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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수필:윤석희]스타리 모스트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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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8.07  15: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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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리 모스트가 되어 
                                                                                                                윤 석 희
   
 
역이라는데 휑하다. 바람까지 차다. 황량한 벌판에 공연히 온 건가 후회막급이다. 전쟁에 휩쓸려간 문명의 흔적이 어디쯤 있기는 하려나. 서성대는 나에게 난데없이 우산을 받혀준다. 늙은 여인이다. 초췌한 모습이나 믿을 만해 보여 따라 나선다. 겨울비 맞으며 호객 행위라니 그 나이가 안쓰럽다. 허나 자존감은 결코 버릴 것 같지 않은 기품 같은 게 엿보인다. 바지런한 새가 먹이를 구하는구나, 속으로 칭찬한다.

여행자 숙소가 아니다. 남의 집 한 가운데를 침입한 송구함에 안절부절 못한다. 내 잠자리까지 가는데는 부엌을 지나야 하고 북적거리는 공동화장실에다 집안 공기조차 숨 막히게 한다. 좁아터진 방을 딸의 네 식구와 남동생이 차지하고, 남은 하나를 여행자에게 내어주고 생계를 꾸리는 듯했다.

아직 전쟁의 후유증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처가 언뜻언뜻 내비쳤다. 하필이면 이런 집이냐며 불거지는 불만을, 이들에게 몇 끼니 적선한다는 오만으로 겨우 누르고 있었다. 요기나 하라고 부른다. 손님에게 먼저 먹을 것으로 인사하는 것이 이슬람 관습이라나. 예상치 않은 맛깔스런 음식과 깍듯한 환대에 마음이 풀려간다. 소박한 이슬람 가정에 초대받은 듯 뿌듯하다.

주방 한가운데에 잘 생긴 청년이 사진으로 박제되어 있다. 성글성글한 눈매에 청춘이 눈부시다. 보스니아 내전 때 잃은 아들이라며 여인이 목이 멘다. 중상으로 몇 달을 고통 받다 갔단다. 차마 떠나보내지 못하고 곁을 지키며 웅크리고 산 세월 이십 년. 질긴 어미다.

불구가 된 사위와 동생. 남은 식구들의 생존을 위해 거리를 헤매며 여행객을 끌어다 살아간다. 억척이다. 아니 그뿐이 아니다. 투숙객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자 이 일을 시작했다 고백한다. 전쟁으로 자식을 잃는 일은 다신 없어야 하고, 이슬람과 기독교의 종교 분란도 그만 끝내야 한다며 눈물로 호소한다. 작은 소리나 세상에 대고 고함치고 있다. 당차고 용감한 어미다.

포탄과 총탄 총총 박혀 건물은 박살나고 폭격 맞은 고목의 주검이 발길을 막는다. 음산한 폐허가 거리에 즐비하다. 피의 역사를 증언하며 보수나 재건을 거부한 채 단호한 침묵으로 항거한다. 전장에서 생존자라도 찾아낼 듯 구석구석 돌아본다. 적막뿐이다. 산화된 생명의 불꽃들이 잿빛 구름이 되었는지 하늘까지 우중충하다. 죽어간 혼령들의 악귀인 듯 증오의 냄새가 진동한다.

지금도 여전히 네레트바강을 사이에 두고 기독교와 이슬람 구역으로 갈려 있다. 원수처럼 마주보며 사는 이웃들의 한 맺힌 사연들이 읽혀진다. 비로소 그 여인의 상처가 슬픔으로 전해온다. 스타리 모스트로 왕래하고 있지만 엉켜버린 불신의 타래를 풀기엔 더 많은 세월이 필요한가 보다.

시어머니가 떠올랐다. 지주였기에 고향을 떠나야 했고, 피난살이를 겪었다. 밥사발대신 조개껍질에 밥을 먹었단다. 하늘에 대고 소리치곤 했다지 않나. 오랜 중병에 시달리는 남편 어서 데려가 달라고. 그 말에 어렵던 분이 얼마나 살갑게 느껴지던지. 핏줄을 지키기 위해 삼팔선을 넘었고 자식들만 바라보며 살았다는.

헤르체고비나 모스타르 여인의 삶에 어머니가 겹쳐진다. 짐작만 할 뿐이었지, 전란을 겪지 않은 내가 그곳을 피해 갔더라면 전쟁의 참상을 어찌 헤아릴 수 있었겠는가. 회오리가 쓸고 간 폐허 위에 눈물과 땀으로 생을 일구는 여인들의 처절함을. 열망이 다 빠져나간 자리. 남은 건 허망한 세월뿐이라고 엄살하며 나선 길이었다. 내 아픔 따윈 감정의 사치라고 자책하며 그 곳을 떴다.

인생도 여정이 아니더냐. 내 여정의 중심에 이렇듯 여행이 있다. 여행은 몸으로 체득하는 현장 학습이다. 길 위에 나섰음으로 스타리 모스트가 되어 세상과 소통한다. 숫한 사람들을 만나 각기 다른 삶속에서 내 삶을 반추한다. 사고의 확장과 깊이를 선물 받고 인간을 이해하게 된다. 때론 오묘한 자연 속에 지친 마음도 길 위에 내려놓는다. 방황하는 나를 제자리로 돌리고, 자유와 고독을 누리며 삶의 실체를 깨닫게도 한다.
 
실로 여행은 나에게 주어진 기회이며 축복이다. 길에서 맞닥뜨린 삶의 정수는 언제나 핏빛 진실이지 않았나. 진실 속에서 살아 갈 용기와 힘을 얻곤 한다. 그리곤 보잘 것 없는 내 삶을 그리워하며 다시 돌아올 수 있다. Don’t forget Mostar. Don’t forget 93 을 거듭거듭 외치며 손을 흔들던 여인을 가슴에 품고.

*스타리 모스트; 모스타르 기독교와 이슬람 양 진영을 잇는 네레트바강 위에 세워진 다리.
*모스타르; 1993년 보스니아 내전 때 인종청소가 자행됐던 지역


▓약력▓
*계룡수필문학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필집 ; 《바람이어라》, 《찌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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