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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문화칼럼] 분노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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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1.22  11: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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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석/컬처크리에이터(Culture Creator)
메닌(분노). 호메로스의 고대 그리스 문학의 가장 오래된 위대한 서사시 ‘일리아드(Iliad)’는 첫 단어 분노(menin)로 시작된다. 스티브 잡스가 "소크라테스와 식사하며 대화를 할 기회를 준다면 애플이 가진 모든 기술과 바꾸겠다."라고 말했다는데 필자는 ‘만약’이 현실이 된다면 유럽 문학의 최고 서사시를 지은 유랑시인을 만나 불멸의 작품 시작을 ‘분노’로 한 이유를 듣고 싶다.

문명의 예술품이 정치라는데, 정치는 희망을 주지 못하고 공동체의 적들이 천박한 갑질을 하는 탐욕이 관용과 연민을 압도해 분노가 전염병처럼 창궐하는 대한민국에서 인문학을 사랑하는 사내의 의문이다.

오디세이아(Odysseia)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와 후대 서양의 문학예술과 문화의 전범으로 여겨지고 있는 일리아드는 그리스의 전설적인 전쟁인 트로이아 전쟁을 배경으로 51일간의 사건을 이야기한다. 사랑이 뭐기에? 한 여성 때문에 참혹한 살육이 자행되는 사내들의 야만적 전쟁에서 그리스의 장군인 아킬레우스가 중심이 되어 신과 인간들의 애증이 교차하며 원한과 복수에서 파생되는 인간의 비극을 노래했다.

   
▲ 아킬레우스의 분노/쿠아펠(Charles-Antoine Coypel)/캔버스에 유채. 에르미타주 미술관
트로이 전쟁 마지막 해의 단 4일간에 걸친 사건을 다루며 이야기 전개에 따라서 시는 24편으로 나뉜다. 그리스 문학의 대부분이 운명론에 따른 체념이나 절망을 보여주는 것과는 달리 정해진 운명에 굴하지 않고 영광된 죽음을 택하는 '영웅의 명예'를 보여준다.

그리이스 신화의 수많은 영웅호걸 중 가장 관심이 가는 문제적 인간이 태생적 한계를 지닌 아킬레우스이다. 전설에 따르면 아킬레우스는 어릴 때 어머니가 저승에 흐르는 스틱스 강물에 몸을 담가서 불사신(不死身)으로 만들었지만, 그녀가 잡고 있었던 발꿈치만은 물에 젖지 않아서 치명적 약점이 되었다고 한다. 결국, 트로이아 전쟁에서 그 아킬레스건(腱)에 화살을 맞아 영웅의 최후는 장엄한 비극으로 끝난다.

교수신문은 2015년 새해, 희망의 사자성어로 정본청원(正本淸源)을 선정했다고 한다. 한서(漢書) 형법지에서 유래한 말로 ‘근본을 바로 하고 근원을 맑게 한다’라는 뜻이라는데 근본부터 철저하게 개혁하자는 구호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들었지만, 항상 ‘태산명동에 서일필(태산이 흔들리도록 요란하더니 나타난 것은 고작 쥐 한 마리)’이었다.

작년에도 '속임과 거짓됨에서 벗어나 세상을 밝게 보자'라는 의미의 전미개오(轉迷開悟)로 시작했지만 세월호 침몰, 청와대 찌라시, 문고리 권력, 십상시, 땅콩회항 등으로 시끄러웠다가 연말에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라는 지록위마(指鹿爲馬)가 뽑혔다. 남을 속이려는 속셈으로 옳고 그름을 뒤바꾼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곧장 인용되는 지록위마가 2014년 코리아의 시대상황이었다는 게 눈물겹다.

   
 
매년 신년의 기대와 희망을 피력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단 한 해도 실망과 절망하지 않은 적이 없었음을 알게 된다. 인간이니까 태생적 한계나 아킬레스건 같은 약점은 있다. 민주적 시민성과 소통과 인화의 리더십이 함께 조화로운 건강한 세상을 지향하여 ‘트로이 목마’가 침투할 수 없는 따뜻한 공동체 사회를 만들 수는 없는가?

을미년 청양띠해, 일출을 보러 간 동해안 여행지에서 겨울바다 앞에 서서 생각했다. "남과 사이좋게 지내되 무턱대고 어울리지는 않는다."라는 뜻의 화이부동(和而不同)으로 다시 마음을 다스리며 언제까지 ‘너의 분노에 수면제를 먹여라!’라고 자위해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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