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대우조선해양 매각 무산 과정에서 한화그룹이 산업은행에 지불했던 3,150억원의 이행보증금 중 일부를 돌려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한화가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추진하면서 산업은행과 양해각서를 맺고 3,150억원을 이행보증금으로 내걸었으나 계약이 무산 돼 보증금 반환을 둘러싸고 7년간 법정 공방을 벌여왔다.

그런데 대법원은 "산업은행이 돌려 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원심 판결을 깨고 "한화가 낸 보증금 일부를 돌려주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14일 한화케미칼이 한국산업은행과 한국자산관리공사를 상대로 "과거 지급했던 이행보증금을 돌려달라"며 낸 이행보증금 반환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보증금 일부를 돌려주라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 보냈다.

재판부는 "양해각서에서 이행보증금 몰취 조항을 두게 된 주된 목적이 최종 계약의 체결이라는 채무이행을 확보하려는 데 있었다고 하더라도 3,150억원에 이르는 이행보증금 전액을 몰취하는 것은 부당하게 과다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재판부는 "(이행보증금 전액을 몰취해도 된다는) 원심 판단에는 손해배상액의 예정 및 손해배상 예정액 감액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화는 2008년 산업은행이 보유한 대우조선해양 주식 9,639만주를 6조3천2억원에 사들이기로 하고 이행보증금 3,150억원을 우선 지급했다.

그해 12월 29일까지 최종 계약을 하기로 하고 위반시 이행보증금을 산업은행이 갖는다는 내용의 양해각서를 체결 했었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사태 등으로 인한 경제 여건이 급변하면서 한화가 최종 계약을 미루다 2009년 6월 18일 계약을 체결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해 왔다.

산업은행은 양해각서에 따라 한화가 지급한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았다.

이에 한화는 "산업은행의 비협조와 대우조선 노조의 반대로 대우조선해양을 확인 실사 할 수 없었고, 서프라임 사태로 금융시스템이 마비돼 자금조달이 불가능하게 됐다"며 소송을 제기 했었다.

한화측은 "대우조선해양 인수 확정 후 확인실사를 하지 못한 상황에서 최종 계약 체결전에 검토가 필요했던 최소한의 자료도 제공받지 못했다"며 "당시 금융위기로 인해 자금 조달비용이 늘어난 것은 맞지만 조달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고 자금 문제가 최종 계약 무산의 원인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1,2심은 "산업은행이 노조의 확인실사 저지를 해소 할 의무 이행을 게을리 했다고 볼 수 없고, 단순한 경제상황 변동으로 국내 금융시스템이 마비됐다고 볼 수 없다"며 한화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이 하급심과 달리 3천억원이 넘는 거액의 이행보증금 잔액을 산은이 가져가는 것은 과다하다고 판단함에 따라 한화는 보증금 일부를 돌려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한편, 구체적인 반환 액수는 파기 환송심(고법 심리)에서 결정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