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는 지금 1기당 6억2000만달러짜리 드릴십(이동식 원유시추장비) 2기가 하염없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고 매일경제가 19일 이를 단독 보도했다.

대우조선해양이 또다시 '앙골라 리스크'에 휩싸인 것이다.

1조원 규모 유동성 확보가 달려 있는 앙골라 소낭골(Sonangol·앙골라국영석유회사) 드릴십 2기 인도가 또다시 연기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조선업 구조조정 계획도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여 비상이 걸렸다.

19일 금융권과 조선업계에 따르면 당초 9월 중순으로 예정됐던 소낭골과 글로벌 채권단의 여신유지 협상 마무리 시점이 9월 말로 연기됐다. 이로써 대우조선의 소낭골 드릴십 인도 일정도 10월 이후로 연기가 불가피해졌다.

지난달 17일 대우조선은 드릴십 인도를 9월 30일까지 마무리하겠다고 공시한 바 있다. 정성립 대우조선 사장이 앙골라 현지에서 소낭골과 힘겨운 협상 끝에 얻어낸 결론이었다.

대우조선은 2013년 10월 소낭골에서 수주한 드릴십 2기를 각각 올해 6월 말, 7월 말 인도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소낭골 자체의 재무사정 악화로 SC 등 20여 개 글로벌 채권단과 이른바 '웨이버(waiver·채무상환 유예)' 협상에 들어가면서 인도가 지연돼왔다.
 
'웨이버'란 채권은행들이 채무자의 재무상태 악화 등 디폴트 발생(EOD·Event of Default) 조건이 충족됐지만 여신을 조기에 회수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뜻한다.

대우조선은 3년 전 드릴십 2기를 12억4000만달러에 수주했다. 이 중 20% 에 해당하는 2억5000만달러는 2013년 계약 당시 선수금으로 수령했다. 남은 9억9000만달러는 인도할 때 받기로 하는 '헤비테일(Heavy Tail)'로 계약했다.

대우조선과 채권단·금융당국은 잔금 9억9000만달러를 받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왔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대우조선은 드릴십 인도를 위해 이달 초 소낭골과 특수목적법인(SPC)까지 만들기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특수목적법인까지 만든 것은 소낭골의 현금 지급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였다.

소낭골이 글로벌 대주단을 통해 9억9000만달러를 조달하기 어렵다고 나오자 이 중 7억7000만달러만 현금으로 받고, 나머지 2억2000만달러는 특수목적법인 지분으로 취득해 추후 배당 등을 통해 상환받기로 했다. 대주단을 위해서 무역보험공사는 담보까지 제공하기로 했다. 보증까지 깔아주고 나머지는 일종의 장기분할로 상환받겠다는 식으로 소낭골에 양보를 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계획마저 흔들림에 따라 소낭골 드릴십 인도 계획은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다.무분별한 헤비테일 방식 수주에 따른 저주가 본격화되고 있는 셈이다. 이른바 '헤비테일의 재앙'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소낭골은 당초 이 드릴십을 글로벌 오일 메이저인 엑손모빌에 빌려줄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배럴당 30~40달러대 저유가 시대가 지속되면서 수익성이 확보되지 않자 소낭골도 엑손모빌도 드릴십이 애물단지가 됐다. 이에 따른 리스크를 대우조선과 국내 금융권이 고스란히 안게 된 것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소낭골은 대외적으로 글로벌 대주단과 협상이 진행 중이라는 점을 드릴십 인도 거부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인도를 거부하고 싶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종적으로 소낭골이 드릴십 인도를 거부할 경우 대우조선은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앙골라 국가 자체가 지난 4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할 정도로 위기에 빠져 있어 실익이 크지 않다.

이와는 별도로 드릴십을 다른 오일 메이저 등에 매각할 수도 있지만 현재 유가 상황에서는 가능성이 낮다. 최악의 경우 고철로 전락해 거제에서 녹이 스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