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 희

몇 년을 준비한 여행길이다. 이 모임은 칠순을 맞아 분명히 이유 있는 여행이다. 가족 어느 한 사람도 반대함이 없는 속박에서 벗어났으니 모두들 의기양양이다. 남편도 손자 어느 누구에게도 걸림이 없어 얼마나 마음들이 홀가분한가. 사흘 동안은 밤잠도 설치면서 유유자적하게 즐겼다. 낮에는 열심히 관광길에 밤에는 밤대로 이야기꽃으로 즐겼다.
끝까지 믿었던 마음과 달리 육신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들 피로한 기색이 완연했다. 두 밤을 온통 날밤을 새웠으니 조금씩 예민해지면서 순간순간 날카로움이 엿보였다. 가족도 친구도 집단 속에는 이해관계의 연속이다. 나이가 들면 이해심이 풍부할 줄 알지만 착각이다.

일생에 어린애가 두 번 된다는 말이 있다. 그때는 이 말속에 무슨 뜻이 숨어 있는지 생각조차 못해봤다. 역시 이 나이에 와보니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물론 아직은 참을 수 도 있고 자신의 약한 마음을 숨길 수도 있다. 그러나 남은 시간 삶을 여간 잘하지 않고는 노년에 철없는 어린애가 되지 않을까 두렵다.
이번 여행에서 한 친구가 자기중심으로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같이 여행하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나이를 더함은 공평하다. 예전과 달리 활동도 줄어들고 시야도 좁아져서 오직 자기중심으로만 생활하다 보면 타성에 젖어 버릴 수 있다. 자기를 바로 볼 수 없으니 어찌 다른 사람을 볼 수 있겠는가.

노년 또한 삶의 일부분이다. 나이가 많다고 일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 없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고 자기를 경작하는 마음이 없다면 평생 애써 살아온 인생 끝자락이 더욱 외로워질까 더럭 겁이 난다. 나이에 타성을 더할 것이 아니라 올바른 잣대로 내가 나이를 끌고 갈려는 끝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생각해 보니 이순 때도 지금 친구들과 같이 이곳으로 여행을 왔다. 십년 전 그때처럼 여행 기간도 같고 사람도 그 사람들이다. 이번 여행 끝에는 왜 즐겁지도 않고 짜증스런 표정에 불평만 늘어놓는지, 왜 다들 그렇게 참을성이 없는지, 누군가가 이 모임에서는 여행은 이번으로 끝내자는 말도 나온다. 십년동안 강산도 많이 변했지만 우리들의 몸도 마음도 너무나 나약해져 있었다. 시간은 가만히 있는데 우리만 변한건지, 가슴 한 곳에서 밀려오는 서글픔을 꾹꾹 눌린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는 끝없이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난다. 얼마 전에 한 지인이 어쭙잖은 일로 젊은이에게서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다고 전화가 왔다. 그 일에 내가 한 몫을 했다는 듯 투정을 했다. 나는 좀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가 그를 좋아하고, 또한 내 양심에 하등의 거리낌이 없기에 그냥 농담이려니 하고 웃고 넘겼다. 시간이 좀 지난 어느 날 그의 친구 한 사람과 셋이 모인 자리에서 또 그 말이 터져 나왔다. 갑자기 전날에 전화상으로 듣기에도 좀 민망한 그의 말이 생각났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인내하고 견뎠지만 순간 비로소 나의 어리석음을 알았다. 남을 의심 할 줄 모르고 금방 믿어버리는 나의 성격이 문제다. 언젠가는 우리 서로 진심을 알 것이다. 많은 날들을 보내면서 그도 보이고 내 자신도 보였다. 사소한 오해였지만 아마 그도 나처럼 한참동안 서운한 마음을 안정시키느라 힘들었을 게다.

섭섭했던 마음은 어디로 살아지고 변함없이 다독여 주는 그를 생각하니 가슴이 짠해 온다. 노년의 자존심은 누가 만들어 주며 또 그것은 어디서 얻어야 하는지. 오래 살면 살수록 행동보다 말로써 더 문제가 많다. 느슨한 마음가짐으로는 언제 무슨 화살이 날아올지 나이가 들어 갈수록 긴장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될 것 같다. 밝음과 어둠은 어느 곳이나 존재하기에 하나를 얻으면 하나는 잃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항상 마음에 새김질해야 한다.

육순에서 칠순, 마치 낮에서 밤으로 바뀌어 가는듯한 어쩔 수 없는 숫자의 더함에 나약한 인간의 단면이 자신을 더욱 왜소하게 만드는지 모를 일이다.

▓ 약력 ▓
*거제 출생, 수필가
*거제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수료
*계룡수필문학회 회원
*수필과 비평 신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