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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심인자]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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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8.31  14:4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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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부터


                                                                                                                                            심 인 자

   
 
동행할 이가 없다. 윗동네 사는 친구는 외손녀 봐 주러 가서 출타중이고 웬만하면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 지인도 오늘따라 교육을 갔다. 앞집 이웃도 외출 중인지 초인종을 암만 눌러도 기척이 없다.

차일피일 미루어 온 사이 볼일이 몇 가지나 더 늘었다. 꼭 해결해야 할 일이니 부득불 시내까지 나가야 한다. 머리도 감아야 하고 헐렁한 옷도 갈아입어야겠다. 혼자 나가기 싫어진다. 택시를 탈까, 버스를 탈까. 그것도 아니라면 운동 삼아 천천히 걸어갈까. 친구를 불러 차를 얻어 타면 편할 텐데. 오늘따라 부재중인 친구가 그립기만 하다. 무슨 일이든 친구나 지인들과 같이 다니다보니 혼자 걷는 길이 오늘따라 외롭고 어색하기만 하다.

시장 입구에 다다르니 여간 부산스러운 게 아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장날이다. 그냥 지나쳐야 할 것을. 바쁜 일부터 처리하고 나서 장구경이나 하자는 마음과 달리 나의 눈길은 벌써 시장 한가운데 있다.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뭔가를 보고 있다. 그 틈을 헤집고 앞자리로 들어서는 순간 정신없이 빠져들고 만다.

난장에 늘어선 보물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본다. 숨이 막힌다. 이 많은 보물들을 다 가질 수 있다면. 욕심을 제어할 수가 없다. 종류 또한 얼마나 다양한지. 크고 작은 항아리와 그릇들. 나무로 잘 다듬은 코끼리 상. 청동으로 만든 바이올린 켜는 소녀상. 단단한 근육질이 잘 드러나게 섬세하게 조각된 황소. 흙으로 구은 토우들까지. 넋을 잃고 빠져들어 무슨 일로 외출했는지조차 까맣게 잊어 버렸다.

이 많은 보물 중에 어떤 것을 고를까 고민이다. 하나 같이 다 마음에 드니. 질박한 컵도 갖고 싶고 운두가 낮은 타원형의 접시도 마음에 든다. 유약을 바르지 않은 투박한 질그릇도 괜찮아 보인다. 옆에 익살스럽고 해학적인 표정으로 웃음기를 잔뜩 머금은 토우가 눈을 찡긋한다.

눈으로 훑는 것도 성에 차지 않아 아예 손끝으로 감상중이다. 큰 접시 작은 접시 포개어도 보고 손잡이가 투박한 컵을 마주 붙여놓기도 한다. 코끼리의 코도 만져보고 황소의 우람한 근육도 결 따라 쓰다듬는다. 그러다 항아리에서 아예 멈춘다. 아래위로 좁고 배가 부른 술항아리다. 매끈하여 흠집 하나 없다. 유약을 발라 광택 또한 그만이다. 손끝으로 둥근 선을 따라 한 바퀴 돌아본다. 정말 마음에 든다.

늘 토우가 우선인데 오늘만큼은 항아리가 나의 눈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참 마음에 든다. 연한 회색 바탕에 붉은색 꽃 그림이 환하게 눈에 들어와 유독 마음이 간다. 같은 형태의 항아리 하나를 더 고를 생각이다. 그런데 일이 틀어졌다. 다들 비슷한 안목을 가졌는지 눈에 들어온 항아리를 집으려는데 다른 사람이 먼저 점찍는 게 아닌가. 양보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슬며시 내 항아리를 그에게 민다. 의아한 시선으로 날 쳐다본다. 고민 끝에 양보한 건데. 그는 애초 선택한 항아리 하나만 들고 유유히 구경하는 사람들을 비집고 빠져나간다. 개운하지가 않다. 꼭 갖고 싶었는데. 아쉽지만 다른 물건을 골라야 할 것 같다. 하나 남은 항아리는 그 순간부터 나에겐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차선으로 고른 접시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신났다. 항아리가 조금 아쉬웠지만 이미 혼자가 아니니 외로울 것도 허전할 것도 없다. 저녁식탁에 접시를 올렸다. 큰 접시는 나물 세 가지를 소담하게 안았고, 중간 접시는 배추김치를 멋스럽게 보여준다. 작은 접시는 달걀말이를 앙증맞게 품고 있으니 갑자기 식욕이 인다. 머리를 맞대고 있는 접시들이 음식 맛을 한층 더 돋우게 한다. 참 다정도 하다. 새 식구가 들어와 식탁을 빛내주니 어찌 맛나지 않을까.

오래전부터 난장에 펼쳐진 물건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그릇이, 오줌싸개 토우가, 국화 그림이 그려진 컵이 차례로 우리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식구가 되었다. 다양한 형태의 토우, 크고 작은 항아리, 같은 모양의 그릇, 쓰임새가 다양한 컵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하나는 거의 없다.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을 제외하면 한 벌 이상이다. 길쭉한 항아리 옆에 같은 그림, 같은 색의 둥근 항아리가 마주보며 놓여 있고, 주둥이가 긴 주병 옆에 짧은 주병이 다정히 서 있다. 토우도 마찬가지다. 둘 혹은 셋 이상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사이에서 두 손주가 재롱을 피우고, 쟁기 끄는 농부 옆에 아기 업은 아낙이 새참을 이고 있다. 훈장님에게 야단 듣는 제자의 눈에 눈물도 보이고, 농부의 뒤를 따르는 소가 긴 울음을 운다. 시끌벅적해서 좋다. 같이 있으니 외롭지 않다.

언제부터인가 숫자 하나를 싫어하게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문제가 아닌가. 그래도 난 하나가 싫다. 아무리 귀하고 예뻐도 욕심을 내지 않는다. 다른 이유는 없다. 하나는 외로워서이다. 기댈 데가 없어서이다. 꼭 둘을 고집하는 게 아니다. 둘 이상이면 된다. 둘부터 힘이 난다. 서로 기댈 수 있고 채워 줄 수 있어서 좋다.

선물을 받아도 하나는 사양한다. 꼭 둘부터이다. 각기 하나를 가지게 될 경우에는 하나를 가진 다른 사람에게 내 것 하나를 건넨다. 그래서 우리 집엔 하나인 인형도 없고 하나인 컵도 없고 하나인 쟁반이나 접시를 비롯한 그릇도 없다.
시간을 들여 애써 고른 항아리 하나를 두고 온 것도.

░ 약력 ░

*《수필과 비평》 신인상 수상<1999. 5.>
*계룡수필문학회 회원
*수필과 비평 작가회 회원
*수필과 비평 문학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필집 《야누스의 얼굴》《왼손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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