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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스피릿] 동아시아 대전의 승리자 을지문덕(乙支文德)(사) 국학원 상임고문, 한민족역사문화공원장 원암 장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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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30  09:4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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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영주 원장

우리 민족 역사상 가장 자랑스러운 승전을 꼽으라면 단연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薩水大捷)'일 것이다.

수나라 역사서인 <수서(隋書)>에 따르면 수나라 황제 양제(煬帝)는 612년 정월에 고구려 원정에 나선다.

이때 양제가 동원한 군사가 24군에 113만 3천 800명이라고 한다. 군량 등 물자 수송에는 그 2배의 인원이 동원되었다고 하니 거의 300만에 이르는, 당시까지는 세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원정군이었다.

호기롭게 바다와 육지로 쳐들어온 수나라 군대였으나, 을지문덕이 지휘하는 20만 명의 고구려군과 조의선인들에 이하여 '살수'에서 궤멸된다.

'살수대첩'이 얼마나 큰 승리였는지, 살아서 요동성(現 하북성 창려)으로 돌아간 수나라 병력은 겨우 2천7백여 명에 불과할 정도였다. 세계전쟁사에서도 첫손가락에 꼽힐 뛰어난 승전이었다.

그 뒤로도 수나라는 계속 고구려를 침공해 온다.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구축하고자 했던 한족(漢族)들에게 동북아시아의 또 하나의 황제국인 고구려는 마치 하늘의 두 개 태양과 같아, 함께 존재할 수 없는 상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을지문덕이 키워온 연개소문, 양만춘 장군 등에 의하여 번번이 격퇴당한다.

을지문덕의 생년월일은 전해오지는 않지만 고구려 26대 영양왕(590년~618년 재위)에서 평원왕 시대에 활동하였다. '살수대첩'이 612년에 일어났으니 이 위대한 영웅의 생존 시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수나라의 장수 우중문에게 보낸 시를 보면 무인뿐 아니라 문인으로서 을지문덕의 재능도 탁월함이 느껴진다.

"그대의 신기한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했고, 오묘한 계획은 땅의 이치를 다했노라. 전쟁에 이겨서 그 공 이미 높으니, 만족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바라노라."

이 시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은 한민족의 모든 리더들이 그러했듯이 을지문덕 장군도 '천지인 사상'에 기인한 사고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 그림 : 장영주
위대한 장군인 그가 을지'무'덕이 아닌 을지'문'덕인 이유는 이처럼 문장에도 능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는 우리 민족의 자랑인 <삼일신고>의 해설서를 남길 정도의 대철학자였다.

을지문덕이 '홍익인간'의 삶을 살고 있었음이 그가 지은 삼신일체경에 잘 드러나 있다. <태백일사>

삼신일체경 ‘三神一體經’
지은이 을지문덕

-전략-
나(을지문덕)는 이러한 말이 세상에 있음을 안다.
삼신일체의 기운을 받아
이를 나누어 성품. 목숨. 정기를 얻으니,
광명을 마음대로 하고 우러러 움직이지 않으나,
때가 되면 감동이 일어나니 道가 이에 통한다.
이것이 몸이 되어 삼물三物인 덕德, 혜慧, 력力을 행하고,
화하여 삼가三家 인 마음, 기운, 몸이 되며,
즐겨 삼도三途인 느낌, 고름, 부딪침을 채우는 이유이다.
그 중요함은 날마다 재세이화하고 정수경도靜修境途하여
홍익인간弘益人間을 생각함에 있다.

1935년 10월 1일~3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김준연(金俊淵)의 답사기'에 따르면 을지문덕의 묘는 평안남도 강서군 잉자면 2리 현암산 동쪽 기슭에 있다.

그곳에서 을지문덕의 후손 돈종각(頓宗珏) 씨도 만났다고 한다.

평안남도 대동군 대보면 태평외리에 살고 있던 돈종각 씨는 자신의 조상인 을지문덕의 묘가 있다는 평안북도 의주군 옥상면 자물촌 싸리골에 찾아가 보았다.

그러나 그 묘는 을지문덕의 조상인 을파소(乙巴素)의 묘였고, 거기에는 을파소의 조부 을두지(乙豆智)의 묘도 있었다고 한다.

을지문덕의 가문은 고구려 2대 '유리 왕'의 대보대신 '을소(乙素)'부터 역사에 기록된다. 이어서 '을두지', '을음', 명재상 '을파소', '을밀' 선인, 을무, 평양 석다산으로 이주한 '을우'를 아버지로 '을지문덕'이 태어난다.

조상 대대로 모두 문무겸전하여 나라가 부르면 목숨으로 충성하고, 아니면 초야에 묻혀 평생 학문과 농사일로 '홍익인간'의 생을 보낸 고구려의 대들보와 같은 가문이었다.

그러나 고려 인종에 이르러 '을 씨'는 돌연 '돈 씨'가 된다. '묘청(妙淸)'의 봉기에 을지문덕의 15세손 '을지수(乙支遂)', '을지달(乙支達)', '을지원(乙支遠)' 3형제는 의병으로 '김부식'의 관군을 도왔다.

그 공로로 인근 돈산(頓山, 충남 천안시 인근)에 봉해져 임금으로부터 '돈 씨'를 하사받았기 때문이다.

나라와 체제와 인물은 바뀌어도 이윽고 인류를 살릴 한민족의 '홍익인간 철학'은 대를 이어 영원히 퍼져 나가야 한다. 그것이 '한민족역사문화공원'의 설립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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