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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우광미]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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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14  10:2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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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소


                                                                                                                                            우 광 미

   
 
약속 시간은 지났다. 기다리는 아이는 연락이 없다. 화선지 위에 스미는 먹물의 기운처럼 하늘엔 먹구름이 몰려와 퍼지기 시작한다. 소낙비라도 내릴 기세다. 초여름을 향해 가는 날씨는 기다림만큼이나 차 안을 데운다. 어쩌면 나를 가둔 생각으로부터 잉태되는 열기인지도 모른다.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왔다. 아파트 단지 놀이터 안에서 아이들이 기구를 타고 있다. 밀쳐져 있던 유년시절이 빛바랜 필름처럼 피어올라 시소에 앉았다.

놀이 기구 중에 유달리 시소 타기를 두려워했다. 시소는 맞은편 상대와 비슷한 무게로 수평이 되어야 좋다. 상대가 더 무거우면 그가 구르는 힘에 의해 땅에 엉덩방아를 찧기 일쑤다. 짓궂은 아이들은 온 힘을 다해 나를 높이 올리고, 엉덩이를 살짝 들어 땅에 발을 지탱한 채 무게 이동을 했다. 묵직하게 전해져 오는 통증보다도 창피함이 앞서 집으로 얼른 들어왔다. 그런 다음날은 이른 시간에 놀이터로 갔다. 낮 시간 때와는 달리 아이들이 없는 놀이터는 더 넓고 황량하게 느껴졌다. 혼자 시소에 앉아 나의 몸무게로 충격을 줄이는 연습을 했다. 내려오면 올라갈 것을 대비한 발 구름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런 기분은 어른이 되어서도 가끔 느꼈다.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것이라고 시작한 일이 방문교사지만 생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느닷없이 시간을 어기거나 연락도 없이 불참하는 경우가 있어 수업시간은 가변성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연락이 없는 경우는 늦을 것을 예상하고 집 근처에서 기다려야 한다.

나름 관리자의 신임도 받고 학생들과도 좋은 관계를 형성하여 갔다. 직장 내 체계와 관리자가 바뀌기 전까진. 직장에선 힘이 세고 무게 균형이 맞지 않는 상사와도 같은 시소를 타야 한다. 상사의 무게나 기분에 의해 생기는 힘에 따라 부하직원은 상승과 추락을 반복한다. 이곳도 예외가 아니었다. 가장 실적이 좋던 그녀가 새로운 원장이 되면서 나의 성과는 사무실 벽 막대그래프 위에서 엉덩방아만 찧게 되었다. 방문교사는 시간표의 가변성만큼이나 수입의 가변성이 심하다. 진도를 빨리 나가야만 문제지 소비가 많아지고 월급봉투는 상대적으로 두터워진다.

그녀의 막대그래프는 쉽게 접근하지 못할 정도로 높이 솟아 있었다. 어학은 능동적이고 활달한 성향의 학생들에게 유리하다. 그녀는 다른 선생이 회피하는 민감하고 소극적인 학생들을 내게로 밀어붙였다. 자신의 무게를 한껏 실어 시소를 움직이는 격이었다. 이런 일의 계기가 된 것은 그녀가 관리하던 학생이 너무 소극적이라며 내게 보낸 이후다. 사춘기를 겪고 있던 학생은 엉덩방아를 찧고 집으로 돌아온 지난날의 나를 보는 듯했다.
수업이 시작되면서 학생은 자신의 무게를 배려하고 있다는 믿음이 생긴 탓인지 제 동생도 등록을 시켰다. 사설학원 비에 맞먹는 비싼 학습지를 자매가 하기엔 어려운 형편이라 복습을 위주로 학습지 소비를 줄여 주곤 했다. 이를 안 원장은 실적을 운운하며 다가섰다. 그녀에 의한 기울기는 멀미가 났다.

얼마나 지났을까. 전화기를 점검한다. 아직도 연락이 없다. 그때 저만치서 내가 앉은 시소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아이가 웃었다. 아이에게 손짓을 했다.

“같이 탈 수 없어요.”

아이는 이내 돌아선다. 돌아선 아이의 뒷모습에서 지난 날 나의 두려움을 본다. 그 두려움은 언제 사라졌던가.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타면서였지 싶다. 그들은 부족하고 모자라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한편이 되었고, 수평이 되면 발을 굴러 기울기를 조절해 주었다. 오르락내리락 즐기며 웃음으로 가득 찼던 시절. 그 순수한 동심에서 나는 얼마나 멀어져 왔던가.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빗방울은 굵어질수록 기울어진 몸을 땅에 의지하고 있는 시소 쪽으로 타고 흐른다. 나의 몸도 젖고 있다.

기울기는 나를 돌아보게 한다. 즐기기보다는 늘 기울기에 긴장하고 내려오면 올라가기를 갈망했다. 한때 시소는 수평이 되어야 탄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세상사가 수평으로만 이루어진다면 다양성에 고개 끄덕일 일도 상대를 이해하려는 배려도 시도하지 않을 것임을 깨닫는다. 시소 위에서처럼 삶의 상대도 내가 원하는 사람만이 될 수는 없다. 돌아가고 더디 가고 기울어지다 우리는 삶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시소는 내가 앉은 쪽의 무게를 최소화해야 오를 수 있다. 지난날은 발이 구르는 힘에 의해 올랐다면 지금은 욕망과 집착들을 비워냄으로써 오를 수 있다는 지혜를 시소는 내게 말한다. 몸은 비에 젖고 있지만 정신은 더욱 또렷이 맑아진다.

수업이 끝나는 시간이다. 차를 몰고 다음 아이의 집을 향한다. 윈도우 브러시가 비를 닦아낸다. 부지런히 기울기를 만들며 제 몫을 다하고 있다. 삶에는 여러 형태의 기울기가 존재한다. 주어진 자리에서 어떤 기울기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아름다움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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