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왼쪽
오른쪽
> 사람들 > 계룡수필회 '수필산책'
[계룡수필]'사자(使者)의 배'윤정희/ 계룡수필문학회원
거제타임즈  |  geojetimes@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5.08.07  15:17:31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사자(使者)의 배
                                                                                         윤 정 희

   
 
밤이 깊었다. 하루의 피곤함이 달콤한 수면 속으로 서서히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벨소리에 놀라 눈을 뜨지 못한 채 수화기를 더듬었다. 잠결에 불안한 마음이 엄습했다. 수화기 저편에서 언니의 애잔한 흐느낌이 들렸다. 순간 가슴이 끝없이 내려앉았다.

추석을 이틀 앞두고 넷째 형부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다. 예기치 못한 일은 아니었어도 그렇게 쉽게 이승을 떠나실 줄은 미처 몰랐다. 얼마 전만 해도 끼니도 잘 챙기시며 회복의 기미가 보인다더니… 밤에 자다가 받은 갑작스런 전갈에 정신이 멍멍해 옆 사람에게도 전할 말을 잊어 버렸다.

노년에는 두 사람이 서로 의지하며 살았다. 어느 순간 한 사람은 저승으로 가고 한 사람은 이승에 남게 되었다. 떠난 사람이야 지금껏 가위 누르던 올무를 훌훌 벗어던진 형상이지만 남은 이는 떠난 사람의 몫까지 떠안아야 한다. 어느 날 혼자된 사람은 갑자기 들이닥친 절망감,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한다는 대책 없는 막막함으로 남은 세월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이런저런 염려로 지샐 언니의 안위가 걱정스러워 며칠 동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지난 봄 언니들이 위중하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날아왔다. 막내인 내가 희수(喜壽)이니 위 언니들은 건강이 온전할 리 없다. 여름내 자매들이 살고 있는 섬, 후미진 어느 포구에 자리를 마련한 사자(使者)의 배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밀려왔다. 연세가 있으니 자연의 순리라 여기면서도 가슴은 늘 허전하고 무거웠다.

더위가 한풀 꺾이고 가을이 왔다. 상큼한 마음은커녕 병중에 누워 있는 동기간들을 생각하면 자꾸만 울적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죽음으로 갈라서면 몇 억겁을 지나도 다시 만날 수 없으니 떠나보내고 남은 자들은 영원한 이별의 슬픔에 오열할 것이다.

갑자기 혼자된다는 외로움이 뼈 속까지 스며든다. 그러나 외로움을 두려워하고 외면해서는 하나 된 삶을 만들어 갈 수가 없다. 멋모르고 둘이 만나 묵묵히 걸어온 길일뿐 영원히 같이 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언니도 슬픔을 떨치고 잰걸음으로 빠져나와 남은 삶을 꿋꿋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런 나의 바람을 형부도 생전에 좋아했던 처제를 이율배반이라 탓하진 않을 것이다.

한 가족사의 희로애락이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한때는 늙지도 죽지도 않을 것처럼 형제자매들의 사이가 한 치만 어긋나도 맏형의 훈계가 떨어지던 시절이 있었다. 맏이와 막내의 나이 차이가 십오 년이다. 한번은 철없는 막내가 큰 형한테 맞서다 호되게 야단을 은 적이 있다. 돌아서서 꼬리로 태어났음을 탄하며 혼자 억울해서 막 울었던 기억도 지금은 새롭고 그리울 뿐이다. 맏형이 자리에 누워 영영 일어나지 못하니 그의 내리사랑이 대단했음을 가슴이 저리도록 실감한다.

정말 죽음은 가까이 있는 걸까. 어린 시절 할머니는 늘 ‘대문 밖이 저승이라’는 노래를 부르셨다. 죽음이 뭔지도 모를 나이에 그 애잔한 노래를 들을 때마다 어린 나는 왠지 슬퍼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할머니 입을 막곤 했다.

세월은 소리도 없이 많이 흘렀다. 지금 내 나이가 그때의 할머니 나이로 다가가고 있다. 이웃에 무슨 나쁜 소식만 들어도 자신을 돌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하물며 형제들의 죽음을 자주 접하게 되니 내 나이도 수월찮다는 것일 게다.

기다리지 않아도, 막지 않아도 강물의 흐름처럼 찾아오는 것이 죽음이다. 예견이 되었든 그렇지 않든 어느 장소 어느 순간에 소리 소문 없이 찾아드는 사자의 배에 영혼을 싣는다. 모두가 함께한다는 의식도 한갓 찰나 같고, 육신은 마른가지 나뭇잎처럼 사라져간다. 오직 먼저 간 그 사람의 삶의 흔적만이 남은 자에게 아쉬움으로 있을 뿐이다.

살아서 항상 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움직일 때 인생무상의 이치를 바로 알았다면 우리의 매 순간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절절함을 가슴 깊이 느꼈을 텐데.

만추의 보도에 낙엽이 뒹군다. 낙엽은 자신이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새 봄을 기약하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사람은 죽으면 무엇을 마련해 놓고 떠나는 것일까. 아마도 그리움을 남기고 떠날 것 같다. 함께 했던 인연들에게 추억의 그림을 한 장씩 남겨 놓듯이 하고.

 

 

거제타임즈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최신 인기기사
1
[사건] 거제 '방화' 추정 택시 화재…승객 1명 숨져
2
[이사람] "자유민주주의·통일의 길, 멈추지 않고 나아간다"
3
거제시 고교야구부 창단 추진
4
2020학년도 수능 성적표 배부…경남 수능 만점자 1명
5
[기고] 1,000만 관광객 유치, 정답은 '도로'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명칭 : 인터넷신문 | 등록번호 : 경남 아009호 | 등록연월일 : 2005년 11월 10일 | 제호 : 거제타임즈 | 편집인 : 박현준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현준
발행인 : 김형택 | 발행연월일 : 2003년 4월 16일 | 발행소: 경남 거제시 서문로 72 (고현동) 태원회관빌딩 6층ㅣ전화: 055-634-6688 / FAX: 055-634-6699
Copyright © 거제타임즈. All rights reserved. 문의메일 : geojetime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