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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장영주]"어디 사람 없소!"(사)국학원 상임고문, 한민족 역사문화 공원 공원장 원암 장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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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8.04  15: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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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영주 원장
1592년 4월 30일, 조선의 선조와 조정이 수도 서울(한양)을 버리고 황망하게 서북쪽으로 떠났다. 그로부터 1년에서 딱 열흘이 모자란 다음해 4월 20일, 영의정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1542~1607)은 명나라 장수 이여송과 함께 한양으로 돌아온다.

'징비록懲毖錄'은 그때를 이렇게 서술한다.
"나도 명나라 군사들을 따라 성안으로 들어 왔다. 적군은 하루 전날 성을 떠났다. 성안에 남아 있는 백성을 보니 백 명 중에 한 명이 겨우 살아남은 정도였고, 살아남은 사람도 모두 굶주리고 병들어 얼굴빛이 귀신과 같았다. 날씨는 매우 더웠는데 성안은 죽은 사람과 말의 시체가 곳곳에 그대로 드러나 있어 썩은 냄새와 더러움으로 가득 찼기 때문에 사람들은 코를 막고 지나갔다. 나는 먼저 종묘에 나아가 통곡하고, 그 다음 제독(명나라 장수 이여송)의 처소로 가서 그에게 문안드리러 온 여러 신하들과 한참 동안 소리내어 통곡을 했다."

   
▲ 김구, 어린이의 발전상.<원암 장영주 작>
'드라마 징비록'에서는 유성룡이 한양을 다시 밟은 그날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사방의 건물들은 불타고 없어지고, 널려있는 것이 백성들의 시신이고, 산 사람의 기척이 없는 ‘수도 한양’을 유성룡은 이리저리 넋 놓고 돌아다니다가 애통하게 소리를 지른다.
"어디 사람 없소?"
어딘가에 살아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제발 좀 나타나달라는 간절한 부탁이고 애절한 호소이다. 선조는 한양이 어느 정도 정비가 된 그해 10월 1일 입성한다.

명나라를 향하여 수없이 머리를 조아리게 했던 "나라를 다시 건국하도록 베푼 은혜"라는 '재조지은再造之恩'의 진의는 무엇이었나? 명나라는 조선의 애타는 기대를 버리고 사실상 '분할역치分割易置'를 추진하였다. 한강 이남인 전라, 경상, 충청, 경기는 일본이, 한강 이북인 함경, 황해, 평안, 강원도는 명나라가 직접 분할하는 방안이었다. 이를 반대하는 임금 선조를 교체(역치)해 버리겠다는 비정하고 검은 속내였다. 남북분단은 이미 400년 전에 우리도 모르게 명나라와 일본의 협상 테이블에서 논의되었던 것이다. 더욱 경악할 수밖에 없는 사실은 이 은밀한 회담과정에서 조선은 완전하게 배제되었다는 점이다. 조선은 사실상 지도에서 사라질 운명이었다.
서애 유성룡은 홀로 이 거대한 음모를 간파하였고, 왜군을 섬멸할 기회를 수없이 흘려버린 채 시간만 보내는 ‘아버지 명나라 군대’와의 힘에 부치는 갈등에 처한다. 이 비극의 가장 큰 이유는 조선 조정의 허약함에 있었다. 조선의 흩어진 내정이 임진왜란, 병자호란의 외침을 알고도 못 막은 것이다.

국가는 전체를 위한 큰 비전과 뜨거운 사명감 없는 지도층이 오직 자신들의 붕당의 권력을 위한 사리사욕을 채우는 만큼 썩어 가는 법이다. 1589년(선조 22) 서인의 총수 송강 정철은 ‘정여립鄭汝立의 난’을 이유로 선조를 내세워 ‘기축옥사’를 벌린다. 3년 동안 나라의 인재 1천 여 명이 사라진다. 서인과 동인의 피비린내 나는 암투가 시작된 것이다. 심지어 선조는 전쟁 중에도 ‘이몽학의 난’에 연루되지도 않은 절세의 명장 김덕령과 그 수하들을 대역죄로 몰아 비참한 죽음으로 내몬다. 빗자루 하나도 내세워야 하는 전장에서 의병장 김덕령의 비극을 보고 홍의장군 곽재우와 이순신 장군은 전쟁 이후 선조와 조정이 자신들을 그냥 두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강력하게 예감한다.

임진왜란은 근세조선 개국 이래 초유의 대 비극이 되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38년 뒤, 조선은 이번에는 북쪽으로부터 청나라의 침입을 받아 병자호란이라는 더욱 처참한 비극을 초래한다. 이때, 청나라 군에게만 40만 명 이상의 백성이 포로로 잡혀간다. 세계사적인 참극이다. 그로부터 조선은 청나라가 망하는 날까지 약 3백년간 청의 속국이 된다. 청나라로부터 겨우 벗어나자 1910년 경술년, 이번에는 일본에게 아예 나라를 빼앗겨 빈사의 노예가 된다.

36년 뒤인 1945년 8월 15일 외세의 힘으로 광복이 되지만 그 후유증은 속으로 곪아 극심해진다. 남의 생각에 놀아난 사상투쟁으로 남과 북이 격렬하게 갈라선다. 결국 1950년 6월 25일 초유의 동족상잔의 비극에 휩싸여 지금까지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 되어 있다. ‘정전협정’의 테이블에서 ‘대한민국’은 철저하게 소외 되었다. 소위 ‘데쟈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나라엔 유사한 비극이 되풀이 되고, 더욱이 그 도는 점점 더 커가고 있다.

지금은 어떠한가. 일본은 대놓고 우리를 능멸하고 있고, 동족이라는 북한도 틈만 보면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주변의 강대국인 중국, 미국, 러시아도 우리의 통일과 번영을 반가워만 하고 있을까? 그런 와중에도 우리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은 끝없이 분열하고 있다. 또한, 젊은 병사들에게는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키라고 지시하는 장군들, 그리고 공무원 70여명이 '방위산업 비리’로 1조원에 가까운 혈세를 착복하였다. 여기에는 온 국민이 대대로 존경하는 참된 애국자의 후손도 연루되었다고 한다. 참으로 민망하여 하늘 보기가 부끄럽다.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es)는 ‘참다운 사람’을 찾기 위하여 대낮에도 등불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인인인인인人人人人人’ 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라는 잠언이다.
또다시 이 땅에 ‘어디 사람 없소!’ 라는 말이 들려서는 안 된다.
하루빨리 우리의 국학정신인 효, 충, 도를 생활에서 실천하는 홍익인성영재를 양산해야 하는 절대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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