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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김연분]미꾸라지의 변(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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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5.21  10:2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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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꾸라지의 변(辯)
 
                                                                                                                                              김연분
 

   
 
 지는 경상도에 사는 미꾸라지입니더. 어무이 아부지는 모르고예, 미꾸리과에 속한다고 들어습니더. 지가예 왜 하필 미꾸라지로 태어나서 억울한 소리도 많이 듣는지 모르겠어예. 해서 오늘은 지가 할 말은 좀 해야겠습니더. 앞뒤가 없더라도 미꾸라지라 그렇다 생각하시고 쪼매 이해해 주이소.

지도 큰 냇가에서 태어났으면 가시고기나 열목어, 금강모치로 태어났을지도 몰라예. 그런데 3~4급수인 논이나 도랑 같은 곳에서 태어나다 보니 잘 움직일 수 있도록 몸통이 가늘고 길게 생겼지예. 때깔은 어떻구예. 천적을 피하려고 등은 어두운 색이고 배 쪽은 담황색 비스무리합니더. 또 진흙이나 모래가 깔린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몸도 미끌미끌합니더. 이쯤하믄 겉으로 드러난 지 소개는 다한 것 같네예. 

지는 ‘미꾸라지 한 마리가 웅덩이 물을 흐린다.’는 말을 제일 싫어합니더. 유식한 말로 하믄 일어탁수(一魚濁水)라 하데예. 다른 물고기들처럼 수면과 바닥 사이에 살면서 헤엄치고 다니믄 그런 말 안 들었을 겁니더. 그런데 지는 바닥에 바싹 붙어서 움직이다 먹이를 구하고 논바닥을 파고 들어가는 습성을 가졌습니더. 그때 각종 부식물들과 흙이 굴뚝에 연기 올라오듯 몽글몽글 일어나는 걸 우찌합니꺼. 그리고 지가 달리 진흙을 파고드는 것이 아닙니더. 제 말 단디 들어보이소.

무엇보다도 살기 위해서입니더. 논이나 냇가에 살다 보믄 물방개나 가물치 같은 큰 물고기의 먹잇감이 되고맙니더. 그뿐입니꺼. 백로 아시지예, 백로나 왜가리도 지를 잡아 묵습니더. 누가 자기를 해치려고 하는데 순수히 목숨을 내놓을 수 있겠습니꺼?

또 먹이를 찾기 위해서입니더. 지는 진흙 속에서 유기물이나 플랑크톤을 찾아 먹습니더. 모기 유충인 장구벌레도 무척 좋아합니더. 갸들을 잡아먹기 위해서 몸을 낮추고 때를 기다리는 거지예. 먹이를 포획하기 위해서는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합니더. 지가 논에서 살려면 각별히 조심해얄 것이 있습니더. 농약입니더. 사람들이 농약을 치면 땅 속에 살고 있던 미생물들이 죽고 맙니더. 지도 굉장히 힘들게 견뎌냅니더. 먹을 것이 없는데 지가 어떻게 논에서 살 수 있겠습니꺼? 다행히 요즘엔 무농약 쌀, 유기농 쌀이 상품화되믄서 그래도 살만 합니더. 

지도 입은 좀 무겁습니더. 이런 말 들어 보셨습니꺼?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소리를 들으면서 큰다.’ 지가 사는 논의 벼도 마찬가지입니더. 하루는 농부가 와서 피를 뽑으며 하소연을 합디다. 

 “큰아는 학자금 대출을 받아 대학엘 보내고 있고, 작은 아는 영농자금 대출 받아 공부시 키고 있는데 셋째와 넷째는 우찌할꼬. 뼈 빠지게 농사지어도 목구넝이 포도청이라. 느그가 실하게 자랄수록 내 근심도 함께 자라는 것 같다.”

다음 날은 농부의 아낙이 와서 입을 뗍디다.
  “무신 피가 매일매일 뽑아도 다음날 와 보믄 또 있노. 피를 솎아내야 벼가 실하게 자랄 텐데. 내 자식들이 밖에 나가서 피가 아니라 알곡 같은 사람대접 받아야 하는디. 이눔의 세상,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고 가난한 살림은 세간이 늘지도 않네.”

지가 들으려 해서 들은 것이 아닙니더. 지도 입이 있는지라 무어라 한마디 하고 싶은데, 미꾸라지 주제에 참견한다 할까 봐 그만 뒀지예. 하지만 자꾸 이야기를 듣다 보믄 말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더. 그럴 때마다 주둥이로 바닥을 파고 몸을 비틀어 진흙 속으로 파고 듭니더. 미꾸라지나 사람이나 입이 무거워야 안 되겠습니꺼? 그런 것이 습관화되면서 몸도 길어지면서 진흙도 잘 뚫는가 봅니더. 지는 한해 두해 그렇게 살다보니 몸이 변했다고 생각합니더. 

지가 하는 말에도 일리가 있지예. 일어탁수란 말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닌가 봅니더. 미국에도 비슷한 뜻을 가진 말이 있는데. ‘썩은 사과 하나가 전체 사과 상자를 망친다.’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못된 사람 한 명이 사회를 어지럽힌다. 뭐 그런 뜻이겠지예. 지는 처음부터 못된 사람은 없다고 봅니더. 살다 보믄 여러 가지 이유로 착했던 사람이 모질어지기도하고 나쁜 짓을 일삼던 사람이 선하게 변하는 것도 많이 보았다 아닙니꺼. 어쩌면 썩은 사과 하나는 관리를 잘못한 주인 탓도 있을 수 있고, 다른 사과보다 병약해서 빨리 상했을 수도 있습니더. 사람의 열 손가락인들 크기가 다 똑같습니꺼. 같은 어무이 몸을 빌려 태어난 자식들도 얼굴 생김새나 목소리, 그라고 성격도 다르지 않던가예.

우리는 썩은 것만 보지 말고 썩지 않은 나머지 사과를 더 잘 관리해야 합니더. 맑은 물이 많을수록 흙탕물이 한 방울씩 떨어져도 금세 맑아지듯 사회가 정화되었다믄 미꾸라지 한 마리면 어떻고, 썩은 사과 하나면 어떻겠습니꺼? 다 보듬어 안을 수 있어야지예. 

오늘 아침에 농부의 아낙이 와서 뜬금없이 꿈 얘기를 하데예.
  “집 안에 미꾸라지가 몇 마리 돌아다니고 있어서 잡으려 했더니 갑자기 수백 수천의 미꾸 라지들이 나타나 놀라서 깼다.”

기막힌 꿈입니더. 분명 오늘 재물이 들어오거나 대학 졸업을 앞 둔 아가 있으면 좋은 직장에 취직할 꿈이라예. 꿈에서는 돼지꿈 용꿈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미꾸라지 꿈이 길몽입니더. 지 소망은예, 꿈에서는 길몽(吉夢)이고, 현실에서는 길어(吉魚)가 되는 것입니더. 

길몽도 흉몽으로 바꿀 수 있고, 흉몽도 길몽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생각과 의지 아닙니꺼? ‘남의 흉이 한 가지면 내 흉은 열 가지’라 했습니더. 다른 사람의 잘잘못을 가리기 전에 나는 모자람이 없는지. 나부터 올곧게 세웠으면 좋겠습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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