공원일까지 보시는 거 감동입니다. 국가가 개입해서 그 당시의
    자매배를 거제도에 전시하여 아이들에게 전쟁과 안보의 산교육장으로 활용하자는데 대찬성입니다.신고 | 삭제

    • 박진욱 2014-06-25 15:34:20

      원장님~ 축하드립니다. 오늘이 6월25일이라 더 의미가 있을것 같습니다. 원장님 늘 건강하십시요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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