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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수필:우광미] 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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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5.23  11:3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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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물 
                                                                                                                                             우 광 미
                                                                                                                        iris3630@hanmail.net
   
 
이곳은 모든 것이 정지해 있다. 빛과 그림자가 공존한다. 과일, 꽃, 채소, 주전자, 구두….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물들이 놓여있다. 화실의 풍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정물대다. 지난 시절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지 바라보기를 하던 곳이다.

생각이 흐트러질 때엔 친구의 화실에 와서 정물대를 바라보곤 한다. 시간을 칼로 자를 수 있다면 칼에 베인 시간이 이렇듯 창백할까. 정물대에 깔린 광목천 위로 채도를 잊은 정물들의 그림자가 앉아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속의 그림자도 직면하게 된다. 이렇듯 자신을 잘 바라볼 수 있을 때는 멈추어 있는 시간일 것이다.

처음에 나는 모든 정물들을 잘 그리고 싶었다. 과일이나 채소처럼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은 조금의 연습으로 가능했다. 그러나 사람의 손길이 간 것들이 갖는 내면의 기저를 읽어내기란 쉽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낡은 구두는 눈길이 자주 갔지만 만만하지 않았다. 빛바랜 구두는 끈이 윗부분으로 갈수록 느슨하게 풀어져 그 끝이 바닥에 닿아 있다. 접착제로 붙이고 재봉틀에 기워진 앞굽은 지난 세월을 말하려는지 바닥과 약간 들떠 있고, 뒤 굽은 삶의 무게가 쏠려 더 닳은 방향 쪽으로 기울었다. 구두 안은 깊은 음영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구두의 주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잠시 유추해보다 이내 시선은 나의 발로 옮겨진다.

내 발가락은 안으로 굽어 있다. 셋째 발가락부터 더 굽어 있다. 꼭 끼는 신발을 신어 왔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나의 시선은 바깥에 머물러 있었다. 편안함보다 예쁘게 보이는 신발을 신었다. 힐을 신는 사람들은 대부분 발가락이 굽어 있다. 모두 신발 탓이려니 생각했었다. 하이힐에 펑퍼짐한 앞코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구두에 발을 길들여야 했던 결과다. 맨발이 되는 것이 두려웠을까. 발가락처럼 마음도 굽어 있었나보다. 내 삶은 작은 구두에서 기형되었는지도 모른다. 남을 의식해서 때로는 내가 아닌 나로 살아온 순간들도 신발 속에 숨어 있다.

신발은 바닥과 맞닿는다. 내려간 만큼 삶을 절실하게 살아가게 하는 바닥의 의미를 안다. 이런 신발의 입장이 되어본 적이 있었던가. 그 때 나는 어렸고 낡은 구두 속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왜 자주 미술 시험에 등장했었는지도. 기억나는 건 구도와 형태는 내 것이 더 좋은데 점수는 친구가 더 좋았다는 것이다. 그때 선생님은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진실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신발은 주인과 함께 한다. 거친 돌밭을 걸어도, 세상의 오물을 맨몸으로 부딪쳐도 묵묵히 그 길을 걸어야 한다. 주인의 못난 발가락도 숨겨주고 잘못 걸어간 길도 품어준다. 어디든 삶의 끝이 척박한 곳이라도 순종하며 따른다. 이런 심성이라면 주인의 실수로 밟힌 이름 모를 들꽃의 아픔을 위로하는 기도소리도 들릴 것만 같다.

정물대 위는 지난 삶이 있다. 돌아봄과 반추의 시간들이 머무르는 곳이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친구는 구두의 독백을 듣고 주름마다 생긴 번뇌와 상흔들을 알아차렸던 것 같다. 그 만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그것에 구두 주인의 삶을 얹어 놓았던 것 같다.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 것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그림은 생명을 가지게 되었으리라.

인지한다는 것은 관찰하고 그 깊이를 가늠하는 것이다. 비단 그림만이 아니라 글을 쓰는 이치도 이와 무관하지 않는 듯하다. 보통사람들은 사물의 외면적 모습만 볼 수 있지만 심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의 본질을 읽어 낼 수 있다.

걸을 때에는 나아가는 일에만 전념했다. 신발을 벗어두고 지난 세월을 되작여본다. 이젠 구두를 탓하지 않으련다. 온전한 나와 만나는 것을 두려워한 자신을 돌아본다. 맨발이 되는 것이 두렵지만은 않다. 맨발이 된다는 건 가장 자유로울 수 있다. 오롯이 나를 만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마음을 가장 낮은 바닥으로 내려 본다. 설핏 두려움이 인다. 지금 내 삶도 누군가에게 읽혀지고 있지는 않을까. 어쩌면 우리 모두 누군가에게 정물로 읽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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