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제국 해군연합함대 사령관 도고 헤이하지로(東鄕平八郞)의 러일전쟁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1935년 일제 육군성과 진해만요항사령부에서 세웠다는 ‘취도기념비’ 철거를 놓고 시민단체와 지역주민, 지역언론들이 치열한 공방을 벌였지만 아직도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독수리 섬(鷲島)’이란 본래이름이 ‘불타는 섬(吹島)’이 되어버린 취도의 역사는 약 50여평 넓이에 세워진 높이 4m 둘레 2m의 콘크리트 탑신에 장식된 녹슨 포탄과 일본인 중장 이치무라 히사오(市村 久雄)가 썼다는 비문에 우리 근대사의 아픈 역사와 함께 오롯이 들어 있다.

3천평 안팎의 큰 섬이였던 취도는 1905년~1918년 사이 일제의 함포사격에 의해 약 80%가 사라져 버렸고 기념비가 세워질 무렵엔 남은 섬의 80%마저 또다시 부서졌다고 한다. 지금의 취도는 본래 면적의 약 2%에 불과하며 거기에는 한국인을 맘껏 조롱한 비문이 적힌 기념비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철거 및 제3의 장소에 역사건립관 설치 후 이전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했던 시민단체연대의 의지는 역사바로세우기는 있는 그대로 활용해야 한다는 반대입장의 주장과 현장에 기념관을 설치하고 일본인을 대상으로한 관광자원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지역주민들의 요구에 막혀 주춤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원폭 투하현장을 그대로 놔두고 원폭공원으로 만들어 과거를 잊지 말자는 일본이나 문화역사성과 현실적 이유 사이에서의 논란 속에 결국 철거를 택한 옛 조선총독부 건물 등의 사례는 각각의 사연이나 특징이 다를 수 있는 만큼 ‘취도기념비’의 처리에 참고는 될지언정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교과사적 모범답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념비의 철거를 주장하는 측도 반대하는 측도 아픈 역사를 돌아보고 반성하자는 취지는 물론 다르지 않다고 믿지만, 토론이나 협의가 반드시 상대방의 의견을 제압하고 나의 주장을 관철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서로의 입장차이를 확인한 만큼 이제는 거제시가 주관이 되고 시민단체 및 지역주민, 그리고 전문가 등이 모여 본질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결론을 내릴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취도기념비의 처리를 놓고 그동안 시민단체 지역 언론과 주민들로부터 나온 여러 가지 의견들 가운데 아직까지 검토되지 않은 몇가지 사실들을 소개하면서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먼저, ‘취도기념비’가 기념비인지 승전비인지 아니면 위령비인지에 대해 여러 가지 주장들이 나오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일제의 침략야욕을 미화하고 고무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오늘날에 와서 상당히 약화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풍수지리학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던 한국과 중국 일본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탑이나 건물의 위치를 결정하는데 있어 단순히 물리적 환경에 대한 적합성뿐만이 아닌 영적인 이유가 중요하게 작용하였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옛 조선총독부 또한 풍수지리학적으로 궁궐을 부수고 우리 민족의 정기를 차단할 수 있는 위치를 택했다는 설이 일부에서 제기된 적도 있고 국토의 혈을 차단하기 위해 일본이 국토의 영산 곳곳에 쇠말뚝을 박았던 것도 이미 사실로 확인이 되었다. 약간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신사참배의 부당성을 후세들에게 알리기 위한 교육현장으로 신사를 보존해야한다고 주장한다면 무척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침탈을 미화하고 전쟁을 고무하는 기념비와 같이 영적인 의미를 함께 가진 것이라면 그 자리에 그대로 둘 때는 신중하게 결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둘째, 역사적으로 또는 문화적으로 가치가 있는 건물이나 구축물을 기념물로 원형보존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취도기념비’의 경우 연구가치가 있는 근대건축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고 콘크리트와 포탄이라는 비교적 내구연한이 짧은 재료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소금바람과 눈비에 노출된 자연환경 아래에서 앞으로 수십년 이상을 원형 그대로 계속 보존하는 것조차 어렵다는 현실적 문제를 유념해야 할 것이다.

셋째, 기념비가 설치된 ‘사등면 창호리 산288번지’는 현재 연도교 공사가 진행 중에 있는 가조도에서 약 300여미터 떨어진 섬 안의 또 하나의 섬이며 험한 지형으로 인해 선박의 접안 또한 마땅하지 않은 상황이다. 역사교육장으로 활용한다고 해도, 관광지로 활용한다 해도 사람들이 찾아가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르는 곳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또한 수십명이 오르기에도 벅찬 좁은 면적에 기념관을 설치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넷째, 일본인을 대상으로한 관광지 개발로 활용하자는 안에 대해서는 진지한 고민이 뒤따라야 한다. 굳이 찾아오겠다는 일본인들을 내칠 이유는 없겠지만 그들의 입맛에 맞추어 관광지로 조성한다는 것은 취도의 치욕스러운 역사를 다시 한번 욕보이는 행동이 아닐까 싶다. 중국이 고구려사를 삼키려는 야심으로 동북아공정을 획책하고 동해와 동중국해에서는 일본과 중국을 대상으로 바다영토를 두고 총을 들지 않았다 뿐이지 피말리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따라서 취도의 역사적 조명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주체적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포로수용소유적공원과 연계한 역사관광상품으로 개발한다면 굳이 관광객 점유율이 불확실한 일본인이 아니라하더라도 충분한 경제성을 가진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논의주체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시민단체와 지역신문 관련 인사와 지역주민들이 논의의 전면에 나서다 보니 본질에서 빼 놓을수 없는 문화 역사 건축 해양 관광 등의 기술적인 문제에 소홀한 부분이 있었다는 점을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상과 같은 몇 가지 사실을 두고 볼 때 ‘취도기념비’를 현재의 위치에 그대로 보존하기에는 설치된 내력을 감안할 때도 부적절하며 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고 관광자원으로써의 가치도 반감된다고 하겠다. 따라서 취도가 잘 건너다보이는 (육상교통을 활용하게 될) 가조도 창호리에 역사기념관을 세우고 지역 내에 위치했던 또다른 일제의 잔재 송진포일본해군기념비(시청 지하실 보관)와 민족의 영산에 곳곳에 꽂혀있던 쇠말뚝, 조선총독부 건물의 축소모형 등과 같은 일제의 잔재들을 모아 함께 전시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방안은 현장성을 살리자는 지역주민 및 철거반대 측 입장의 요구에도 어느 정도 부합되는 방안이라고 생각된다.

돌하나 나무하나에도 경쟁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요즈음 각 도시들의 관광정책을 볼 때 이러한 기념관의 건립은 거제만이 가진 역사관광상품으로 특화가 가능하며 포로수용소유적공원과 연계하여 시너지를 창출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 또 하나 시민단체와 지역주민들 사이에 많은 논의가 오고 간 만큼 이제는 행정기관인 거제시가 주관이 되어 전체 지역사회의 의사를 아우른 후 합리적인 결론을 맺어주기를 다시 한번 당부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