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형제가 함께 모였다. 한가위를 지내기 위해 본가에 온 것이다. 몇 마디 주고받는 그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뭔가 챙기느라 분주히 시골집 토방을, 헛간을 돌아다닌다. 곧 어떤 일이 일어날지 다 아는 사실이다. 이젠 말려도 소용없는 일이라 다들 포기해버린다. 어디론가 사라졌다 때가 되면 도깨비같이 불쑥불쑥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한 뱃속에서 나고 피를 나눈 형제지만 달라도 어쩜 이리도 다를까. 예상대로 작은 아주버님이 가장 먼저 대문을 나선다. 작은 아주버님 얘기부터 해야겠다. 아무리 급한 성격을 가졌다 해도 작은 아주버님을 능가하는 사람은 주위에 그다지 없지 싶다. 급할수록 말이 빨라진다. 한 마디를 아니, 열 마디를 쉬지 않고 단숨에 해버린다. 이럴 땐 다 들어주어야 한다. 끼어들 틈이 없기 때문이다. 어쩔 땐 말을 더듬기까지 해서 듣는 내가 민망하다. 지금은 적응이 되어서 아무렇지도 않지만 처음엔 내심 걱정이었다. 실수하지는 않을까.
말하는 것에 있어선 아들 녀석이 남편과 나를 닮지 않았다. 볼수록 작은 아주버님을 닮았다. 급할 때면 말을 더듬는 것까지 닮아서 아주버님이 우리 아들에게 유독 정을 주시는 걸까.
작은 아주버님은 커피를 직접 끓여 드신다. 느긋한 형님의 성정을 잘 알기 때문이다. 십 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 커피를 기다리다가 화가 머리끝까지 뻗쳐 한바탕 분란을 일으키고 난 후 끓여준다 해도 아예 사절이다.
형님과의 마찰은 대개가 아주버님의 ‘빨리 빨리’에서 온다. 생각하면 곧바로 해야 하는 성정이니 말 꺼내기가 무섭다. 부딪치지 않으려면 그 순간은 입을 다물고 들어주어야 한다. 애가 타는 형님은 간혹 벽보고 때 늦은 말대꾸를 한다. 그게 푸는 유일한 방법이며 싸움을 피하는 길이었을 것이다.
두 번째로 큰아주버님이 대문을 나선다. 급할 것도 느릴 것도 없다. 야무지게 챙겨서 한가한 걸음으로 갈 길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다. 큰아주버님은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고 적당해서 딱히 들춰낼 얘깃거리가 없다. 매사에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지우치지 않으니 식구들 입에 오르내릴 일이 그다지 많지 않다.
드디어 막내인 남편이 나선다.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청해서 다 마시고, 신발 끈까지 고쳐 매는 여유를 부린다. 하긴 너무 한가해서 속이 끓는다. 오래 전 일이다. 친정에 갔는데, 그날따라 많은 전열기 사용으로 과부하가 걸려 작은 화재가 일어났다.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고 황급히 피하느라 정신없는데 이 층에서 잠자고 있는 딸아이가 떠올랐다. 황망히 한 걸음에 계단을 오르는 중 남편과 마주쳤다. 혼자 몸으로 계단을 어슬렁어슬렁 내려오는 게 아닌가. 득달하는 내게, 상황을 알아보고 아이를 깨워야 할지, 두어야 할지 판단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런 남편이니 내 속이 부글부글 끓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해거름이 마당을 슬며시 잠식해 오는데, 작은 아주버님이 나타난다. 삼십여 분이 지나고 큰아주버님도 들어온다. 그런데 아직 남편이 안 온다. 해가 졌으면 들어와야 식구들이 걱정을 안 할 게 아닌가. 속이 잔뜩 상한다. 해가 완전히 지고서도 한참은 지나서 어슬렁거리며 대문을 들어선다. 달빛에 의지해 비탈진 산길을 겨우 내려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얼굴엔 전혀 당황함이 없다.
오늘의 수확물을 챙긴다. 큰아주버님이 인근 야산에서 주운 밤 자루를 내려놓는다. 제법 자루가 찼다. 차례 상에 올릴 것을 챙겨둔 뒤 나머지는 삶을 것이다. 저녁 간식거리로 딱 좋다. 작은 아주버님 역시 수확이 꽤 된다. 저번에 비하면 대어는 없지만 온 식구들 매운탕거리로 풍족하다. 설거지 그릇을 저만치 밀쳐두고 생선을 다루기 위해 작은 아주버님이 칼과 도마를 챙겨들고 수돗가에 자릴 잡는다. 이제 남편 차례다. 작년에는 귀한 난(蘭)을 얻었다며 한 턱 쓰질 않았던가. 이번에는 좋은 난을 찾지 못한 모양이다. 얼굴엔 실망의 빛도 없다. 올해는 얻지 못했으나 내년에는 필시 좋은 난을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대신 영지버섯만 넓은 호주머니에 가득하다.
삼 형제의 취미가 각각이다. 그 중 작은 아주버님과 남편의 취미를 보면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급한 성정의 아주버님이 낚시가 취미라니. 그것도 밤을 지새우며 낚시에 몰입해 날 새는 줄 모른다는 게 참 아이러니다. 잠시도 한 자리에 가만히 있는 분이 아닌데 낚시만큼은 미동도 없이 심취해 있다. 이태백도 기막혀하지 않을까 싶다. 갑갑증을 내며 어쩔 줄 모르다가도 낚싯대를 잡으면 망부석이 되니, 온 식구들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다들 한마디씩 한다.
남편은 난을 기르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움직이는 것 싫어하고 여러 군데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난을 채집하기 위해 산에 오르면 어느 누구도 따라잡지 못할 만큼 종횡무진이다. 산사나이처럼 이 산 저 산을 쏘다니며 난에 푹 빠져 있다. 차분하고 정적인 사람이 산기슭을 쏘다니는 것을 본 지인들은 남편더러 알다가도 모를 양반이라 한다.
아무래도 취미가 서로 바뀐 것 같다. 평소 성정을 보면 남편이 낚시를 해야 어울릴 것 같고, 오히려 작은 아주버님이 산으로 들로 다니며 난을 찾아다닐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러나 마음을 고쳐먹는다. 두 형제는 취미가 이러기에 사는 게 아닐까. 아주버님이 가끔 낚시를 하므로 자신을 돌아보고 급한 성정을 다스려 나가는 것이란 생각이다. 안 그러면 주위 사람들과 어울리는데 장애가 됐을지도 모른다. 남편 역시 그렇다. 매사에 꼼꼼하고 침착하지만 때에 따라선 상대방에겐 부담을 주었을 것이다. 남들이 답답해서 내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운데 취미생활이 완충작용을 하고 있지 싶다.
느긋함 속에 급함이 내재되어 있고, 또 급함 속에 느긋함이 내재되어 적절한 균형을 이뤄가니 참다운 급함과 느긋함의 미학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큰아주버님의 중간이 난 더 마음에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