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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박사 양형재]'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11-'슈베르트 그의 짧은 인생''클래식 음악과의 만남'-환경부 한강물환경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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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8.17  21:5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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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학위까지 받은 환경 공학도가 아름다운 선율을 음미하게 하는 클래식 음악의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여러분은 어떻겠습니까? 유유히 흐르는 강물 만큼이나 잔잔하고, 아름답게 흐르던 강물이 홍수처럼 격렬하게 부딛치는 클래식 음악이야기를 통해 우리들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게 할 글을 환경부 한강물환경연구소장 양형재박사가 본사에 보내주기로 약속했다. <편집자>

물 박사 양형재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11--'슈베르트 그의 짧은 인생'

   
 
"가곡의 왕" 이라 불리는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 1. 31∼1828. 11. 19)는 빈에서 태어나 31세의 나이로 빈에서 가난과 고독 속에서 보내던 짧은 생애를 마쳤지만 600여 예술가곡, 교향곡, 피아노소나타, 실내악곡 같은 수많은 아름다운 곡들을 남기고 갔다. 들에 피어난 한 송이의 들국화와 같은 그의 일생이었다.

그는 19세기 독일 낭만파 음악의 창시자 중의 한사람으로, 그는 명성을 얻으려고도 보답을 바라지도 않았던 오로지 음악에만 몰두했던 음악가로 평가하고 싶다. 슈베르트는 그야말로 자연의 냉엄한 운명에 쓸쓸히 지는 꽃처럼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향기는 지금도 우리들의 마음에 깊숙이 남아있음을 느낀다.

슈베르트는 빈 교외의 리히텐달에서 초등학교 교장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하지만 음악을 좋아했다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음악의 길에 들어섰다. 어릴 때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였고 11살 때, 빈 궁정 예배당의 소년합창단원이 되어 본격적인 음악생활에 들어가게 되었다. 작곡을 13살에 시작해서 15살에 최초의 서곡을 작곡하고 16살에는 교향곡 2번과 3번 그리고 가곡「실 잣는 그레첸, 마왕, 들장미」등을 작곡했던 것으로 천재성을 보여준 셈이다.

존경했던 베토벤에게서 인정을 받은 것은 베토벤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이었다. 정확한 자료인지는 모르겠으나 베토벤도 슈베르트를 일찍 만나지 못했던 것에 한탄했다고 하니 슈베르트의 음악적 재능을 알 수 있겠다. 여러분 모두 학교에서 그의 가곡 두세 개는 배웠을 것 같은데,  초등학교 때 부를 수 있었던 그의 가곡은 "들장미, 보리수, 송어, 아베마리아"정도가 생각나지만 그의 가곡은 우리 가까이에 수없이 많다. 그가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가곡의 예술적 가치를 높여 이후의 낭만파 작곡가들이 선호하는 장르로 끌어올린 것은 사실이다. 

3개의 연가곡(긴 이야기를 소재로 단락을 지어 내용에 따라 만든 가곡)집을 남겼는데, 20곡이 들어있는「아름다운 물방앗간 집 아가씨」, 24곡이 수록된「겨울 나그네(여기 5번째 곡이 보리수)」, 14곡이 수록된「백조의 노래」 그리고 「송어, 들장미, 마왕, 방랑자, 음악에 부쳐, 아베마리아」등과 같은 주옥같은 가곡들이 있다.

당시 슈베르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를 돕기 위한 작은 음악회인 <Schubertiade, 슈베르티아데>가 있었다. 요즘 같으면 <슈사모>라고 하지 않았을까? 슈베르트 주변의 작가, 성악가, 화가, 시인 들이 만든 모임으로 당시 유명한 바리톤가수 포글도 참가하고 있었다. 포글은 슈베르트가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때 많은 슈베르트의 가곡을 소개하여 슈베르트의 뛰어난 가곡들을 알려주었던 가수이다.

   
 


슈베르트는 가곡<송어>를 작곡한 해에 포글이 <슈베르티아데>에서 초연을 하기도 했는데, 송어가 뛰어노는 광경을 그린 유쾌한 가곡으로 가사는 "거울같이 맑은 시내에 송어가 화살처럼 헤엄치고 노는데 낚시꾼이 낚시를 드리웠지만 물이 너무 맑아서 안 잡히니까 물을 흐려놓고 송어를 잡는다" 뭐 이런 내용이다. 다음에 우리나라 가사로 된 악보를 어디에선가 찾아 두었으니 자세히 봐 주시면 좋겠다.

또 슈베르트의 곡 중에 피아노 5중주 <송어>가 있는데, 제4악장이 가곡 <송어>의 멜로디를 주제로 한 변주곡이기 때문이었다. 슈베르트가 22세이던 1819년에 포글과 오스트리아 서북부 지역으로 여행할 때, 그 지역에서 머무는 동안 광산업자인 Sylvester Paumgartner(시르베스터 파움가르트너)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관악기와 첼로를 연주할 수 있었던 '파움가르트너'는 슈베르트에게 자기가 연주할 수 있도록 널리 알려진 가곡 <송어>를 주제로 피아노 5중주곡을 작곡해 달라고 의뢰하였다. 이렇게 하여 슈베르트는 아름답고 경쾌한 또 다른 <송어>를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이 아름답고 경쾌한 피아노오중주는 여러분도 많이 들어본 곡이리라 생각한다.

   
 

베르트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한마디로 "가엾다"라고 표현하게 된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 소나타>를 들어보자. 아르페지오네는 소형의 첼로로서 바흐 시대의 비올라 다 감바(Viola da gamba)와 흡사한 모양과 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없어진 악기이기 때문에 주로 첼로로 연주한다.

슈베르트는 가난한데다 건강하지도 못하였는데, 27세 때 슈베르트는 매독으로 인한 합병증이 시작된 시기이며 이로 인한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질환에도 시달렸다. 1823년에 오랫동안의 병원에서의 치료를 받아 머리카락도 빠졌고 두통도 심하였다는 그 시기 그의 일기에는 "나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 또다시 눈이 떠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아침이 되면 전날의 슬픔만이 나에게 엄습해 온다. 나의 작품은 음악에 대한 나의 이해와 슬픔을 표현한 것이다

슬픔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세계를 가장 즐겁게 하리라고 생각한다. 슬픔은 이해를 돕게 하고 정신을 강하게 한다." 그의 일기에서 그는 죽음이 찾아오는 절망으로 잠이 들면 아침이 눈이 떠지지 않기를 바랐던 슬픔의 연속이었다.

그 속에서 정신을 차리고 <아르페지오 소나타>를 작곡했다. 그의 모든 슬픔을 곡으로 써내려간 것이다. 아르페지오는 지금은 없는 악기니 첼로로 연주하는 감성덩어리의 이곡을 감상해 보시기를 조건 없이 추천한다.

필자는 이러한 그의 슬픔을 읽고 로스트포비치(Mstislav Rostropovich) 연주(DECCA녹음)의 음반으로 들으면서 한없는 슬픔에 잠기면서 이내 눈을 촉촉이 적셨다. 여러분도 그의 슬픔에 대해 들었으니 이 소나타를 듣는다면,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첼로소나타라고 하며 눈물을 흘리지 않을까 예측해 본다. 이 곡을 감상하시게 되면  여러분의 느낌을 제게 알려주시기를 바란다. 그의 작품 세계는 슬픔이라는 단오를 제외한다면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인데, 몇몇 곡을 제외다면 모두에 그의 특유의 애수가 어려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슈베르트의 마지막 작품은, 죽은 해에 작곡한 14곡을 수록한 <백조의 노래>이다. 이 제목은 "백조는 죽기 직전에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운다"는 전설을 바탕으로 출판사가 붙인 제목이다. 하지만 이것을 계기로 작곡가뿐만 아니라 예술가들의 마지막 작품을 "백조의 노래"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슈베르트의 마왕은 슈베르트가 작곡한 것이 아니다?
슈베르트가 음악활동을 하던 시기에도 빈에서 그를 음악가라는 것을 알아주는 사람은 친구 몇 명밖에 없었다고 하며, 평생 음악회를 한번 밖에 열지 못했다. 그는 생전에는 작곡가로서 인정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작품을 써도 별다른 수입도 없었지만 죽고 나서 위대한 음악가로 인정받은 작곡가이다. 

베토벤보다 27살이 어린 그는 베토벤의 장례식 때 횃불을 들었던 한사람이었는데, 베토벤 사후 1년 9개월 만에 안타깝게도 3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했고 그 짧은 생애마저도 불치의 병 매독으로 고생하며 결혼도 하지 못했으며, 가난과 고독 속에서 보내야 했던 지극히도 불행한 천재였다. 슈베르트의 작품은 D로 표시하는데, 오토 에리히 도이츠란 학자가 연대순의 작품번호를 붙였기 때문에 도이츠번호 라고도 한다.

슈베르트의 음악은 자연스러우며 무겁거나 장중하지 않고, 그의 아름다운 멜로디는 모차르트와 비교할 만하다. 그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베토벤과의 느낌과 모차르트의 느낌도 받을 수 있다. 그의 음악은 질서 정연한 형식미보다는 자유로움이 나타나는 낭만주의 음악에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슈베르트가 죽기 1년 전인 1827년 2월부터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를 쓰기 시작하여 전반 12곡을 작곡하고 가을부터 이듬해 가을 죽기 3일전까지 후반 12곡을 병상에서 마지막 작곡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는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겨울 나그네>를 작곡하고 겨울이 시작되는 때에 겨울 나그네처럼 어려웠던 이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그가 고생하고 죽음까지 갔던 사인은, 위대한 음악가에게 이렇게 말하는 자체부터 꺼려지긴 하지만, 매독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일정한 거주지도 없이 동료들과 보헤미안적인 생활을 거듭하여 생활은 자유로웠지만 항상 가난했다. 여러 여자들과 관계를 맺기도 하고 동성애를 즐기기도 하는 방탕한 생활을 하였던 것이다.

1828년 3월 슈베르트는 자신의 작품으로만 연주하는 최초의 공개 연주회를 열 수 있는 행운을 맞이했다. 그러나 그 행운도 잠시 그해 11월 21일 31살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는 가족도 없었고 재산 또한 한 푼도 없었다.  슈베르트 사후에 그의 명곡들은 세상에서 불러지기 시작했다. 그의 유해는 유언에 따라 전년에 작고한 존경했던 베토벤이 묻혀있는 벨링크묘지 가까이 묻혔으며, 1888년 베토벤과 함께 빈의 지멜링크 중앙묘지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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