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숲으로 둘러싸인 산사의 법당이다. 불자 몇 사람만 띄엄띄엄 떨어져 각자 절을 하기도 하고 또는 불경 책으로 불경을 조용히 묵독하기도 한다. 이렇게 조용한 분위기에 매료되어 가끔씩 산사를 찾는다. 오늘도 복잡한 심신을 달래려고 먼 길을 왔다. 겸허한 마음으로 자리 잡고 앉았다. 감히 참선이라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눈을 살포시 내려 감고 숨을 고른다. 몇 년 전 인도를 순례하면서 보고 들었던 부처님의 생애를 가만히 들추어 보기도 하고, 내 마음을 끄집어내어 책장을 넘기듯이 찬찬히 짚어보기도 한다.
젊은 시절 한창 때에 부처님이 계신 법당에서 밤을 세워가며 삼천 배를 하다 이천오백 배에서 인내력의 한계로 내 자신을 실망시킨 적이 있다. 그 후로 삼천 배는 도전하지 못했어도 때때로 천 배쯤은 쉽게 한다.
절은 왜 하는가. 여러 가지 뜻이 있겠지만 가장 큰 뜻은 하심(下心)하는데 목적이 있다. 의미를 세기고 절을 하다보면 낮추고 낮추어서 때로는 벌레처럼 작은 내 모습을 보게 된다. 갑자기 밀려오는 회의에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만큼 온 몸이 물 범벅이 될 즈음 예정된 절이 끝난다. 이래도 저래도 부처님은 인자한 미소로 화답할 뿐이다. 눈물 반 땀 반으로 흠뻑 젖은 몸과 마음을 식히며 돌아오는 길에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서 답을 얻는다. 아마도 부처님은 내가 견딜 만큼의 고통을 갖게 하여 자신의 지혜로 스스로 깨우치라는 뜻인 것 같다.
법당과 좀 떨어진 선방, 올해도 어김없이 여름은 오고 유래 깊은 절 집안에서는 하안거(夏安居)가 시작되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선방에서는 눈빛 푸른 벽안의 납자들은 출입을 금한다. 오직 참선 정진으로 무더위조차 날리고 서늘한 눈빛으로 여름을 보낸다.
‘이 뭣고’는 공부하는 스님들의 화두다. 물론 많은 화두가 있어도 ‘이 뭣고’는 세속의 불자들까지도 흔하게 들을 수 있다. 나로서는 아직 그 깊은 뜻을 마음에 담아 보지는 못했다. 불법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내가 섣 부르게 글로써 표현한다는 것은 많이 죄송한 일이다. 그러나 오직 몇 십 년을 절에 다닌 불자로서 듣고 책을 본 풍월이지 별 다른 것 없다.
화두는 입문한 지 오래되지 않고 성불의 의지가 투철한 젊은 학인 스님들이 복덕과 지혜를 갖춘 스승 스님에게서 화두를 받는다고 들었다. 받고 나면 불철주야 꿈에서도 화두 삼매에 빠져야 성불의 길을 갈 수 있다고 한다. 어떤 스님은 용맹 정진에 하안거 동안거(冬安居)도 모자라 한 단계 더 강한 삼 년 결사로 이어지고 있다. 몇 년을 면벽 수행과 십 년 묵언 수행으로 화두를 놓지 않고 성불의 길을 찾아 온갖 어려움을 불사한다. 불과 이십여 년 전에 입적하신 성철선사는 파계사에서 십 년을 동구 불출하셨다고 들었다. 세상이 변할수록 불가에서도 매우 드문 일이다. 그래도 면면이 이어져 불교를 믿는 많은 불자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내가 다니는 사찰의 스님은 팔십의 노구에도 몇 십 년을 선방에 계신다. 년 중 잠간씩 내가 다니는 절에 오셔서 쉬어 갈 뿐이다. 그때마다 법상에서 항상 하시는 말씀은 ‘젊어서 불법을 공부해라. 육신이 늙으면 내 자신도 나를 버린다.’, ‘재가의 불자들은 불심이 달팽이의 뿔 같아 오르는가 싶으면 숨어 버린다.’ 그때는 젊다는 이유로 방일하고 귀담아 들리지 않았다. 나이 들고 살다보니 온갖 번뇌로 밤을 새우고 날을 보내도 속수무책이다.
이 밤 멀리 동해안 어느 사찰에 안거해 계시는 노스님이 불현듯 그리워진다. ‘건강은 어떤지, 공부에 장애는 없는지’, 마음뿐이다.
요즘 늘 하는 가정사 가사일도 마음과 몸이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바쁠수록 헛걸음질이고 다급할수록 헛말을 주절댄다. 특히나 가족이 많이 모였을 때는 정도가 지나치다. 큰애 이름부터 손자까지 불러대는 바람에 모두가 순간 멈춤 자세다. 어이가 없다는 듯 그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 정작 어안이 벙벙한 건 바로 내 자신이다. 평소에도 생각이 빨리 트이지 않을 때는 무조건 ‘저 뭣고’로 시작한다.
스님들이 찾는 ‘이 뭣고’와 내가 찾는 ‘저 뭣고’는 사뭇 다르다. 전자는 어둠에서 광명을 찾아가는 희망의 배라면 후자는 세월에 밟혀 날마다 잊혀져가는 그 무엇을 찾아 헤매는 인간의 노쇠 현상이다. 자연의 순리라고 마음을 다독거려 본다. 때로는 답답한 마음에 비우고비우고 다 비워 바닥이 훤하도록 비어지면 새로운 그 무엇이 채워지지 않을까. 무색한 위로에 냉소를 떨칠 수가 없다.
낮엔 후덥지근하였지만 밤이 깊어지니 바람소리가 창밖에서 시원하게 들린다. 세월이 지나가는 소리다. 한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인생, 이 순간도 살아 숨 쉬니 삶이 얼마나 큰 기쁨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