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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법은 가까운데 있습니다"진성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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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0.18  14:4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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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성진 변호사
며칠 전 조선소에 다니는 한 시민이 사색(死色)이 되어 찾아왔다.

"우리 집은 대지 90평에 건평 20평인데 길이 없어 앞집을 통로로 사용해 왔습니다. 최근 앞집을 산 사람이 우리 집을 싼값에 팔던지 아니면 통로를 막아버리겠다고 하는데 우짜면 좋습니까?"
"차근차근 한 가지씩 확인합시다. 처음부터 길이 없었습니까?"
"모친과 함께 이집에 20년 이상 살고 있는데 처음부터 길이 없어 십 수 년 전부터 앞집에 월 2만원씩 통행료를 내어 왔는데 엊그제 그 집이 평당 500만원에 팔렸습니다"
"그런데요?"

"그 집을 산 부산 사람이 부동산을 하는 동네 형님과 함께 와서 우리 집은 길이 없으니 이달 말까지 싼값으로 팔던지 아니면 당장 길을 막아버리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저도 길이 없는 점을 참작해서 평당 350만원을 달라고 했는데 300만원에서 한 푼도 더 줄 수 없답니다. 이 돈이라도 받고 팔아야 합니까?"
"그럴 필요 없습니다. 만약 팔고 싶으면 제값을 받고 팔던지 아니면 여전히 통행료를 내고 통행할 수 있으니 헐값에 안 팔아도 됩니다"
"길을 막아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우리 민법은 주위토지통행권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어느 토지와 공로(公路) 사이에 그 토지의 용도에 필요한 통로가 없는 경우에 그 토지 소유자는 주위의 토지를 통행 또는 통로로 하지 아니하면 공로에 출입할 수 없거나 과다한 비용을 요하는 때에는 그 주위의 토지를 통행할 수 있고 필요한 경우에는 통로를 개설할 수 있다'고 규정(제219조 제1항)하고 있는데 바로 이건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장에서 확인해 봅시다!"

해당가옥 등기부등본과 지적도, 그 주변 토지의 등기부 등본을 발급받아 현장을 확인 해 본 결과 과연 이 집은 타인소유의 토지들로 둘러싸여 있고 그 각 지상에 빌라와 공동주택, 단독주택이 있어 기존에 통행료를 주고 다니던 앞집을 통하지 않으면 공로에 출입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현장을 둘러보니 이 집은 주위토지통행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바뀌어도 여전히 통행할 수 있고, 따라서 제값이 아니면 안 팔아도 됩니다"
"그래도 새 앞집주인이 담을 쳐서 길을 막아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우선 법원에 주위토지통행권을 근거로 한 통행방해금지가처분신청을 하고 이참에 소송을 통해 통행권을 확인하고 통로를 개설하는 절차를 밟으면 됩니다"
"법이 우찌 알고 그런 멋진 규정을 미리 정해놓았는지 신통합니다!"

"인간이 공동사회를 이루어 온지 수 천 년이 되었고 여태까지 이런 일이 한두 번 있었겠습니까? 주위토지통행권은 아주 오래전부터 독일법에 규정한 것을 일본법을 거쳐 우리 민법에 도입한 것입니다"

흔히 길이 없는 땅을 맹지(盲地)라 한다. 맹지 소유자는 길이 없다는 이유로 헐값 매도를 강요받고도 달리 엄두를 못내 전전긍긍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주위토지통행권은 이런 경우를 대비한 규정이다. 이 규정은 민법 상린관계(相隣關係) 규정 중의 하나이다. 이는 부동산 소유자에게 사용수익 권능 일부를 유보해 서로 협력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부동산 소유권을 한편으로는 제한하고 한편으로는 확장하는 효과가 있다.
 
민법은 맹지 소유자가 타인의 토지를 통행할 때에는 '이로 인한 손해가 가장 적은 장소와 방법을 선택해야 되고 통행지 소유자의 손해를 보상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219조). 주위토지통행권 규정에 의하여 소유권이 확장되는 맹지 소유자와 소유권이 제한되는 인접 통행지 소유자의 이익균형을 위한 세심한 입법적 배려다.

위 규정 덕분에 휴가까지 내어 내게 찾아온 조선소 근로자는 앞집 매수자가 제안한 평당 300만원이라는 헐값에 집을 팔지 않고 여전히 앞집을 계속 통행할 수 있고(대신 법원이 산정한 통행료는 보상해야 한다), 집을 팔더라도 제값(평당 500만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시행되는 법령이 수 천 개 있지만 민법의 주위토지통행권 규정이야말로 내가 아는 가장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 같은 조항이다. 주변에서 의외로 이처럼 유용한 규정을 알지 못하여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거나 못할 뻔한 안타까운 경우를 최근 자주 본다. 그러면서 법이란 것이 오랜 기간 공동체를 이루어 부대껴 온 우리 인류의 오랜 지혜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고시생 시절, "쓸데없이 이렇게 많은 법을 만들어 고시생을 괴롭히는지 모르겠다!"며 강짜를 부렸는데 어언 30여년 법조인 생활을 하다 보니 "바로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고시생이 보기에 그 요상한 법을 만들었구나!"하며 감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법은 상식이다. 법(法)은 물(水)이 흐르는(去) 것과 같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 속담에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그런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법은 주먹보다 훨씬 힘이 세다. 법은 결코 생각처럼 어렵지도 무섭지도 멀지도 않다. 오히려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가는 우리 시민들의 생명과 재산과 명예를 지켜주는 듬직한 이웃집 아저씨 역할을 해준다. 나는 요즈음 내가 이런 법을 다루는 법조인이라는 사실에 새삼 더 없는 행복을 느낀다. 덧붙여 법이 지향하는바 보다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조그만 벽돌 하나 놓겠다고 재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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