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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ㄱ ㅁ ㅇ
강 돈 묵
사람은 하수도과라면, 자음은 상수도과다. 사람은 밑으로 나왔고, 자음은 위로 나왔다. 이 모두는 태생근
본이 인체이다 보니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다. 하수도로 나온 사람은 변덕이 심하고 신경질적이다. 그래서 사람을 본 뜬 ㅣ는 자주 좌충우돌하며 문제만 일으키고 다닌다. 이에 반해 자음은 상수도로 나온 자답게 나름 가지고 있는 성질을 견지해가면서도 상황에 따라 융통성도 발휘한다.
ㄴ만 보아도 그렇다. 제 조상이 혀이다 보니 수다가 심하다. 늘 수다방에 앉아 남의 이야기에 정신이 없다. 동네 사람 누구 하나 ㄴ과 싸우지 않은 자가 없음은 당연하다. 언제나 날카롭게 혀를 놀리니 화를 부른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버릇없이 눕지는 않고 꼿꼿이 앉아 있다는 사실이다. 앉은 자세를 언제나 지키고 있는 만큼 수다 떠는 버릇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줄기차게 혀를 놀린다. 그러다 보니, 싸움이 잦기는 ㄱ에 뒤지지 않는다. 동네 싸움에는 으레 ㄴ이 끼어 있다.
ㄱ은 제 조상이 어금니라서 그런지 씹어 갈아대는 버릇이 있다. 걸렸다 하면 맷돌에 갈듯 상대를 가루로 만들고 만다. 하지만 ㄴ처럼 수다를 떨지 않으니, 주위에 미치는 영향이 별로 나타나지 않아 다행이다. 여럿이 동무하다가 제 모습을 들켜 반쪽만 글자로 나타난 것이 쑥스러웠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절충하고 양보하지 못하는 제 성질은 어디 가랴. 이처럼 ㄱ은 제 생각과 다르면 누구와도 충돌한다.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면 양쪽 끝으로 세상 누구와도 다툰다.
아무리 개성이 강하여 다툼이 잦다 해도 이들은 태어난 고향이 입안이라는 것을 잘 안다. 향우회에서 만날 때면 언제 그랬냐 싶게 어울린다. 한마음이 되면 이들은 포옹한다. 아주 뜨겁게 끌어안고 입술을 포갠다. 사람이 마음을 나누는 데는 입술만 한 것이 또 어디 있으랴. 그 입술에서 나온 것이 ㅁ이다. 둘이 합하니 나쁜 마음이 있을 리 없다. ‘꿈, 기쁨, 웃음, 즐거움, 춤…’ 어느 하나 나쁜 게 없으니, 흥이 절로 솟고 어깨가 들썩인다. 한마음 한뜻이 되니 ㄱ과 ㄴ의 날카로운 개성은 사라지고 자연히 정분이 움텄다.
서로 화합하고 신뢰하며 손을 맞잡은 ㅁ. 서로를 받아들이고 노래한다. 여기서 샘솟는 사랑. 이렇게 충만해 오는 사랑은 조금씩 부풀어 ㅁ의 모서리마저도 부드럽게 녹인다. 입술을 포갠 감정은 서서히 뜨거워져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여기에 이르면 자연스럽게 ㅇ이다. 감정이 목구멍을 타고 뱃속을 향하니 무엇이든 다 받아들이는 부드러움과 너그러움을 얻는다. 아무리 건드려도 반응하지 않고 수용한다.
자음들은 오늘도 내게 말한다. 아마 이 나이가 되어서도 부드럽지 못한 내가 안타까운 모양이다. 둥그런 목구멍이 드러나도록 웃고 있다.
“으그, 이 하수도과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