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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수필:박춘광] '뚜쟁이'계룡수필문학회원/수필가/거제타임즈 사장
박춘광  |  geojetime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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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2.09  02:3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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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뚜쟁이 
                                                                                                                    박춘광
   
 
내일 바다로 나가 호핑투어를 알선하겠다며 예약금 천오백페소를 받은 ‘뚜쟁이 마뉴엘’ 이 한 시간째 약속 장소에 안 나타난다. 뉴스에서나 흔히 듣던 외국 휴양지에서 발생하는 현지인들의 속임수에 당하는 경험을 해보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이리 저리 둘러본다. 한 쪽 구석엔 그의 신발 좌판만 비닐에 쌓인 채로 있다. 옆 가게 주인에게 물어도 모른단다. 천오백 페소는 우리 돈으로 오만 원도 채 안 돼는 금액이다. 여행길에서 세 사람이 좋은 경험을 한 대가로 생각하면 크게 아까워 할 정도는 아니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일이 괘심하다. 젊은 놈이 가무 짭짭한 얼굴에 콧수염에다 말소리도 컬컬해 ‘제법 별난 물건이다’ 생각했었다. 한국인 관광객과 얼마나 어울렸던지 웬만한 우리말을 다 알아듣고 말하기도 곧잘 했다. 돈 되는 일이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던 놈이 얼마 되지도 않는 돈만 먹고 안 나타나니 큰돈은 못 벌겠다며 우리는 기대를 접을 판이다. 호핑투어를 주선하면 분명히 오십 불 정도인 2천 페소 이상을 얻어먹을 수 있다고 큰소리치더니 꼬리를 내렸나 보다. 그로서는 제법 짭짤한 수입일 텐데 안 타나나니 참 이상했다. 보라카이 가든 호텔 후문 화이트비치에서의 일이다. 일행들이 ‘왜 혼자서만 왔느냐?’는 질문이 싫었었는데 다행히 경북에서 온 50대 후반 친구 두 명과 한 무리가 되어서 다행이었다. 우리 세 사람이 삼십대 중반 젊은 필리핀 현지인을 뻘줌한 자세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전날 오전이었다. 호텔에서 마련해 놓은 해변 야외 벤치를 이용하고자 우리 셋은 맥주 한 잔 씩을 시켜 입가심을 했다. 술을 못하기도 하고 운동화에 모래가 자꾸 들어와 불편해서 바로 옆에 있는 신발가게로 다가가 슬리퍼를 구입했다. 그는 구멍가게랄 수도 없는 초라한 슬리퍼 판때기 주인이다. 한 켤레 사주었더니 쪼르르 따라와 말을 건네기 시작한다. 접근하는 폼이 여간 경험이 많은 놈이 아니다. 아내로 보이는 여자에게 신발 판때기를 맡겨놓고는 곁에서 계속 수작을 부린다. 우린 제법 나이도 있어 보이는데 남자만 셋이니 그가 욕심내기 딱 좋은 상대였던가 보다. 세일링 보트, 맛사지, 다이빙 등 모든 주선을 다 할 수 있단다. 그리고 자기에게 맡기면 여행사 가이드를 통해 지불하는 비용의 절반으로도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고 유혹한다. 그렇지 않아도 도착하기가 무섭게 가이드가 주의를 주었다. 현지에서 그런 뚜쟁이 꾐에 빠지면 만약 무슨 불상사가 생기는 경우 보험처리는 물론이고 경찰을 통한 안전장치가 전혀 되지 않으니 조심하라는 경고를 들었다.

그러니 그의 접근에 우리는 시큰둥하기만 했다. 그런데 패키지 상품이지만 휴양지엔 자유시간이 많은지라 적당한 볼거리, 즐길 거리를 찾던 터라 돛단배를 타고 한 시간 동안 섬 구석을 조망하게 해 주겠단다. 2키로가 넘는 흰 백사장 이쪽에서 저쪽 끝까지를 쭉 둘러보면 섬 절반 정도는 다 본단다. 여행사 체험 권유에는 1인당 오십 불로 되어 있었는데 세 명 합쳐 오십 불. 우리는 속는 셈 치고 한번 타 보자고 의기투합 했다. 그는 약속대로 우리 기대를 충족 시켜 주었다. 사전 준비가 덜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출발한 탓에 반바지 아랫도리가 볕에 타서 좀 불편함을 겪긴 했지만 그런대로 재미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를 신뢰하게 된 것이다. 다음 날에는 스톤 마사지를 반값에 주선해 주었다. 샵 규모에 조금 차이는 있었으나 마사지 내용에는 전혀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비용은 절반 값이다. 미리 가이드를 통해 한번 경험했던 터라 비교해 보니 별로 손색이 없다. 그래서 4일째 되는 날에는 호핑투어를 가기로 하고 예약금조로 오백페소씩을 각자 부담해 약속을 했고, 저녁 식사 후 일곱 시에 비치파라솔 앞에서 만나 추가비용을 주기로 약속을 했는데 안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 편익만 추구하다가 여행사 경고를 지키지 않아서 당한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포기하려 했다. 신발 판때기도 그의 아내도 보이질 않으니 궁금증은 더했지만 도리가 없다. 저녁 손님들이 제일 붐빌 시간인데 안 나타나니 ‘당했구나.’하고 실없이 웃었다.

그런데 한 시간 반이 조금 지난 후다. 이 친구가 숨을 헐떡거리며 달려온 것이다. 연방 미안하단다. 내일 호핑투어를 주선하기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둘째 아들 놈이 갑자기 배가 아파서 내일 큰 병원으로 데려가야 할 형편이라고 사정을 털어 놓는다. 아들을 병원에 두고 약속 때문에 급히 달려왔다니 할 말이 없다. 이 작은 섬에서는 도저히 치료가 어려워 내일 뭍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단다. 이 나라도 의료보험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이용하는 사람은 부유층의 경우고 먼저 약국을 찾았다가 병원으로 가지만 큰 병인 경우에는 포기하기가 일수란다. 겨우 진정을 시키고 식당으로가 저녁밥을 사 주었다. 이런 저런 그의 가정사며 신변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어릴 때는 아들 다섯에 딸 셋을 둔 부모 슬하에서 열 가족이 함께 살았단다. 열여덟에 결혼해 자기도 아들 셋을 낳았다. 형제 몇은 독립해 나갔지만 현재에도 식구가 이십 명이 넘는단다. 한 사람이 열여섯이나 자식을 낳은 가정도 있는 이곳에선 자기네는 보통 수준이란다. 단 한명도 애를 낳지 않으려는 우리 사회엔 국가가 나서서 출산을 권장하고 장려금까지 주는데 너무 판이하다.
 
필리핀은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고는 있지만 스페인이 지배하면서 천주교가 일찍 전래돼 낙태는 절대 금지란다. 미국이 지배하면서는 영어권 나라가 됐지만 문맹률도 높다.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 사회규범 탓에 아이가 생기면 생기는 대로 전부 낳아 기르다 보니 식구가 많단다. 삶도 팍팍하고 교육이나 삶의 질이 말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를 비관하지 않는 낙천적인 민족성이라는 설명이다 그도 현재 생활에 불평하거나 도피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간다고 한다.열악한 관광지 환경이 오히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담고 있어 세계인들이 모여들고 있지만 보라카이는 도시 기반시설이라고는 너무나 형편없다 섬은 좁고 많은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교통질서랄 것도 없을 만큼 엉망이고 운송수단도 자전거, 오토바이, 전기차, 자동차 등 뒤섞여 복잡하기 짝이 없다. 도로라는 것이 하루에도 몇 차례 비가 내렸다 개었다 하는 탓에 물구덩이가 되어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호텔 앞 골목이 바로 물구덩이라도 그들은 전혀 불편해 하지 않았다. 그래도 자기는 장사라도 하면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그럭저럭 살 수 있단다.

그러면서 아들의 큰 병원 수술비가 얼마일지 걱정을 한다. 우리는 세 사람이 백 불을 모아 사천육백페소로 바꿔 치료비에 보태라고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에겐 큰돈이다. 이런 자세로 관광객들에게 성의를 다하면 분명히 이 바닥에서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위로했다. 새까만 큰 눈동자에 눈물을 글썽이는 것을 보면서 어린자식을 살리고자 하는 아버지의 진한 부성애를 느낄 수가 있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자식에 대한 부모의 마음은 꼭 같았다. 다음날 여행사 가이드를 통해서 호핑투어를 즐기다가 떠나왔지만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우리는 뚜쟁이 마뉴엘 아들이 어떻게 됐을까 궁금했다. 며칠 지나서 아들 수술이 어떻게 됐는지 전화라도 한번 해 봐야겠다. 아무쪼록 어린 생명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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