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왼쪽
오른쪽
> 사람들 > 이정순 '여자의 창'
[수필] 항아리길 위에서 저자/ 이 정 순
거제타임즈  |  geojetimes@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01.25  11:50:35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 이정순/'길 위에서' 저자
재활용 장소에서 금이 간 항아리 하나를 주웠다. 마당에 조심스레 내려놓고 깨지지 않도록 필요한 부분에 유리 테이프를 붙이고 망치로 톡톡 조심스레 다듬는다. 주렁주렁 흘러내리는 화초를 키울 생각이다. 염려와는 달리 깨지지 않고 비뚤하게나마 원하는 모양대로 다듬어졌다. 어차피 항아리 본래의 쓰임새와는 달리 필요로 하는 목적이 따로 있었으니 비뚤어진 모양이라 운치가 있어 더 좋다.

날카로운 가장자리에 사포질을 해서 손이 베일 위험 요소를 없애고 흙을 담는다. 항아리 조각이 뭐 그리 고급지기야 하겠냐만 자연을 닮은 미는 그 무엇에도 뒤지지 않는다. 생명력과 번식력이 강한 송엽죽 줄기를 뚝뚝 끊어 심었다. 숨기듯 외진 곳을 택할 필요 없이 버젓하게 마당 중앙에 뒀더니 인테리어 효과까지 있다. 항아리의 둥근 원형 그대로를 고집할 이유가 없으니 어느 고급 화분보다 더 정이 간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전유물이었던 뒤뜰 장독대에는 큰 항아리가 하나 있었다. 주로 참깨며 팥이며 잡곡이 담겨 있기도 했지만 거의 빈 항아리로 있었다. 그 항아리를 눕히고 속으로 들어가는 걸 좋아 했었다. 가끔 술래잡기에 몸을 숨겼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항아리가 깨져서 다친다고 야단을 치셨다. 더러는 머리만 밀어 넣고 아아 소리를 지르면 항아리 속 내 목소리는 한 겹의 껍질을 쓰고 있었다.

그 작고 둥근 세상에서의 외마디 소리는 항아리 속에서 물감처럼 번지며 맴돌다가 결국 내게로 되돌아왔다. 이 기이한 현상을 느끼기 위해 자주 들어가 몸을 웅크리고 누웠다. 내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또 다른 나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이 든 어여쁜 기억이 있다.

비가 오면 큰 은신처가 되었고 밑바닥까지 발을 뻗고 웅크린 자세로 책을 펼치면 작은 내 방이 되었다. 그 세상이 좋아 수시로 책을 들고 항아리 속으로 들어갔던 기억이 뚜렷하다. 그 속에서 바라보던 하늘은 머리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람에 일렁이며 뒤섞인 산과 나무는 그림으로 나타낼 수 없는 기억 저 편의 동그라미였다.

텔레비전에서 발굴된 토굴의 옹관을 원형 그대로 본 적이 있다. 영겁의 세월에 몸은 흙이 되어 빈 관으로 드러났다. 그 안에서 양반이나 왕족이나 천민의 시신조차 차별 없이 그저 작은 공간 안에서 흙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주검을 주검으로만 끝내지 못하고 어머니의 자궁 같은 항아리 속으로 다시 밀어 넣었으니 태초에 잉태 되었던 모태의 둥근 공간은 인간에게 있어서 원초적 본능일지 모를 일이다.

그렇게 보면 어머니도 항아리에서 태어났고 나도 어머니의 항아리를 빌어 태어나 또 다른 항아리를 품었다. 둥근 테두리가 모태의 기억인 우리는 언제부턴가 환경 조건이 어머니의 자궁 같은 항아리에서 멀러져 버렸다. 모서리가 선명한 사각 공간에 길들어 살고 있다. 사람들의 성격은 날이 갈수록 사각 환경의 모서리를 닮아서 모가 나고 날카로운 생각을 행동으로 나타낸다. 뒤틀리면 인정사정없이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현대인들은 말로는 둥글둥글 살자고 하면서 자기 방어라는 명분 아래 쉽지가 않다. 좋은 마음으로 고쳐먹었다가도 작은 계기와 맞닿으면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둥근 항아리를 손질하며 우리를 얼마나 더 단련시켜야 깨진 항아리처럼 다듬어질지 앞날이 희미하다.

거제타임즈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기사 댓글 1
전체보기
  • 운석 2017-01-25 12:17:31

    각진 샵프함에 길들여진 현대에 부댁기다 보니
    항아리처럼 둥글음이 막연한 향수같은 감정을
    불러 내곤 한것 같습니다.신고 | 삭제

    최신 인기기사
    1
    거제시, MBC 드라마 '병원선' 촬영 생색내기…지역주민·해운선사 '맹 비난'
    2
    [성명] 더불어민주당 거제지역위, "권민호 거제시장 입당 반대"
    3
    대우조선해양, 초대형유조선 4척 수주…하반기 대반전 노린다
    4
    거제 학동케이블카 백지화 수순 돌입 눈 앞
    5
    거제 앞바다서 올해도 '대왕갈치(투라치)' 나타나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명칭 : 인터넷신문 | 등록번호 : 경남 아009호 | 등록연월일 : 2005년 11월 10일 | 제호 : 거제타임즈 | 편집인 : 문경춘 | 청소년보호책임자 : 문경춘
    발행인 : 김형택 | 발행연월일 : 2003년 4월 16일 | 발행소: 경남 거제시 서문로 72 (고현동) 태원회관빌딩 6층ㅣ전화: 055-634-6688 / FAX: 055-634-6699
    Copyright © 거제타임즈. All rights reserved. 문의메일 : geojetimes@hanmail.net