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미국과 중국에서 활동을 하다가 경남의 거제시 문화예술재단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미국사회와 한국사회, 미국사회와 중국사회, 중국사회와 한국사회, 영남과 호남, 거제와 청주는 다양한 문화적 차이가 있음을 느낀다.
어느 나라 사회든 사회구조의 뿌리는 문화이며 이러한 문화의 근본으로서 인문학이 존재하는바 여기에 역사나 철학, 문학은 물론 물리학과 천문학이 있다. 특히나 요즘과 같은 변화무쌍한 사회상에 변치 않는 근본은 인문학 중에서도 역사가 아닐까 싶다. 이러한 점에서 역사 또한 정치경제학적인 변화를 만드는 원동력으로서 작동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4면이 바다인 유일한 도시는 경남 거제시이다. 반면에 바다를 면하지 않은 유일한 행정구역은 충북이며 청주시이다. 필자가 거제시에서 느낀 지역민들의 모습과 충북 청주에서 만나는 지역민들의 인상은 사뭇 다르다.
바다와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은 낯선 문화에 대한 경계심과 동시에 같은 크기의 호기심이 있으며 또한 강한 도전 정신이 있다. 아마도 섬 문화가 가지는 특성이기도 할 것이다.
한 예로 거제시민들이 가지는 자부심 중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거제는 한자로 ‘巨濟’라고 쓴다. 클 거(巨) 안을 제(濟)라 하여 나라를 세 번 크게 구하였다고 평한다. 그 첫번째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장군의 첫 승전지 옥포대첩을 꼽는다. 임진왜란에서 거제가 나라를 구한 첫 사례인 것이다.
두 번째의 장소는 최근 상영된 영화 <국제시장>에서도 크게 부각된 흥남철수작전의 지역 장승포가 있다. 거제는 메르디스 빅토리호가 1만 4천명의 피난민을 싣고 도착한 곳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한국전쟁에서 수많은 생명을 구하고 17만 3천명의 포로들을 생존 하게한 전쟁포로 수용소를 만든 곳이기도 하여 나라를 구한 두 번째의 역사적 사건으로 보고 있다.
세 번째로는 1998년에 발생한 IMF환란이다. 거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선소가 두 개나 있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와 ‘대우옥포조선소’이다. 이 양대 조선소가 경제위기 IMF시절에도 꾸준히 외화를 벌어들여 IMF외환위기를 벗어나게 하는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다. 이 양대 조선소는 연간 300억 달러이상의 수주를 이어가면서 지금도 세계의 조선 산업을 리드하고 있다. 이처럼 해양도시는 해양도시대로 지역민들의 문화적 감성을 창조해 내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이 도시는 조선소의 근로자 중심의 지역문화가 도시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문화를 향유하는 공연예절에 관한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예술회관 대 공연장을 방문하거나 예식장을 가거나 장례식장을 방문 할 때도 똑 같은 근무복장 이른바 작업용 점퍼 차림을 흔히 볼 수 있다.
이것 또한 지역의 특수성일 것이나 후세대들을 위한 교육적 측면에서는 한번쯤 변화를 해볼 가치는 있을 것이다. 실용적 입장에서도 그렇지만 예술적 소통이라는 내용적, 매체적 측면에서 우리는 이른바 ‘드레스코드’라고 하는 특정한 복장의 형식에 제한을 가한다.
소박하고 편한 복장도 좋지만 약간은 불편하고 어색할 수도 있는 형식의 제한은 매년 6월에 윔블던에서 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열리고 있는 윔블던테니스대회가(다른 그랜드슬램 대회와는 달리) 여전히 선수들에게 흰색 옷만을 고집하는, 그야말로 고집스러운 전통의 고수를 통한 자긍심은 물론 지역마케팅으로의 활용이라는 실용성도 갖는다는 것은 기억할만하며 문화예술계에서는 하나의 불문율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지역에 와서 청주시의 ‘청주예술의 전당’을 방문해 본적이 있다. 거제시에서 만나본 공연장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대부분의 관중들은 정장을 하고 가족들과 함께 정숙한 분위기로 공연 오픈을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흔히들 청주를 교육의 도시라 부른다. 교육적 뿌리가 공연문화에 미치는 영향을 느낄 수 있는 일예라 보겠다.
이러한 교육에 대한 관심은 밥상머리 교육에서 시작하는바 사실 식사예절 즉 숟가락과 젓가락질의 교육을 통해 식탐을 조절하고 마음을 닦음은 이미 우리 선조들에게서도 공유되었던 문화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우리 청주는 자긍심을 가질만하다. 어찌 보면 청주가 느림과 여유 그리고 마음의 도시라면 거제는 신속하고 공학적인 그리고 거대한 선체와 같은 육체의 도시이다.
요즘 들어 문화가 갖는 경제적, 정신적 가치에 주목하여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자체들이 문화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중앙정부가 ‘문화융성’이라는 국가시책을 지향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가 경제와 산업을 견인하는 뿌리가 되고 또한 지역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서는 ‘문화소외계층’이 없어야 할 것이다.
산촌(山村)의 어린이들이나 노인들 그리고 농촌(農村)에 거주하는 지역민들이 차별 없이 향유하는 문화와 다문화(多文化) 가정의 이주민들까지도 우리시가 문화도시라고 느낄 때 진정한 문화도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자연과 인간은 하나이며, ‘문화’는 인간에게 ‘물질보다 정신’을 강조하는 인문학적 본성을 처방해주는 치료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청주시를 방문하는 국내 관광객들과 중국으로부터 몰려오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청주에서 무엇을 보고 싶을 것인가? 그들에게 ‘다시 찾고 싶은 도시’ 청주를 보여줄 방법은 무엇일까? 직지가 가르치는 마음의 본체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