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석 희

오늘 까미노 길(스페인의 가톨릭 성지, 산티아고로 가는 보행자 길로 보통 800여 킬로미터를 걷는다)은 시작부터 가파른 오르막이다. 알베르게(순례자 숙소)를 빠져나오기 무섭게 산이 앞을 막아선다. 심난하다. 발걸음도 천근만근이다. 어둑새벽 몸이 깨기도 전에 거친 일정이 아닌가. 어차피 가야 할 길 즐기며 가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추임새를 넣으며 걸음을 재촉한다. 점점 호흡이 격해지고 숨이 차온다. 쌀랑한 기온에도 체온이 상승하며 에너지가 소진된다. 힘겨움을 덜어내려 으음파 으음파를 해본다. 헌데 이게 웬일인가. 훨씬 수월하다. 계속 반복 리듬을 탄다. 심심파적 하는 짓이 산에서 유용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래 물속의 호흡을 걸으면서 시도해보는 거야. 무료함도 잊고 수영법도 익히고. 그냥 연습 삼아 해본 건데 결과가 놀랍다. 경사 가파른 길을 올라도 가뿐하다. 호흡이 고르니 편안할밖에. 산에 오르는 물고기다.

물고기를 땅에 두면 얼마나 버틸 수 있으려나. 헌데 난 으음파의 활용으로 신들린 듯 산을 타니 이상할밖에.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이내 여섯 사람을 앞지른다. 신통하다. 젊은이들이 헉헉댄다. 주저앉아 숨을 고르는 아저씨들 곁을 지난다. 스틱과 돌의 마주침이 경쾌하다. 힘이 솟는다. 쑥쑥 거침없이 오르는 쾌감이라니. 정상에 올라도 지치지 않아 쉼 없이 내리막을 향한다. 뒷사람이 아득히 멀다. 평지에서 계속 앞지름을 당했었는데 오르막에서 대역전이다. 평소 같았으면 어림없는 일 아닌가. 수영과 등산의 합치점을 우연히 몸으로 체득한 것이다. 독일 아저씨, 캐나다 청년, 남아공 할머니, 남편까지도 날개를 달았다며 부러워한다.

큰 수확이다. 내가 모르고 있었지만 그걸 알고 실행하며 살았더라면 수월한 삶의 방편. 그런 것들이 세상엔 널려 있나보다. 그랬다면 고단하지 않게 살 수 있었을까. 애당초 삶이 이런 건지도 모른다. 생각지 않았던 곳에 길이 있는 것이다. 또 뜻하지 않게 그 길이 열리니 말이다. 변화를 꿈꾸며 다른 방도를 궁리해 볼 일이다. 뭍에서 물에서 하늘에서 살아가는 법을 활용해 보는 거다. 상호 이동과 변형이 가능한지 실행해보자. 몸을 쓰는 일이다. 논리나 관념에서 벗어나 몸으로 부딪치며 일상에서 깨우치고 알아가는 것이다. 지식이 아니라 지혜로 실천으로 삶을 모색해 가는 것이다. 매일매일 스스로 자기 개혁과 혁신을 도모하며 새롭게 살아봐야 하는 것이다.

아낙이여서, 어미여서, 나이 먹어서, 주변사람들과 함께 해야 기에 스스로 족쇄를 채우고 누르며 가두고 산다. 하지만 물속 호흡법이 산지에서도 먹히지 않더냐. 응용이라도 좋고 새로운 발상이라 해도 무방하리라. 또 다른 방식의 삶을 찾아 나설 일이다.

내가 밥벌이를 작파하고 세상을 두루두루 싸돌아다닌 들, 글을 쓴답시고 밥 때를 잊어버리고 아낙의 소임을 소홀히 한 들 그 무슨 상관이랴. 내가 사는 방식이 아니더냐. 구속을 풀어버리고 가벼워져야 한다. 나를 규정하는 어떤 것에서도 벗어 날 수 있음이다. 여기저기서 음파 음파 해보면 어떠랴. 물고기 숨 법을 익혀 세상천지 휘젓고 다녀 볼 참이다. 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가 다시 오라 손짓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