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는 벌써 세 번째 여행이다. 씨엠립을 떠나기 전날 여행의 일정은 마무리 단계였다. 낮에는 킬링필드 유적지를 둘러보고, 저녁에는 이념으로 갈라져 있는 북한 사람들이 운영하는 평양냉면집에서 만찬이 있었다. 이념이 다른데도 제 민족을 외국에서 만난 탓일까. 어딘가 모르게 동질감이 있으면서도 거리감이 있다. 유적들이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앙코르왓트에 빠져 있는 무리가 있는가 하면, 북한 사람과 냉면의 맛에 흠뻑 젖어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나는 엉뚱하게도 전에 이곳에 왔던 탓인지, ‘인간의 잔혹함’의 늪에 빠져 발을 뽑아내지 못하고 헤매었다.
킬링필드(The Killing Fields)는 1975년에서 1979년 사이에 폴포트가 이끄는 크메르루즈라는 무장단체가 저지른 대학살을 말한다. 그들에 의한 희생자 수는 3년 7개월 동안 전체 인구 육백만 명 중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이백만 명에 이른다. 크메르루즈는 이렇게 끔찍하게 자국인들을 학살하였다.
국명개칭, 화폐제도 폐지, 도시 주민의 강제 농촌 이주 등 극단적인 공산주의를 내세워, 기존의 산업시설을 모두 파괴하고, 기업인·유학생·부유층·구정권 관계자, 심지어 자기들 조직 내의 월남파까지도 반동분자로 몰아 학살하였다. 이념이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이 잔인한 학살에 전 세계인들이 전율했었다. 킬링필드 유적지는 호텔에서 그다지 멀지 않는 곳에 있었다. 다시는 세상에 이런 끔찍한 학살사건이 없기를 바라는 인간 본연의 양심들이 교훈으로 삼고자 만든 유적지다. 우리의 기준에서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조그마한 시골 학교시설 같은 정도지만 그 의미는 컸다.
우리 일행이 탄 관광버스가 도착하자 마치 반가운 손님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열두 살쯤으로 보이는 터벅머리 소년이 버스 출입문 쪽으로 쪼르르 다가온다. 그 행색이 위기에 처하거나 가난한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걸하는 소년의 모습이라 처음엔 별 관심도 없었다. 얼굴에는 언제쯤 세수를 했는지 모르게 구정물이 쪼르르 흐르고, 걸친 옷이라고는 검은 반바지 하나가 전부인 채 웃통은 아예 벗어버렸다. 뙤약볕에 달구어진 피부가 완전히 착색이 된 듯 거무스름하면서 윤기가 돈다. 아직도 내전의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이 나라의 상처가 고스란히 내 눈으로 다가왔다.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 모습이 낭인소년이라기에는 너무도 순진해 보인다. 사십대 중년의 가이드를 따라다니며 ‘아빠, 아빠’ 좋아라고 몸짓을 한다.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자기를 부르는 호칭을 ‘아빠’라고 가르쳐 주었더니, 본의 아니게 또 다른 아들이 하나 생겼다며 웃는다. 그러면서 돈 달라고 하면 1달러만 주면 된다는 것이다. 1달러짜리 밖에 몰라서 다른 돈은 절대로 안 받는다는 것이다. 1달러 지폐에 너무도 좋아하는 소년의 모습에서 절박했지만 순진했던 한국전쟁 직후의 우리 소년들이 떠올라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내전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아둔 사진과 당시에 피살된 민간인들의 유골과 사지의 뼈 조각들을 한 곳에 모아두고 오는 이들로 하여금 살육의 끔찍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 전쟁의 아픈 상처가 깊이 묻어나는 현장을 보면서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저녁이 되어도 낮에 본 색 바랜 사진 한 장은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무장 세력들이 당시 권력자였던 시아누크의 애첩을 잡아다가 전기드릴로 뒤통수에서부터 구멍을 뚫어 죽이는 모습의 사진이다. 어찌 인간이 인간을 저렇게 학살할 수 있을까. 일본인들이 우리 민족을 죽창으로 살해했던 잔인함이 사진 위에 겹쳐진다. 멍한 내 의식 속으로 구름을 뚫고 쏟아지는 햇살처럼 스치는 것이 있다. 삶과 죽음과 일상을 영위하는 방법이 죽이는 자나 죽임을 당하는 자나 똑같거늘 이념이 다르고 상황이 달랐다고 해서 저렇게 죽일 수 있는 것일까? 편안하게 죽도록 해 준다 하여 후세에 경고가 아니 되는 걸까?
이순신 장군을 다룬 영화 <명량>을 보면서 정유재란 당시 일본군들이 우리 민족들의 코를 베는 장면을 보았다. 지금도 일본 나라현에는 당시 우리 조선인들의 귀만 잘라 만든 귀무덤이 있다. 제 민족이든 남의 민족이든 간에 인간의 탈을 쓰고 어찌 저리 잔인할 수 있을까. 인간 본성의 한 단면을 엿보는 거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 과연 죽인 자와 죽은 자의 죄는 누가 더 클까. 당시 그곳에서 삶을 틀고 있음이 죄가 되어 죽지 않을 수 없었던 선량한 서민들은 어찌해야 할까. 아이러니하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여 놓고서는 곁에다 죽은 이들의 영혼을 달래겠다고 절을 지어 놓았다. 그리고 살아 있는 자들이 역사 앞에서 죽은 이들의 명복을 비는 묵념을 올린다.
아무리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지만 죽음 앞에 서면 똑같은 것이 아닐까. 무수히 죽어간 영혼들의 절규가 핏빛으로 변하여 빨간 꽃이 만발했다. 유적지의 한 모퉁이가 온통 빨간 아열대 꽃이다. 저만치에선 기형아가 된 아이에게 가슴을 다 풀어헤치고 젖을 물리면서도 구걸에 나선 여인이 보인다. 철모보다 더 큰 머리를 가진 기형아를 안고 있다. 그 핏기 잃은 얼굴과 생기라곤 전혀 없는 눈빛이 자꾸 내 발목을 잡는다. 그들의 처지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마저 사치처럼 느껴지어 머리를 흔들어보지만 ‘인간의 잔혹함’이 뇌리에서 떨쳐지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